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거리 모습


홍콩의 극심한 빈부격차가 '저승길 노잣돈'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홍콩 사람들은 장례를 치를 때 노잣돈(가짜 돈)을 태워야 조상이 저승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동안은 보통 5달러, 10달러짜리 가짜 지폐를 태웠는데, 최근에는 이 돈의 단위가 100만달러, 10억달러로 올라갔다. 현실의 물가가 오른 것만큼 저승에서도 인플레이션이 심해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노잣돈에도 영향을 줬다며, 최근 홍콩 민주화 시위의 기저에는 중국 본토인으로 인한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깔려있다고 보도했다.

◆ "홍콩 시위도 결국 경제문제"

월스트리트저널은 19일(현지시각) 홍콩 민주화 시위의 근본적인 이유는 홍콩 경제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데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겉으로는 2017년 행정장관 선거안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었지만 실상은 중국 본토 거부들의 투기자금이 홍콩으로 속속 유입되면서 빈부격차가 극심해진 것에 대한 불만 표출이라는 것이다.

블룸버그도 중국 본토에서 투기 자금이 흘러오면서 중국의 영향력이 홍콩에서 확대되고, 이로 인해 홍콩 시민의 삶은 더 팍팍해진 것이 이번 민주화 시위의 이유라고 이달 초 전했다. 홍콩대학교의 장 피에르 리만 경제학 교수는 “홍콩 경제는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를 떠안고 있고, 그런 불만이 이번 시위에서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우선 홍콩의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중국 거부들의 투기 자금이 흘러왔기 때문이다. 글로벌 부동산정보제공업체 세빌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홍콩의 집값은 2008년 경제위기보다 2배 정도 올랐다. 약 5평짜리 주택 가격이 100만홍콩달러(1억3500만원)에 육박한다. 집값 상승은 부의 편중을 불러왔다. 홍콩 부동산의 70%가 중화권 재벌 소유다. 홍콩의 집값 상승은 곧 중화권 재벌의 자산 상승을 뜻하는 셈이다.

자산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불러오면서 상황은 심각해졌다. 홍콩의 인플레이션율은 이미 몇년 전부터 경제성장률을 웃돌았다. 경제에 거품이 낀 것이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던 1997년의 인플레이션은 0.7%였지만 최근 인플레이션은 3%를 넘는다.

인플레이션이 고공비행을 하면 임금상승률이 뒤따라줘야 하는데 홍콩의 임금상승률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지부진한 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홍콩의 대졸 초임 연봉이 최근 17년간 1% 정도 올랐다고 보도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임금은 뒷걸음질친 셈이다. 최근 홍콩의 대졸 초임 연봉은 19만8000홍콩달러(약 2700만원) 정도다.

홍콩 재벌들도 비판에 직면했다. 주택값이 오르면서 생활고를 겪는 서민들이 늘어나는 데도 홍콩 재벌들은 사회적 책임은 뒤로 한 채 돈벌이에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시위에 참여한 아놀드 청(19)은 “중국 경제가 성장하고 정부의 도움으로 부를 쌓은 재벌들은 돈벌이에만 급급했고 세입자의 고통 등엔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홍콩 재벌가는 시위 확산에 몸을 사리고 있다. 314억달러의 자산을 가진 중화권 최대 부호로 꼽히는 리카싱은 15일 “홍콩 학생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더 이상의 시위확산은 없어야 한다”고 타일렀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리카싱의 말이 시위대에게 먹힐 상황이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시위대는 “재벌들은 계속되는 시위가 경제성장률을 갉아먹을 것이란 얘기를 할 것”이라며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중화권·美 모두 소득 불평등에 골머리

중국 본토에서 들어오는 투기 자금에 대한 불만과 소득 불평등에 대한 목소리는 홍콩뿐 아니라 대만에서도 커지고 있다. 중화권 전체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최근 대만에서는 평당 2억원이 넘는 초호화아파트 단지에서 정부의 주택시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대만도 부동산 가격이 높고, 임금은 낮은 국가 중 하나다.

세계 1위 경제 대국인 미국도 소득 불평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재닛 옐런 의장은 17일 “최근 미국의 소득 불평등은 100년 역사상 최악의 상황이라고 본다”며 “소득 불평등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