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든지 시장 구경이 재미있다는 말이 있다. 관광객을 상대로 잘 꾸며진 모습이 아닌 현지 사람들이 사는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다.
싱가포르 도심 곳곳의 골목으로 들어가면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전통가옥 ‘숍하우스’를 흔히 만날 수 있다. 숍하우스는 과거에 상점들이 즐비했던 옛 시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안고 있어, ‘멜팅팟’ 문화와 역사, 현지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숍하우스(Shop House)는 쉽게 말하면 싱가포르 전통 주거 형태다. 과거에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에서 싱가포르로 넘어온 이주민들이 동남아시아의 더운 기후를 반영해 지었다. 화교들이 싱가포르로 이주해오면서 중국식의 건물 양식을 그대로 가져왔고 이 과정에서 바로크, 로코코, 아르데코, 모더니즘 등 다양한 건축 양식도 녹아들었다. 기본적인 숍하우스는 2~3층짜리 가옥으로 되어있고 주로 1층은 상점으로, 2~3층은 주거 공간으로 쓰였다. 1층 입구는 인도(人道)로부터 조금 떨어져있어 장사를 할 때 물건을 펼쳐놓을 공간으로 쓰였다.
숍하우스는 대부분 여러채의 집들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있다. 위에서 보면 붉은색 타일로 된 경사진 지붕이 물결 치는 듯하다. 집 안의 공기를 순환시키기 위해서 지붕에는 창이 나있다. 화재가 발생하면 옆집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붕과 지붕 사이에 칸막이를 뒀다.
싱가포르 도시재개발청(URA)은 18~19세기에 대거 지어진 숍하우스를 보존해야 할 문화재로 지정하고 개보수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전통적인 외관을 보존하되 배수나 난방 시스템 등 내부는 개·보수(A&A)하도록 하는 일이었다.
도시개개발청의 숍하우스 개·보수작업은 1970~90년대에 도시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한 건설사 직원은 “차이나타운, 리틀인디아 같은 곳들이 점점 슬럼화되어갈 때 싱가포르 정부가 막대한 돈을 투입해 숍하우스 등을 리모델링했고 도로 정비 사업도 펼쳤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도시재개발청에 따르면 지난 1989년 기준으로 차이나타운, 리틀인디아, 캄퐁 글램, 보트키, 클락키, 카이른힐, 에메랄드힐 등 10여개 지역에서 3200개가 넘는 숍하우스를 개보수했고 지금까지 숍하우스를 포함해 종 7000개의 전통 가옥을 개보수한 상태다.
이렇게 개·보수를 거친 숍하우스들은 현재 호텔, 호스텔이나 바, 카페, 옷가게, 골동품 상점, 웨딩숍 등 다양한 공간으로 변신했다. 1층은 카페로, 2~3층은 변호사 사무실이나 치과 등 사무공간으로 쓰이기도 한다. 싱가포르의 이국적인, 그러면서도 전통적인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숍하우스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개·보수된 숍하우스의 매매 가격은 수십억원대를 넘나든다. 싱가포르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3층짜리 연면적이 325㎡ 숍하우스 매매 가격은 무려 690만싱가포르달러(약56억원)에 팔렸다.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클럽스트리트에 있는 74㎡ 크기의 작은 숍하우스는 무려 850만싱가포르달러(약 69억원)에 거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