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효석(1907~1942)의 유해가 작가의 고향인 강원도 평창군으로 돌아간다.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이자, 문학관과 생가가 있는 평창에 당연히 묘소도 있을 것 같지만 지금 이효석의 묘는 경기도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에 있다.
이효석은 사후 두 번의 이장(移葬)을 거쳐 파주에 묻혔다. 평창에 처음 묻혔다가 고속도로 신설 공사 때문에 근처로 이장했는데, 그 도로를 확장하느라 다시 옮겨야 했다. 동화경모공원은 실향민 묘역이다. 이효석은 파주에 연고가 없지만 선친의 고향이 함경도 함흥이라는 점 때문에 이곳으로 이장됐다.
이효석의 묘소가 평창을 떠날 때 주민들이나 지역 문학단체의 반발이 거셌다. "강원도의 상징인 이효석 선생을 파주로 보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원래는 1998년 9월3일에 이장하려고 했지만 지역의 반대로 작업을 하지 못했다. 엿새 후 이른 새벽을 틈타 주민들 몰래 이장했다.
'메밀꽃 필 무렵'이 워낙 널리 읽힌 탓에 이효석의 작품세계에서는 향토적 이미지가 주로 부각돼 왔다. 그러나 사실 이효석은 심미주의, 모더니즘 등 다양한 문학적 면모를 보인 작가다. 작가가 탄생 100주년을 맞았을 때는 그의 문학을 재평가하는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이효석은 또한 '모던 보이'였다. 1938년에 이미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수필 '낙엽을 태우면서')고 썼다. '제대로 된 버터'와 '야채 수우프'를 즐겼으며, 집 거실엔 피아노를 두고 쇼팽과 모차르트를 연주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