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동쪽 60㎞ 지중해 해상. 북쪽으로 운항하던 길이 16m 목선(木船)이 갑자기 뒤집혔다. 배에는 유럽으로 밀입국하려던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등 아프리카 난민(難民) 200여명이 타고 있었다. 16명을 제외한 180여명이 바로 목숨을 잃었다. 다음 날 지중해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 남쪽에서 엔진 고장으로 표류하던 난민선에서도 시신 18구가 발견됐다. 그 이튿날에도 난민 수백명을 태우고 밀항을 시도하던 어선이 침몰해 6명이 숨졌다. 사망자는 모두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유럽행 선박에 몸을 실었던 아프리카 난민들이었다.
지중해를 통해 유럽연합(EU)으로 밀입국한 건수는 올해만 12만4380명(8월 기준)에 이른다. '아랍의 봄'으로 중동 정세가 혼란스러웠던 2011년 6만9000명 이후 최대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밀항선 침몰로 368명이 숨졌던 '람페두사 참사(慘事)'를 계기로 이탈리아 해군이 난민 구조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오히려 유입이 폭증했다"고 분석했다. 밀항이 잦아지면서 선박 전복(顚覆) 등으로 인한 사망 건수도 급증했다. 올해 밀항으로 인한 사망자는 1880명. 지난해 600건의 세 배를 넘겼다. 미국 CNN방송은 "지중해가 '죽음의 바다'로 변했다"고 했다.
밀항의 현실은 냉정하다. CNN은 "업자들은 감시 레이더를 피하려 작은 배를 이용한다"며 "수익을 위해 난민들을 최대한 배에 구겨 넣는다"고 했다. 20여일 조각배를 타는 동안 구명조끼를 입으려면 200달러(약 20만원), 좋은 자리에 앉으려면 300달러(약 30만원)를 추가로 내야 한다. 물과 음식은 100달러(약 10만원)다. 업자들은 밀항선 한 척당 최대 100만유로(약 13억원)를 챙긴다고 이탈리아 일간 라레푸블리카가 전했다.
'보트 피플' 대부분은 아프리카 및 중동 출신이다. 열심히 일하면 하루 2~3달러(약 2000~3000원)를 겨우 손에 쥐는 곳이다. 이들이 평균 2500달러(약 250만원)를 내면서도 '죽음의 바다'를 건너는 건 모국의 고질적인 정치·사회적 불안정 때문이다. 내전 중인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난민이 62만명에 달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밀항선 탑승 대기자가 모로코에만 4만명"이라며 "리비아에서 불법 입국을 준비 중인 난민도 30만명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와 이라크 내전으로 유럽연합 동쪽의 육로를 통한 난민 유입도 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의 너그러운 복지 정책이 이들을 '자석'처럼 빨아들이고 있다"며 "관대함의 대가"라고 했다.
난민 문제로 유럽 역내 갈등도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약 4만3000명의 난민이 입국한 이탈리아는 해상 밀입국의 '관문(關門)'으로 불릴 정도다. 올해 지중해에서 난민 약 10만명을 건진 이탈리아 해군은 구조 작업에만 매달 약 900만유로(약 122억원)를 쓰고 있다. 안젤리노 알파노 이탈리아 내무장관은 최근 "10월부터는 난민 구조 업무를 할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북유럽 국가들은 "처음 입국한 남유럽 국가에서 난민 신청을 하는 게 '더블린 조약'에 부합한다"고 맞선다. 지난해 유럽연합 28개국 전체 난민 신청 32만여건 중 56%는 독일·스웨덴·프랑스에 집중됐다. 하지만 실제 난민으로 인정받는 비율은 지난해 15%(EU 28개국 평균)에 불과하다. 프랑스 내 불법이민자만 20만~40만명으로 추산될 정도다.
이민 문제는 유럽 내 극우파의 득세로 이어진다. 슈피겔은 "평소 인권을 강조해 온 유럽이 난민 문제로 '도덕적 딜레마'에 처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