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혜린 기자] tvN '미생'의 오상식(이성민 분) 과장은 직장인을 가장 섬세하게 그려낸 캐릭터일 것이다.
전쟁터 같은 회사에서 매일 어떤 갈등을 겪고, 어떤 일상을 치러내는지 아주 미세한 지점까지 집어내며 직장인 시청자들의 '폭풍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회사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각종 갈등과 대립 속에 그는 10일 연속 야근한 것 같은 비주얼에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인간미를 장착, 가장 현실적이면서 가장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지난 8일 방송에서 오상식은 신념과 실적 사이에서 갈등, 결국 양쪽 다 지켜내는 데에 성공했다. 2차 접대를 원하는 거래처 대표에게 '사모님'을 대동시켜, '사모님'의 입김으로 계약을 따낼 수 있었던 것. 물론 이같은 결론에 이르기까지 고민은 상당했다.
그는 미션을 피해고자 상한 우유를 마셔보기도 하고, 대표를 취하게 하기 위해 술 버리기 전략도 세워보지만, 결국 신념을 버려야 할 위기를 맞는다.
2차 접대를 하지 않겠다는 신념과 대표로부터 계약을 끌어내야 하는 실적 사이의 고민은, 그 내용은 모두 달라도 조직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겪는 딜레마. 술에 잔뜩 취해 집에 가는 길,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는 그의 발걸음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지 않을 직장인은 적지 않다.
그는 이같은 '결정적 공감'의 장면을 다수 양산하고 있다. 앞서 지난 7일 방송에선 끝도 없이 몰아치는 사내 정치 속에서 그는 미션을 떠맡았다가, 어렵게 문제를 풀었다가, 또 허무하게 다른 팀에 밀렸다가, 그마저도 완전히 무산되는 폭풍 같은 일상을 겪었다. 상황이 급변할 때마다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고, 잔뜩 취해 현관문 비밀번호도 못누르는 그의 모습은 공감 그 자체였다.
그는 또 타부서의 실수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거나, 좋아하는 부하직원을 위해 싫어하는 상사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이 누군가의 스파이는 아닐까 고민한다.
이성민의 연기는 리얼리티를 대폭 끌어올린다. 실제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듯한 까칠한 피부, 퀭한 눈, 가끔 헝클어져있는 헤어스타일까지, 그는 과장급 직장인의 피로도를 한눈에 보여준다. 또 갑갑한 근무 중에도 호탕하게 터뜨리는 웃음, 늘 정신이 없는 말투, 거듭되는 고민에 피곤한 표정은 오상식 특유의 캐릭터를 듬뿍 살리고 있다.
이같이 가장 현실적인 직장인을 그려내고 있는 그는 인간미를 여전히 갖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그는 이 드라마 등장인물 중 가장 적극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실현하고 있다. 영업으로 수년간의 커리어를 쌓은 그가 2차 접대를 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는 설정, 안영이(강소라 분) 등 여성 사원들이 겪는 어려움에 남자로선 거의 유일하게 공감을 했다는 점, 낙하산 인사에 반대하지만 진심이 통한 장그래(임시완 분)에게 금방 마음을 여는 점 등 시청자들이 정말 이상적인 상사로 꼽을만하다.
인간적으로도 매력이 넘친다. 호통을 치면서도 배려해주고, 힘없는 신입사원을 대신해 소심한 복수도 해주고, 사소한 즐거움에 진심으로 웃음을 터뜨린다. 조직의 최하층민(?)인 장그래가 그보다 훨씬 더 기득권층인 오상식을 오히려 짠하게 바라보거나, 오상식의 좌절에 함께 눈물 흘리는 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저 드라마는 판타지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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