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7월 한국 최초의 TV 드라마 ‘사형수’가 첫 회를 내보냈다. 당시 TV 드라마는 연극 무대를 그대로 스튜디오에 옮겨놓은 수준이었는데, 1961년 KBS 개국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생방송이었다. 야외 장면을 찍으려면 주인공이 집 안에서 아버지와 다투다가 뛰쳐나간 뒤 다른 연기자들이 시간을 끌고, 그 사이 주인공은 차를 타고 경찰의 호위까지 받아가며 야외 촬영장으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방송의 날인 3일 발간된 '한국 TV 드라마 50년사'는 이 같은 우리나라 TV 드라마의 과거와 현재를 빼곡히 담았다. TV 드라마 역사의 뼈대를 갖춘 셈이다. KBS TV가 개국한 1961년부터 종합편성 채널이 개국한 2011년까지 드라마 7000여 편의 역사를 담았다. 50년을 아우르는 670쪽짜리 '드라마 연표'도 만들었다. 이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발간 기념 좌담회에서 최불암 발간위원장은 "1988년 미국 NBC가 '수사반장'을, 2002년 일본 NHK가 '전원일기'를 취재 왔을 때도 드라마 첫 회분조차 찾을 수 없었다"며 "때늦은 감이 있지만 예전 선배들의 과거를 기록하는 작업의 시초이자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사형수' 부터 '아내의 유혹' 까지

최초의 방송국 HLKZ TV의 15분짜리 드라마 '사형수'로 시작한 드라마는 1964년 TBC '초설'부터 녹화 시대가 열렸지만 녹화기에 편집 기능이 없어 NG가 나면 처음부터 다시 녹화해야 했다. 정중헌 편집위원장은 "당시 제작 여건과 기술력은 지금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낙후했지만, 열정만큼은 박수쳐 줄 만했다"고 말했다.

1975~1978년과 1983~1984년 방송된 KBS ‘전우’(사진 위)와 1971~1989년 방송된 MBC ‘수사반장’(사진 아래 왼쪽), 1995년 SBS ‘모래시계’(사진 아래 오른쪽).

'최초의 막장드라마'라 불리는 1969년 MBC '개구리 남편' 이후 2000년대에 이르러 SBS '아내의 유혹'으로 대표되는 막장드라마는 아예 장르화되기에 이른다. 시청률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제작의 저비용·고효율주의가 엽기적인 줄거리를 택하게 된 것. 2000년 4000만원에서 5년 만에 8000만원으로 뛴 한 편당(60분) 직접제작비도 이를 거들었다. 공동저자인 오명환 숭의여대 자문교수는 "드라마 50년사의 마감기에 창궐한 막장드라마는 결국 드라마에 대한 기획력 부족과 창의력 빈약에서 비롯한 매너리즘"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현대사 비추는 드라마사

드라마는 당대를 비춘다. 최초의 100회 돌파 드라마인 KBS '아버지와 아들'(1969)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해방과 6·25를 거치는 한 집안을 중심으로 긴 세월과 파란만장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역정을 그리며 사랑받았다. 1970년대 퇴폐·불륜 추방을 위한 목적극(반공극·새마을극·국난 극복극)의 하나로 편성된 KBS '전우'(1975)도 당대의 거울이다. 폭력·범죄 드라마가 왕성해진 1980년대엔 모방의 역기능이 지적되기도 했다.

드라마에 직업군이 다양해진 1990년대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속출했다. MBC 미니시리즈 '춤추는 가얏고'는 국악인을 기생처럼 묘사했다며 서울대를 비롯한 15개 대학 국악과 학생들의 항의 방문 등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고, 1994년 SBS의 '이 남자가 사는 법'과 MBC '종합병원'은 간호사 비하를 이유로, MBC의 '사랑을 그대 품안에'는 백화점 직원들의 사기 저하를 이유로 백화점협회의 항의를 받았다.

"TV 드라마도 역사, 기록해야 발전"

김기복 한국방송실연자협회 이사장은 “영화는 관련 연구소도 있고 영화감독에 대한 평전이나 논문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만, 드라마 PD에 대한 자료는 거의 전무하다”며 “대한민국 최고(最古)의 방송사 KBS마저도 자료 정리가 거의 안 돼 있었다”고 꼬집었다. 저작에 참여한 신상일 서울예대 초빙교수는 “지금 한류 드라마의 뿌리가 원로 배우·작가·연출진이다. 반성과 발전을 위해 꾸준한 기록 노력과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