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인물들이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한다면? '메신저로 재현한 조선왕조실록'이란 타이틀을 단 '조선왕조실톡(Talk)'은 이런 엉뚱한 상상으로 시작된다. 웹툰 작가 '무적핑크'(본명 변지민)가 지난 7월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조선왕조실톡은 역사 인물들이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해 대화하는 방식으로 역사적 일화(逸話)를 소개한다.

문종과 부인에 얽힌 한 장면을 보자. 세자이던 시절 문종이 부인 세자빈 봉씨에게 카카오톡으로 "여보, 요즘 바람피운다며?"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아니라는 봉씨에게 문종은 다시 "(남자가 아니라) 여자친구 있다더라?"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조선왕조실록의 역사 인물들이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조선왕조실톡’. 세자 시절 문종과 부인 세자빈 봉씨, 여종 소쌍의 대화를 화면으로 보여준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첨부해 역사 공부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다른 대화창. 여종 소쌍에게 집착하는 것을 보여주는 세자빈 봉씨의 메시지가 줄줄이 이어진다. 두 개의 대화창을 보면 세자빈 봉씨가 동성애를 하고 이를 문종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실제 역사기록은 이렇다. "봉씨가 궁궐의 여종 소쌍(召雙)이란 사람을 사랑하여 항상 그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니 궁인들이 수군거리기를 '빈(嬪)께서 소쌍과 항상 잠자리와 거처(居處)를 같이한다'고 하였다."

조선시대 인물들이 현대로 건너온 것처럼 사실(史實)을 재구성한 '조선왕조실톡'을 받아보는 사람은 페이스북에서 6만8000여명, 트위터에서 2만8000여명에 달한다. 작품을 연재하는 변지민(25)씨는 네이버에서 웹툰(인터넷 만화)을 연재하는 웹툰 작가이자 서울대 시각디자인학과 학생이다. 2009년부터 네이버에서 전래동화를 비틀어 재해석한 '실질객관동화', 영화를 재해석한 '실질객관영화', 농사를 지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도시 농업의 세계를 그린 웹툰 '경운기를 탄 왕자님' 등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지난달 29일 서울 관악구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6.6㎡(약 2평) 남짓한 작업실 벽면에는 조선왕조실톡 시안(試案)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고, 모니터에는 조선왕조실록의 한자 원본과 국역본이 함께 떠 있었다.

SNS에 ‘조선왕조실톡’을 연재하는 웹툰 작가 ‘무적핑크’ 변지민씨.

그가 실록을 접하게 된 건 2년 전쯤, '경운기를 탄 왕자님' 웹툰을 준비할 때였다. '채소(菜蔬)'와 '야채(野菜)'의 차이점을 찾아보던 중 '조선왕조실록에서부터 채소와 야채를 구분해 썼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록을 읽기 시작했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의외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사람들은 대개 역사는 재미없는 것으로만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실록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보여줄게'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부담없이 보기 좋도록 만화나 모바일 메신저 같은 형식을 빌려왔죠."

지난 7월 25일 '조선왕조실록 현대어 버전'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SNS에 올리자 "계속 연재해달라"는 댓글이 달렸다. 내친김에 빨간 네모 박스 안에 궁서체로 '조선왕조실톡'이라는 국새(國璽) 모양의 마크를 만들어 연재를 시작했다.

올 들어 문화계에서 분 조선시대 열풍도 힘이 되었다. TV 드라마 '정도전'과 영화 '명량'이 역사 인물에 대한 관심을 끌게 했고, 웹소설(네티즌이 직접 써서 올리는 인터넷 소설) 분야에서도 작년 '광해의 연인'에 이어 올해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구르미 그린 달빛'이 네이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왜 하필 조선시대일까. "가장 큰 이유는 사료(史料)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에요. 고려시대만 해도 정사로 인정받는 게 많지 않고, 고대사(古代史)로 넘어가면 자료는 더 부족하죠. 조선시대 사극 하면 눈을 치켜뜬 후궁이 자기 아이를 세자로 만들기 위해 암투(暗鬪)를 벌인다는 틀에 박힌 이야기만 떠올리는 시대는 지났어요. 지금은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각도로 상상을 펼칠 수 있게 됐어요."

변씨는 "실록에 외계인이나 저승사자 같은 인물이 나타났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나오고, 목이 4개 달린 고양이와 눈이 8개인 고양이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있다"며 "국사 책에선 못 보던 이런 이야기는 창작의 좋은 단초가 된다"고 했다.

연재 초기에는 역사적 사실을 틀리게 해석하는 실수도 했다. "자료를 잘못 읽었어요. 정조가 '사관'이라고 부른 것을 '심재 서용보'와 같은 사람이라고 착각해 3명이 대화를 하는 걸 2명이 나오는 이야기로 만들었어요. '좋아요'가 1000개 이상 눌릴 때까지 아무도 이게 잘못됐다고 하지 않았죠. 더 열심히 공부했죠." 이후 실록과 함께 조선시대 4대 기본 사서(史書)로 불리는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일성록(日省錄)'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중종 26년(1531) 추석제를 거행할 때 병을 핑계로 불참한 자를 추고(推考·죄를 캐물어 살핌)하도록 아뢰다’라는 내용을 현대화했다.

후손들의 항의는 없을까. 그는 "댓글로 사실(史實) 관계 확인을 도와주는 독자들이 있다"며 "후손들은 '우리 조상님 좀 실록에서 찾아달라'고 한다"고 했다.

"양녕대군이 폐세자됐을 때 둘째 효령대군이 아니라 셋째 충녕대군(세종)이 세자가 된 것은 '효령대군이 야리야리하고 만날 웃기 때문'이라는 내용을 올린 적이 있는데, 후손들이 잔뜩 몰려와 댓글을 달았어요. 정색하고 항의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 '우리 조상님 귀엽다'거나 일가친척들에게 이 글을 보라며 태그(다른 이용자의 이름을 달아 글을 공유하는 것)하는 내용이었죠. 효령대군이 천수(天壽)를 누려 자손이 많거든요."

변씨의 목표는 '태조와 태종을 구분 못 하는 사람이 봐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변씨는 "역사는 여러 사실이 켜켜이 쌓여야 하는데 제 작품은 역사의 한 장면만 묘사하니 역사물이라기보다 개그물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제 작품을 보고 역사에 대해 흥미가 생긴다면 좋겠지만 '옛날 사람도 우리랑 비슷하구나'라고만 생각해도 괜찮아요. 다양한 사람이 등장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즐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