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사 정애주 대표는 천생‘대한민국 아줌마’였다. 7일 그녀의 수다를 재밌게 듣느라 나이를 못 물어봤다. 그는 이날 오후 내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를 보내자 그제야 전화가 왔다. “아유~ 죄송해요. 명함을 받아 놓고도 모르는 번호라고 안 받았네요.”

"전 원래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사람이에요. 하지만 이 일도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라 생각하고 힘닿는 한 열심히 할 뿐이지요."

지난 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양화진선교사 묘역 인근 홍성사 도서실에서 정애주(55) 대표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정 대표는 한국기독교선교백주년기념교회 이재철(65) 담임목사의 부인이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홍성사 도서실엔 과연 사방 벽이 온통 그동안 발간한 책들로 가득했다. 정 대표가 홍성사를 맡은 것은 지난 1990년 2월.

크리스천 집안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성악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83년 이 목사와 결혼한 정 대표는 그때까지는 세 아들의 엄마로 집안일만 했다. 무역업으로 시작해 출판사까지 일을 벌이며 "허랑방탕하게 살던" 청년 사업가 이재철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올림으로써 '목사 이재철'로 거듭나게 한 주인공이 정 대표이다.

남편의 회심의 대가(?)는 컸다. 어느 날 신학대학원을 가겠다며 자신이 하던 사업을 아내에게 부탁한 것. 1990년 당시 10억원 빚과 함께. 한때 이청준의 '낮은 데로 임하소서' 등 소설과 앙드레 모루아의 '프랑스사' '영국사',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삶이냐', C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 갈브레이드의 '불확실성의 시대', 김현의 '현대 프랑스 문학을 찾아서' 등을 담은 '홍성신서'로 대학생 등 지식인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던 출판사였다.

하지만 정 대표가 물려받을 때에는 집에 빨간 딱지가 붙었고, 돈 되는 책의 판권은 이미 다 넘어갔고, 도매상은 외면하고, 저자들은 연락이 뚝 끊긴 빈껍데기였다. 출간을 기다리는 원고라고는 신앙 수기(手記)들뿐이었다. 채권자를 찾아다니며 "꼭 갚겠다. 믿어달라"고 호소했다. 직원들에게도 "책임지겠다"고 했다. 뾰족한 수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진심이 그랬다.

"처음엔 그저 직원들을 돕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런데 몇 달 지나다 보니 직원들이 저에게 원하는 것은 '사장'이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가다듬었죠. 어떤 출판을 해야 할지." 결론은 "신학 이론서는 안 한다. 대신 신앙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건강한 크리스천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자. 국내 필자를 발굴하자"는 것이었다. 쌓여 있는 수기를 들춰 읽기 시작했다. 읽어가는 페이지가 쌓여갈수록 감별 능력이 늘었다. 거짓말을 가려낼 수 있게 됐고, 글솜씨는 부족해도 감동적인 진짜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책을 다시 한두 권씩 냈고, 저자들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빚은 7년이 걸려 모두 갚았다. 직원들은 헌신적이었다. 그렇게 출간 종수(種數)가 늘어나면서 현재 '믿음의 글들'은 323종이 나왔다. 2012년엔 출판인들의 모임인 한국출판인회의가 선정한 '올해의 출판인'에 뽑히기도 했다. 주부에서 사장으로 변신한 지 22년 만이었다.

정 대표는 명함이 없다. 25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렇다. 그는 "언제나 목사 마누라라고 생각했지. 제가 뭐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다만 25년 전 저를 도왔던 직원분들이 모두 정년퇴직까지 하실 수 있도록 망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에 감사합니다."

홍성사는 40주년을 알리는 보도자료에 이렇게 적었다. "예수쟁이 책쟁이들이 가꿔가는 홍성사의 앞날을 지켜봐 달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