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시골에 가도 아궁이에 불 때는 집은 보기 어렵다. 한옥도 기름 보일러를 쓴다. 1950년대 '산림녹화'를 위해 정부가 적극 아궁이 개량사업에 나서면서 전통 구들은 밀려나기 시작했다. 장작을 쓰는 구들 대신 연탄이 각광 받았고, 이어 연탄 새마을보일러, 기름 보일러, 도시가스 난방이 차례로 대세가 됐다.
안진근(64) 회전구들 대표는 그래도 구들을 고집하는 이들을 찾아 40년 넘게 구들을 놓아왔다. "구들 위에서 몸을 지져야 가뿐한데 난방 방식이 불편해 망설였다"는 게 안진근에게 구들 시공을 의뢰한 사람들의 공통된 말이다. 안진근은 재래식 구들의 단점을 보완한 '회전구들'로 3년 전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됐다. 열효율 좋고, 재를 따로 치우지 않아도 1년은 쓸 수 있다. 난방비가 한 달 5만원이면 된다.
회전구들은 고랫길(구들장 아래 불길과 연기가 지나는 통로)을 방바닥 전체에 빙빙 돌려 깐 구조다. 기존 구들이 아궁이부터 직선으로 연기가 빠져 열을 붙잡는 통로가 4m밖에 안 된다면, 회전구들은 그 5~6배에 이른다. 그만큼 열을 오래 저장한다. 구들장도 열이 센 중심부는 두껍게, 가장자리는 얇게 만들어 열기가 방 전체에 고루 퍼지게 했다. 재작년 회사 설립 후 한 해 200건 정도 의뢰가 들어온다. 고객은 대부분 귀농·귀촌해 전원주택을 짓는 이들이다. 전국 각지 고객을 찾아가 구들을 놓는 탓에 한 해 열 달은 집 밖에서 잔다.
"몸이 노곤할 때 구들방에서 하룻밤 자면 감기 기운이 뚝 떨어지는 게 신기해 스물두 살 때부터 배우기 시작했어요. 구들 난방이 외면받은 이유는 있어요. 아랫목은 철철 끓고 윗목은 냉골이기 일쑤잖아요. 불을 아침저녁으로 때야 하고 재도 사흘에 한 번은 청소해야 하고요." 애써 만들어주고 욕을 먹기도 했다. 그래서 개량 구들 연구에 매달렸다.
시행착오 끝에 회전구들 개발에 성공한 1970년대는 시기상조였다. 광풍 같은 아파트 건설 붐에 일감이 뚝 끊겼다. 간간이 요청은 왔지만 한 달 한두 건이 고작이었다. "면목이 없어 집에도 안 갔어요. 생활은 아내가 부동산 투자로 책임졌죠. 몇 달에 한 번 집에 들르면 아이들이 반 뼘씩 자라 있었어요."
2000년대 들어 웰빙 바람이 불고, 은퇴 후 시골로 가는 사람이 늘면서 그의 기술은 빛을 봤다. "전통 구들의 매력과 불편함 사이에서 망설이던 사람들이 제가 만든 구들에 관심 가진 거죠. 수십 년 만에 비로소 제 이름 걸고 신나게 구들 놓으러 다녔어요." 그 무렵 중국이 수천 년 우리 자산인 온돌을 가로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한다는 소식도 구들 재조명에 일조했다.
고객이 줄기만 하던, 기술자로서 배고프고 서럽던 시절에도 그는 구들의 현대화·과학화 연구를 계속했다. 고래 위에 소금 깔아 습도를 조절하고, 구들장 위에 황토와 옥돌을 시루떡처럼 겹겹이 쌓아 열을 최대한 저장하는 식으로 개선을 거듭했다. 남긴 것은 '돌을 불로 달궈 그 복사열로 난방한다'는 핵심 원리 하나다.
안진근은 지난여름 '구들학교'를 열어 제자 30명을 배출했다. 아들도 물려받지 않겠다던 업(業)에 의사·스님·조종사·대학생 등 다양한 수강생이 몰렸다. 호기심에, 귀농 후 생계용 기술을 배우려고, 자기 집에 직접 구들 놓으려고…. 이유는 제각각이다. "한국인은 누구나 '구들 DNA'가 있어요. 제가 죽을 때까지 일한들 구들 얼마나 깔겠어요. 그러니 40년 겪고 연구한 노하우들 다 공개해야죠."
안진근은 "구들에 매달려 남편 노릇 못하고 아버지 노릇 못했지만 얻은 것도 많다"고 했다. "제가 놓은 전국의 구들 1000개가 다 내 자식이죠. 처음 아궁이에 불을 때면 안에 있던 습기가 빠지면서 '웅~웅~웅~' 소리가 나요. 살아있는 생명의 소리 같다니까요. 불이 용틀임 치면서 집에 온기와 생명을 불어넣는 소립니다."
2박 3일에 걸쳐 시공을 마치면 안진근은 집주인과 아궁이 위에 향 피워놓고 절한 뒤 첫 불을 넣는다. "○월 ○○일, 좋은 땅과 인연 맺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만든 자식이 말 잘 듣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