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프로야구 새 역사를 썼다. 삼성은 11일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넥센을 11대1로 꺾고, 시리즈 종합 전적 4승2패를 기록하며 4년 연속이자 통산 7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없었던 1985년까지 합치면 8번째다. 삼성은 6차전에서 3회 채태인의 2타점 적시타와 최형우의 2타점 2루타가 연이어 터지며 승기를 잡았고, 6회 야마이코 나바로의 결정적인 3점 홈런이 터졌다. 넥센은 타선이 삼성 선발 윤성환(6이닝 1실점)에게 막혔고, 실책 3개를 저지르며 스스로 무너졌다.
1982년 시작한 국내리그에서 4연속 우승을 달성한 것은 1986~1989년 해태(현 KIA)에 이어 올해 삼성이 두 번째다. 하지만 삼성은 전례 없이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패권을 거머쥐는 4년 연속 통합챔피언에 올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구단주인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등 삼성 임원단이 잠실야구장을 찾아 역대 최강의 '왕조' 탄생을 축하했다. 한국시리즈 MVP는 기자단 투표 73표 중 32표를 얻은 야마이코 나바로가 차지했다.
◇삼성, 이것이 달랐다
삼성 관계자들은 "우리 팀은 회복탄력지수(RQ·Resilience Quotient)가 다른 팀보다 훨씬 높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멘털 갑(甲)'이란 뜻이다. 위기 상황에서도 웬만해서 흔들리지 않고, 실수와 상처를 빨리 잊어버리고 원상태로 돌아가는 능력을 뜻한다. 이번 한국시리즈 동안 삼성은 타선 침묵으로 내내 고전했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0―1로 패할 뻔했던 3차전과 5차전에서 삼성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근성으로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일궈냈다. 이승엽의 힘없는 내야 뜬공에도 스피드를 죽이지 않고 홈까지 뛰어든 3차전 박해민의 주루 플레이, 9회말 불리한 볼카운트에서도 침착하게 자신이 노린 구질을 골라 5차전 끝내기 2루타를 때려낸 최형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삼성의 RQ지수를 높인 것은 큰 경기를 수없이 치르면서 축적된 경험이었다. 류중일 삼성 감독도 "지난 3년간 우승하는 과정에서 우리 선수들에게 자만감이 아닌, 자신감이 몸에 밴 것 같다"며 "위기에도 동요하지 않고 모두 제 몫을 다해줬다"고 말했다.
◇시스템으로 새 역사를 꿈꾼다
삼성의 시선은 이미 2015년 전무후무한 5연패(連覇), 사상 첫 5년 연속 통합우승을 향하고 있다. 그 자신감의 바탕은 시스템이다. 한때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우수 FA 선수들을 싹쓸이해 비난을 한몸에 받았던 삼성은 2004년 심정수·박진만을 끝으로 "외부 FA 영입 불가"를 선언했다. 대신 눈을 내부로 돌렸다. 유망주들을 체계적으로 육성 배출하는 '팜 시스템(Farm System)' 강화에 주력했다.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팀 내 주전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효과를 얻었다.
시스템 야구의 상징적 작품은 올해 세워진 'BB아크(Baseball Building Ark)'다. 일종의 야구 사관학교 성격을 지닌 BB아크는 소수 정예 일대일 지도를 통해 유망주의 잠재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시스템이다. 경산 볼파크의 BB아크에서는 내부에 영상분석실을 두고 영상요원과 스포츠과학자, 심리학자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선수들의 기량 발전을 돕는다. 올해 입단한 신인 이수민이 BB아크를 통해 단기간에 프로야구 무대에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김인 삼성 야구단 사장은 BB아크 개관식에서 "아크라는 용어를 쓴 것은 새로운 역사의 창조이자 시작을 연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우승 문턱에서 고개 숙인 넥센
만약 3차전과 5차전 막판 실책성 플레이가 없었다면 2014년 패권이 넥센에 돌아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염경엽 감독은 "그것도 실력"이라고 했다. 한국시리즈가 처음인 넥센은 기량과 정신력으로 삼성을 무섭게 압박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할 때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박병호(21타수 3안타)·강정호(20타수 1안타)가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도 뼈아팠다. 투수 10명으로 나선 마운드도 한국시리즈의 중압감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눈물을 참지 못해 인터뷰를 중단했을 만큼 아쉬움을 나타낸 염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졌지만 분명히 성과는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더 단단해지는 넥센 히어로즈가 되도록 준비 잘해서 내년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