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윤가이의 실은 말야] 구미가 당기지 않은 일을 하며 스스로 소모된다고 느끼는 직장 생활, 그러다보니 나이는 꽉 찼고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나를 노총각이라 부른다. 무기력한 일상 속에 첫사랑과 재회하는 달콤한 꿈으로나마 자위를 해보지만 현실에선 그런 드라마틱한 만남은 일어나지 않는다.

몇 년을 혼자 공들여 짝사랑한 여자를 내 친구가 좋아하는 운명의 장난이 일어나고, 중요한 시합에서 뜻밖의 생리적인 재앙을 만나 낙방도 한다. ‘내일은 톱배우’인데 지금은 국어책 읽는 수준의 연기력이 내가 가진 전부다. ‘아홉수라 그래, 아홉수라!’

tvN 금토드라마 ‘아홉수소년’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아홉수들에게 조용한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9살부터 39살까지, 이른바 아홉수를 살고 있는 소년인 듯 소년 같은 소년 아닌 네 남자의 인생이 여기 있다. 드라마는 9살 아역배우 강동구(최로운 분), 19살 유도 소년 강민구(육성재 분), 29살 꽃미남 투어플래너 강진구(김영광 분), 39살 방송국 예능 PD 구광수(오정세 분)의 운 사나운 로맨스를 그린다. 6일 방송된 4회까지 나름대로 퍽퍽한 일상들 속에서 각각 운명의 짝(?)들과 서서히 얽히는 과정을 그렸다. 이 아홉수 네 남자의 삶은 그다지 특별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듯 보인다. 각자의 아홉수 불운(?)을 딛고 운명적인 로맨스를 완성시킬 수 있을까.

사실 아홉수만 그렇겠는가. 우리네 삶이 다 그렇지. 9살, 19살, 29살, 39살의 인생만 팍팍한 게 아니다. 물정 모르는 어린이들에게도 고민은 있고 10대든 20대든 30대나 40대 역시 매일 부딪히는 일상이 지겹고 때 아닌 돌발 상황이 황당한 게 인생이다. 9살과 19살, 29살, 39살인 한 일가의 남자 네 명을 주인공으로 한 ‘아홉수소년’은 그렇게 강도나 형태는 다르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수난사를 리얼하게 펼쳐보인다.

실제로 아홉수엔 몸을 사리고 조심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은 꽤나 믿음직하다. 멀쩡한 평지를 걷다가도 크게 넘어져 다리라도 부러질까, 입시든 취직이든 시험운도 좋지 않을까봐 서성이게 되는 시기다. 그래서 몸가짐을 조심하고 구설에 휘말리지 않도록 쥐죽은 듯 살라는 어른들의 말이 귀에 날아와 꽂힌다. 아끼던 소지품 하나만 잃어버려도 아홉수라 그런 것 같고 연애가 안 되고 회사에서 승진에 실패한 것도 모두 다 이놈의 아홉수라 그런 것만 같은 시간, 10년마다 도래하는 마의 계절이다.

드라마는 일단 유학찬 PD와 박유미 작가의 담백한 호흡이 돋보인다. 유 PD는 KBS에서 이적해 tvN ‘더 로맨틱’과 ‘세 얼간이’ 연출에 참여했고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메인 연출 신원호 PD와 호흡한 경험을 바탕으로 첫 드라마 메인 연출을 맡았다. 박 작가 역시 KBS ‘스펀지’와 MBC ‘우리 결혼했어요’ 등을 통해 다년간  예능 작가로 활약하다 드라마 대본은 처음 쓴다. 실상 드라마 장르에선 초보나 마찬가지인 두 사람이지만 마치 ‘응답하라’가 그랬던 것처럼 예능적인 재기발랄 매력과 틀에 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톤이 드러난다.

거기에 아역배우 최로운부터 비투비 육성재, 김영광, 오정세 등 개성이 확연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연기력의 배우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오정세야 워낙 연기파 배우로 정평이 난만큼 능수능란한 생활 연기가 돋보이며 김영광과 육성재의 풋풋하고 다소 투박한 연기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가장 어린 남자 최로운은 예의 귀여운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얼굴에 미소를 번지게 만들기도.

아홉수를 다룬다는 소재 자체가 흥미로운 데다 예능국 출신 PD와 작가의 감각적인 호흡, 개성만점 배우들의 하모니로 보기 좋은 드라마가 꾸려졌다. 아홉수 네 남자들이 언젠가 볕들 날을 기다리는 이야기, 그리고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동반자를 만나는 과정을 리얼하면서도 담백하게 그리고 있다. 흔한 이들이 겪는 삶의 애환, 번뇌, 소소한 행복과 감동의 순간이 작품 구석구석에 박힌 느낌이다.

세상을 사는 모든 아홉수들에게, 더 나아가 오늘도 인생이 지루하고 내 짝이 없어 헤매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위로와 안식의 드라마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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