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5년 일했다. 마우스를 잡은 손은 분주했지만, 늘 가슴 한구석이 휑했다. 하고 싶은 미술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서른 넘어 택한 작가의 길. '조급해하지 말자' 스스로를 채근했다. "어렵사리 한 인생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돼 기뻐요." '늦깎이 작가'로 '2014 아시아프(ASYAAF·아시아 대학생·청년작가 미술축제) 프라이즈'를 수상한 김예원(38) 작가가 웃는다.
#. "상 못 타면 평생 아시아프 욕할 생각이었습니다. 내 실험 정신도 못 알아주는 곳이라고! 하하." '경상도 사나이' 서성훈(28) 작가가 호방하게 내뱉었다. 작품이 팔리리란 기대는 아예 안 했다. '도박'하다시피 질렀다. "팔리는 그림은 사양하겠다. 미래의 가치에 투자하겠다"는 올 아시아프의 방향만 믿었다. 그렇게 낸 미디어 작품으로 진짜 상을 받았다.
확신 없는 작가의 길에 용기를 북돋아줬다. 유행과 상관없이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젊은이에겐 가능성을 선사했다. 25일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사에서 '2014 아시아프 프라이즈' 시상식이 열렸다. 올 수상자들에겐 어느 해보다 작가로서의 투지, 창의성이 돋보였다. 김태호 총감독이 "청년 작가의 신선한 정신을 되찾겠다"고 밝힌 포부가 프라이즈로 결실을 보았다. 올 수상자는 역대 최고 경쟁률(7.62:1)을 뚫고 출품 행운을 얻은 작가 450명 중 5명에게 돌아갔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200만원이 주어졌다. 24일 폐막한 2014 아시아프엔 총관람객 2만5100명이 찾았고, 전시작 2359점 중 919점이 팔려 판매율 39%를 기록했다.
험난하고 외로운 청년 작가의 길에서 뜻밖의 단비를 만난 수상자들은 상기됐다. "이번 수상으로 적어도 제 작품이 혼자 만족하는 작업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화판에 못을 박고 자국을 내면서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담은 작품 '삼사라'로 수상한 원나래(23) 작가가 조곤조곤 말했다.
서성훈 작가는 작가의 길을 그만둬야 할지 선택해야 할 기로에서 마지막 심판대로 아시아프를 선택했다. 프로젝터로 쏜 빛이 어항을 통과해 천장에 비치도록 한 '반야월 2.0', 층간 소음에서 영감 받아 진동 스피커를 활용한 '윗집 시끄럽네' 등 재기 발랄한 작품은 비록 판매는 안 됐지만 심사위원단으로부터 실험 정신을 높이 샀다.
"불안한 미래 때문에 늘 안개속을 걷는 것 같았는데 작은 위안이 생겼어요." '알바'로 재료비를 해결하며 작업한다는 수상자 이단비(25) 작가 얘기다. 이 작가의 수상작 '관점을 달리하면…'은 우리가 사물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원론적인 질문을 던진 작품이다. 미국 유학 중인 김정현(24) 작가는 함께 산 터키 룸메이트를 일상 소품으로 형상화한 다음 촬영한 사진 작품을 출품해 수상했다. 곧 8년간의 유학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할 예정인 그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작업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작품성과 상업성을 고루 갖춰 앞으로 화단의 유망주로 발전할 잠재력이 있는 작가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장화진 소마미술관 명예관장·곽남신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장·윤동천 대학미술협의회장·이기봉 고려대 조형예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