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3집 활동을 마무리할 즈음에 밴드활동을 잠시 접은 신해철은 정글스토리 OST를 내놓았고 윤상과 함께 ‘노땐스(Nodance)’를 결성해 테크노 장르를 선보이기도 했다. 노땐스 앨범에 실린 ‘달리기’는 걸그룹 S.E.S가 리메이크 해서 훗날 더욱 유명해졌는데 이 노래가 원래 노땐스의 곡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신해철·윤상 프로젝트 그룹 '노땐스(Nodance)'

넥스트 활동이 싱글 ‘Here, I Stand for You’와 함께 재개되었고 공연이 이어졌지만 1997년 4집 ‘Lazenca : A Space Rock Opera’ 발표와 동시에 넥스트 해체를 발표하면서 그 해 12월 31일 공연을 끝으로 넥스트의 역사는 마무리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2003년 넥스트는 재결성되었고 5집 ‘The Return of N.EX.T Part3 : 개한민국’을 발표했다. 이후 넥스트는 멤버의 잦은 교체와 내홍에 시달려야 했지만 신해철은 끝내 넥스트라는 이름을 놓지 못했고 급기야 2014년 4월에는 신보 발표와 함께 ‘넥스트 유나이티드’라는 타이틀로 넥스트는 멤버 제약 없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공식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2009년의 넥스트. 왼쪽부터 제이드, 신해철, 김세황, 지현수.

차마 글로 다 할 수 없이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던 넥스트의 행보 사이사이에 신해철에겐 참 많은 일이 있었다. 1997년의 넥스트 해체 이후 영국 유학을 갔고 프로젝트 그룹 ‘모노크롬’을 결성했으며 영화 OST 작업에다가 ‘비트겐슈타인’이라는 또다른 밴드도 만들었다. 과거 넥스트 멤버들과 랩퍼 김진표를 영입해 ‘노바소닉’을 만들었고, ‘신해철 밴드’도 만들었다는 걸 이 기사를 쓰면서 새로 알았다.

2001년에는 인터넷 방송 형식의 ‘고스트스테이션’을 진행하며 당시 젊은층에게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신해철이라는 이름 앞에 종종 붙는 ‘마왕’이라는 호칭은 이때 생긴 것이다. 미래가 불분명해 심적으로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소소한 위로가 되었는데, 당시 리스너들의 쏟아지는 간증(?)으로 그 상황을 짐작해볼 만하다.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 이곳에서 '마왕'이라는 별칭이 탄생했다.

이 즈음,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 운동에 뛰어들며 정치적 발언을 하기 시작했고, 토론의 달인이라는 세간의 평가는 이 시기에서 비롯된다. 2002년에 운명의 상대 윤원희씨와 결혼했으며 훗날 태어난 딸과 아들의 아버지가 되면서 오래도록 시달렸던 자살 충동에서 벗어났다고 스스로 고백하기도 했다.

서태지의 9집 컴백을 계기로 신해철과 이승환, 그리고 서태지·김종서가 모여 콜라보레이션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에 기대감이 부풀고 있을 때 신해철에게 장 협착 수술의 부작용으로 인한 심정지가 있었다는 소식이 들렸고 그가 의식불명에 빠졌다 했다. 그리고 6일 후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이라는 난생 처음 듣는 병명으로 숨을 거뒀다. 만 46세였다.

[① 신해철과 함께 90년대가 간다 : 황망히 떠난 음악인 신해철이 팬에게 남긴 유언]

[② 신해철과 함께 90년대가 간다 : 뽀얀 대학생 오빠에서 반항기 넘치는 락밴드 리더로]

[④ 신해철과 함께 90년대가 간다 : 행복 찾아 두리번거리는 90년대 키드들이 한 시대와 작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