대구 중구 수성교 옆에는 70년된 방천시장이 있다.
하루 2000여명의 관광객이 북적이는 곳이다. 방천시장과 맞닿은 고(故) 김광석을 테마로 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 관광객(요우커·遊客) 까지 사진기를 챙겨 들고 찾는 명소 김광석 길은 사실 김우중 길이나 양준혁 길로 처음 기획됐었다.
통기타를 들고 방천시장을 지키는 김광석이 아니라, 돈다발을 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나 야구방망이를 치켜든 양준혁씨가 조형물로, 또는 이 골목 벽화 주인공이 될뻔한 것이다. 김광석 길이 다른 지자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면서 이 골목의 탄생 배경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김명주 중구청 관광개발과장은 "제주도와 광주 등에서 김광석 길 같은 테마형 골목을 만들려고 탄생 배경을 묻는 사례가 많다. 그래서 별도로 자료로 정리해 일일이 설명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2009년 윤순영 중구청장은 쇠락한 방천시장을 문화예술을 통해 되살리기로 결심했다. 1000여개에 이르던 시장 점포가 60개로 줄어든 방천시장을 경남 통영의 동피랑 벽화마을처럼 문화공간으로 꾸미기로 한 것이다.
대신 중구만의 색깔을 더하기로 했다. 단순한 그림만 있는 것보다 지역과 인연이 있는 인사를 앞세우면 성공할 것 같았다.
처음 거론된 이는 김우중(78) 전 대우그룹 회장이었다. 그는 대구에서 태어나 경기도에서 살다가 한국전쟁 때 혼자 방천시장으로 내려와 신문팔이를 했다.
하지만 방천시장 인근인 대구 중구 인교동의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씨의 삼성상회터가 떠올랐다. 관광객의 반응이 시큰둥해 큰 성공을 예상하기 힘들었다.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 출신의 양준혁(45)씨가 다음 후보였다. 양씨는 방천시장에서 태어나 방천시장 입구에서 운영하는 아버지의 가방가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박종탁 중구청 전략경영실 홍보담당은 "당시 골목 전체에 양씨의 스토리를 모두 입히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박세리를 주인공으로 한 공원(충남 공주시)이 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고민을 거듭한 윤 청장은 세 후보 중에 김광석을 낙점했다. 윤 청장은 "한국 경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김우중 전 회장도 의미가 컸고, 방천시장이 낳은 양준혁 선수도 테마로 잡을 만했다"면서 "음악 하나로 수많은 마니아에게 사랑을 받는 김광석씨가 가장 잘 맞았다"고 말했다. 김광석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방천시장 번개전파사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이 사연을 전해들은 양준혁씨는 뉴시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방천시장 토박이인 내가 주인공이 되지 못해 아쉽지만, 지금의 김광석 거리가 탄생하기까지 이런 뒷이야기가 있었다니 놀랍다"면서 "야구방망이를 힘차게 휘두르는 양준혁 동상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고 했다.
김광석 길은 최근 두번째 스토리가 입혀지고 있다. 2010년 골목을 완성할때의 주제는 김광석을 다시 그려보는 것. 두번째 주제는 '내가 김광석이 되는 것'이다.
벽화도 바뀐다. 때가 묻고 빛이 바랜 기존 벽화를 지운다. 대신 23명의 청년작가와 관광객이 일러스트와 웹툰, 김광석의 명곡을 재해석한 이미지들을 함께 그려넣는다.
두번째 스토리에 맞게 볼거리도 달라진다. 270석 규모의 야외공연장과 골목방송국을 만들고 있다. 시민과 관광객이 직접 참여해 즐기면서 김광석의 모든 것을 누리도록 배려한 것이다.
새로 꾸민 김광석길은 오는 27일 시민들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