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계적인 바나나 생산·유통업체 치키타(Chiquita)가 브라질로 국적을 바꿀 것으로 보인다.
'치키타 바나나'로 유명한 치키타는 144년 역사를 가진 미국의 과일 생산·유통업체다. 연간 매출은 30억달러(약 3조1900억원)를 웃돌며, 전 세계 70여 개국에서 2만명을 고용 중인 글로벌 기업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 최대 오렌지 주스 생산업체인 브라질의 쿠트랄리가 투자회사 사프라그룹과 공동으로 치키타 지분을 주 당 14.5달러, 총 13억달러(약 1조36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2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13억달러의 인수금액에는 치키타의 주식 총액 6억8000만달러(약 7000억원)와 부채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치키타 인수를 둘러싸고 지난 3개월간 이어온 쿠트랄리-사프라 컨소시엄과 아일랜드 과일업체 파이프스(Fyffes)간의 지루한 줄다리기도 끝을 보게 됐다.
쿠트랄리-사프라 컨소시엄은 인수 결정 직후 배포된 보도자료에서 “치키타는 생산과 재배는 물론 유통, 마케팅 분야까지 아우르는 쿠트랄리 그룹의 경함과 노하우의 덕을 톡톡히 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치키타의 에드워드 로너건 최고경영자(CEO)도 “우리는 국제적인 농작물 비즈니스에 대한 쿠트랄리의 경험과 지식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다”고 화답했다.
치키타는 운영비용을 낮추는 방편으로 파이프스와 합병을 추진해 왔다. 합병 후 본사를 아일랜드로 옮길 경우 현재 35%인 법인세율을 12.5%로 낮출 수 있어 2016년까지 연간 4000만달러(약 420억원)의 운영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아일랜드의 법인세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
이에 따라 치키타는 올해 3월 파이프스(Fyffes)를 5억2600만달러(약 5400억원)에 인수하고, 올해 말까지 주식교환 등 합병절차를 마무리한 후 사명도 ‘치키타파이프스’로 바꾸는 내용 등이 포함된 합병안을 발표했다. 계약이 성사되면 치키타파이프스는 연 매출 45억달러에 전 세계 고용인원 4만명을 둔 세계 최대 과일 생산ㆍ유통업체로 등극이 유력시됐다. 바나나시장에서도 돌(Dole)과 델몬트(Del Monte) 등 경쟁기업을 제치고 단숨에 1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8월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 버거킹이 커피·도넛 체인 팀 호튼 인수 발표를 계기로 ‘국적 이전(corporate inversion)’을 통한 기업의 조세회피 시도가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치키타도 합병에 부담을 느끼게 됐고, 결국 24일 파이프스의 합병 제안에 대한 최종 거부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더해 매력적인 인수 조건도 한몫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덧붙였다. 쿠트랄리-샤프란이 제시한 주 당 14.5 달러는 3월 파이프스의 합병 제안 기준일 전날 종가 대비 34% 프리미엄이 붙은 금액이다.
뉴욕타임스는 쿠트랄리-사프라 컨소시엄과 치키타의 합병 절차가 내년 초 마무리될 것이라고 27일 보도했다. 치키타는 파이프스와의 계약 파기에 따라 수백만달러의 위약금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신문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