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찰 맨 위의 수용자 번호는 일반적으로 '칭호번호’라고 불린다. 교도소에서 대개 재소자들의 이름 대신 수용자 번호를 부르기 때문이다. 소망교도소는 수용자 번호 대신 재소자들의 이름을 불러준다.

국내 재소자들 사이에 '로또'로 불리는 교도소가 있다. 지난 2010년 말 경기도 여주에 문을 연 소망교도소이다. 이 교도소출신의 재범률(출소 3년 이내에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은 지난해 말 기준 2.28%이다. 전국 평균 22.2%에 비해 19.92%포인트가 낮다. 아직 출범 초기라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성과이다.

소망교도소는 국내 최초 민영교도소이다. 국가가 운영하는 일반 교도소와 달리 아가페 재단이라는 기독교 재단이 운영한다. 지금까지 360명이 이 교도소에서 형을 마쳤고, 360명이 복역 중이다.

◇일하러 가는 길이 내리막… 그들의 발걸음은 가볍다

수용자들의 집 '수용동'과 작업장·운동장·식당이 있는 '작업동'을 잇는 길은 2.5도 각도로 기울어져 있다. 작업동 쪽으로 내리막이다. 작업동 입구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커다란 글씨가 적혀 있다. 이 길에는 독특한 철학이 있다. 김무엘 교육교화 과장은 "미세한 기울기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하러 가는 발걸음이 가볍도록 설계한 것"이라고 했다.

다른 교도소와 이 교도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입소 초기 7~8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받는 인성교육 프로그램이다.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정화하는 '힐링 글쓰기', 음악과 미술 활동, 자원봉사자와의 대화 등으로 구성된다.

8주짜리 기초인성교육의 절반 이상은 '땀 흘려 노동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땅 파고 작물 심고 수확물 거두는 텃밭 가꾸기를 통해 노동의 의미를 배운다. 김무엘 과장은 "강력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돈이나 성(性) 등 원하는 것을 쉽게 얻으려고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며 "세상을 사는 데는 노력과 성과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망교도소에 수용된 범죄자 중 63%는 강도, 살인, 성폭력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라고 했다.

교도소를 방문한 사람이 깜짝 놀라는 시설은 재소자들이 마음대로 자리를 골라 앉는 식당이다. 일반 교도소는 각 감방(監房)으로 밥을 넣어 준다. 반대도 심했다. 재소자들이 한데 모여 있으면 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식판과 숟가락, 젓가락이 이들 손에선 무기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소망교도소 재소자들은 식당에서 원하는 자리에 앉아 자유롭게 밥을 먹을 수 있다. 사회에서 밥 먹는 것처럼 하기 위해‘식당’을 만들었다.

식당이 생기자 방 안에 싱크대를 둘 필요가 없어졌고 국영교도소의 감방 면적인 1인당 2.58㎡보다 넓은 1인당 2.8~4.2㎡의 공간을 쓸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서로 믿음만 있으면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재소자들 사이에 퍼졌다.

모든 게 처음부터 순조롭진 않았다. "날 어떻게 해볼 수 있겠느냐"며 대드는 재소자들도 있었다. 운영 초기 1년 동안 징벌 건수가 30건에 달했다. 재소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 전치 2주 이상이 나오면 즉시 검찰에 넘겼다. 강력한 징벌과 함께 생활공간에 '어머니'라는 세 글자를 크게 써 붙이는 등 감성적 장치도 병행했다. 조명희 총무과 계장은 "자유를 주는 만큼 잘못된 행동에 대해 철저하게 징계하는 원칙을 세우자 규칙이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올해 징벌 건수는 5건으로 줄었다.

◇상처받은 이들을 살리는 곳

소망 교도소에선 직원 124명과 자원봉사자 180여명이 함께 일한다. '막강' 자원봉사자의 존재는 이 교도소의 최대 자산이다. 이들은 재소자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다. 자원봉사자 80%는 왕복 5시간이 넘는 서울에서 온다.

지난해 6월 이곳에 온 김보혁(가명·32)씨. 특수 강도 혐의로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받고 5개월 동안 충주구치소와 청주교도소에서 지냈다. "네 얘길 해봐라" "함께 웃어보자" 하는 자원봉사자들이 귀찮고 싫었다. 어머니 또래 한 자원봉사자는 유난히 손자 얘기, 첫사랑 얘기 등 시시콜콜한 얘기로 귀찮게 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나' 싶었다. 그런데 자꾸 어머니 생각이 났다. 3개월 만에 부모님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는 "아직 사회에 나가는 게 두렵지만 날 변화시켜준 이곳에 감사한다"고 했다.

자원봉사자 성길웅씨는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잘 살자'하면 '너나 잘 살아라' 한다.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사람들이라 더욱더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소망교도소는 입소 경쟁도 치열하다. 서류 전형은 물론 면접도 봐야 한다. 교화 프로그램이 효과를 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국영교도소에서도 재소자를 보내 3개월간 위탁교육을 맡기기도 한다. 지난 3월 전국 각지에서 30명의 국영교도소 재소자들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고 지난 9월부터는 18명이 위탁교육을 받고 있다.

◇재소자 교화, 사회적 비용 절감 "두 마리 토끼 잡는다"

세계의 민영교도소는 영미식과 브라질식으로 나뉜다. 영미식은 민간 기업이 교도소를 운영하도록 하되 이 기업이 재소자들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이윤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형태다. 브라질형은 종교기관이 정부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비영리 방식이다. 소망교도소는 브라질형을 벤치마킹했다. 박효진 소망교도소 부소장은 "재범률을 75%에서 4%로 끌어내린 브라질 휴마이타 교도소를 본떴다"며 "이제는 우리 교도소 사례를 배우겠다며 일본, 홍콩, 중국 등 15개국에서 28차례나 견학을 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소망교도소는 사회적 비용을 낮춘 효과도 인정받고 있다. 정부는 교도소 위탁 운영 대가로 국영교도소 운영비 90% 수준의 위탁사업비를 지급한다. 국영교도소보다 10% 저렴한 비용으로 교도소를 운영하는 셈이다. 유정우 대외협력과 계장은 "재범률 완화로 인한 사회 간접비용과 운영비 절감 효과를 합하면 지금까지 약 1110억원을 절감하는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범죄자를 너무 좋게 대접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만만찮다. 죄지은 사람이 죗값은 언제 치르느냐는 것이다. 심동섭 소망교도소장은 "재소자들이 죄를 뉘우치지 않고 사회에 대한 분노만 키운다면 교도소는 범죄 수법이나 반사회적 성향을 키우는 '범죄 학교'밖에 되지 않는다"며 "진정한 교화가 이뤄지는 교도소가 필요한 이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