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방영된 '휴먼다큐멘터리 사랑'(MBC)과 같은 해 출간된 책 '로봇다리 세진이'(조선북스)로 익숙한 김세진(16) 장애인수영 국가대표 선수의 이야기가 이번엔 영어로 찾아온다. 2010년부터 김 선수의 국제대회 통역을 도맡았던 진은서(대원외국어고 2년)양을 주축으로 대원외고 재학생 4인이 번역 작업을 해낸 'Robot Legged Sejin'(조선북스)을 통해서다.

이 4인은 "처음 해보는 번역 작업은 예상보다 훨씬 고됐다"면서도 "이 책이 완성된 데는 용기 있는 삶을 살아온 세진이의 공이 가장 크다"며 인세를 '행복 함께 나누는 재단'에 기부했다. 지난 3일 대원외고(서울 광진구 중곡동)에서 열린 기부금 전달식에서 김 선수와 번역 작업을 맡은 4인이 오랜만에 마주 앉았다.

(왼쪽부터) 이우빈·윤동민군, 김세진 장애인수영 국가대표 선수, 김선정·진은서양.

처음 해보는 번역… 한층 성장한 기분

김선정양, 윤동민·이우빈군, 진은서양(이상 대원외고 2년)은 고교 1학년이던 지난해 여름방학 '로봇다리 세진이'의 번역 작업을 시작했다. 진양은 '휴먼다큐멘터리 사랑'과 책 '로봇다리 세진이'를 집필한 고혜림 방송작가의 딸이다. 그 인연으로 2010년부터 김 선수의 국제대회 통역을 맡아 온 진양은 '외국 선수나 수영 관계자에게 세진이의 이야기를 더 잘 전할 자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책 '로봇다리 세진이'를 영어로 번역하면 훌륭한 소개 자료가 되겠다 싶었어요. 저 혼자 하기엔 벅찬 일이라 친구 세 명에게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죠. 모두 흔쾌히 수락했어요."

네 사람은 "초벌 번역본을 전문 번역가에게 감수받았을 때 충격을 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가장 먼저 감수를 받은 윤동민군은 "네 명 중에 유일하게 해외 거주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외국인에게는 어색하고 거칠게 느껴지는 표현을 많이 지적받았다"고 말했다. "'장애인'을 우리나라 한영사전에서 찾아보면 'handicapped'라는 표현부터 나와요. 이게 정말 무례한 표현이래요. 'disabled people' 이런 식으로 고쳐야 한다더라고요. 영어에서 미묘한 어감의 차이를 배울 수 있었어요."

이우빈군은 "원래는 세진이가 혹독한 훈련을 견디는 모습을 원문 그대로 옮겼다"며 "한국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게는 자칫 학대처럼 비칠 수 있어 순화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선정양은 시점(視點) 때문에 애를 먹었다. "제가 번역을 맡은 부분이 삼인칭과 일인칭을 넘나드는 서술로 이뤄졌었어요. 저는 원문을 그대로 살렸는데, 감수해 주신 번역가가 독자가 헷갈릴 수 있으니 전지적 시점으로 통일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 주셨어요." 진양은 "감수를 받고 나서 초벌 번역을 거의 처음부터 새로 쓰는 작업을 해야 했다"면서도 "그간 노력한 결과가 이렇게 책으로 나온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용기·목표 없이 사는 청소년 위한 필독서

김 선수와 대원외고 재학생 4인은 모두 1997년생 동갑내기다. 네 사람은 "번역을 위해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앞으로 나갈 동력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김양은 "번역 작업을 시작할 때가 마침 한창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릴 즈음이었다"며 "세진이의 어려움에 비하면 내가 처한 상황은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감사할 줄 모르고 너무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이군은 "동갑내기 친구의 이야기라 더 와 닿았다"며 "10대 소년이면 한창 놀고 싶을 텐데 수영에 인생을 건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윤군은 "특히 꿈도 목표도 없는 중고생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우리 나눔 영어 캠프'에 멘토로 참여해 중 1 멘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멘티와 이야기를 해 보면 다들 꿈이 없더라고요. 물론 어린 나이부터 '직업'으로 대변되는 꿈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다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김세진 선수는 "나를 포함해 수많은 청소년이 영어 압박에 시달릴 터"라며 "누군가의 삶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자연스레 영어 공부까지 가능한 책"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대원외고는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학교잖아요. 이번 영어 번역본은 대원외고 학생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열심히 작업한 결과물이라는 걸 기억해 주셨으면 해요."

김세진 장애인수영 국가대표 선수는…

1997년 태어나 생후 5개월 만에 대전 보육원에 맡겨졌다. 이듬해 양정숙(45)씨가 입양해 가족이 됐다. 척추측만증 치료차 수영을 시작해 각종 장애인수영대회에 입상했다. 최연소 합격 기록을 세우며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 13학번이 됐다. 오는 10월 18일(토) 개막하는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한다.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이 아니라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마라톤수영(10㎞) 출전을 목표로 훈련 중이다. 책 ‘로봇다리 세진이’의 영문판 ‘Robot Legged Sejin’에 새롭게 추가된 서문을 직접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