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를 걱정하던 일본의 한 지방 도시가 미술관 하나로 세계적 도시가 됐다.

지난 9일로 개관 10주년을 맞은 '21세기 미술관'이 그 변화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지난 10일 요미우리·아사히·마이니치신문 등이 일제히 이 미술관의 10주년 행사를 크게 다뤘을 만큼, 일본에서도 지방 활성화 성공 사례로 주목하고 있다.

21세기 미술관은 2004년 이시카와(石川)현 현청 소재지인 가나자와(金沢)시에 만들어진 '참여·교류형' 현대 미술관이다. 젊은이의 대도시 이주, 현청 이전(移轉) 등으로 도심이 공동화(空洞化)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계획됐는데, 목적 달성을 넘어 지역사회의 분위기와 성격까지 바꿔버렸다. 미술관 연간 관람객은 가나자와시 인구의 3배가 넘는 150만명 안팎. 개관 10년 만에 누적 1400만명을 넘었다.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관람객의 70%가 외국인이었다. 여행 커뮤니티사이트인 '트립 어드바이저'는 작년 '일본을 찾은 외국인들이 가보길 잘했다고 생각한 관광지' 8위에 이 미술관을 올렸다.

외국인, 젊은 층 관람객이 미술관에 몰리면서, 지역 상권도 젊은 감각의 예술·문화 중심으로 바뀌었다. 특히 2008년 이후 미술관이 시내 공원, 상가, 빈집 등을 예술 무대로 활용하면서, 가나자와시 전체가 '문화의 도시' '열린 도시'의 상징이 됐다. 미술관 주변에 갤러리나 미술 관련 물품을 파는 가게도 수십 곳 생겼다.

가나자와시 가키노키바타케 진흥회의 미즈노 고이치 전무는 현지 언론인 홋코쿠(北國)신문 10일자 인터뷰에서 "젊은 사람들이 21세기 미술관을 보기 위해 가나자와로 와준 덕분에 거리에 젊은이나 가족이 많아진 게 10년간의 가장 큰 변화"라고 했다. 시 인구도 2000년 45만4000명에서 현재 46만5000명으로 늘었다. 일본 상당수 지자체가 급격한 인구 감소를 겪고 있음을 감안할 때 놀라운 성과다.

‘21세기 미술관’을 위에서 바라본 모습. 지난 9일 개관 10주년을 맞은 이 미술관은 거대한 원형 구조로 사방에서 출입이 가능하다. 미술관을 설계한 세지마와 니시자와는 지난 2010년‘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21세기 미술관이 성공한 데는 누구나 아는 유명 작품으로 호객하는 대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작가를 미리 발굴한 것이 꼽힌다. 유망 작가에게 특별 주문해 구입한 작품을 미술관의 얼굴로 내세웠다는 것. 몇억엔짜리 모네도 한 번 보면 끝이지만, 유망한 현대 미술가의 작품을 미리 보유하면 관객을 계속 끌 수 있다는 일종의 '재방문율 높이기' 전략이었다. 미술관 건물 자체를 작품화하는 데 신경 쓴 것도 주효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물 밑으로 사람이 보이는 설치 미술 '스위밍 풀'이 미술관의 상징이 된 게 좋은 예다. 사방에서 출입할 수 있는 직경 113m의 원형 미술관도 그 자체로 명물이다. 원형 미술관을 설계한 세지마 가즈요(妹島和世)와 니시자와 류에(西澤立衛)가 지난 2010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으면서 더 유명해졌다.

아키모토 유지(秋元雄史) 21세기 미술관 관장은 "'예술의 문턱을 없애고 친근한 존재로서 현대 미술을 알린다'는 미술관 목표는 지난 10년간 변함이 없다"면서 "추구하는 가치를 바꾸지 않았더니, 오히려 지역사회가 바뀌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