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열이 40도 넘게 올라서 못 왔어요."

주말부부라 더욱 귀했을 주말을, 심지어 아이까지 떼어놓고 와야 했던 정석문 아나운서가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로 말한다.

이날 매체를 통해 처음 얼굴을 공개하는 아내 김지영 씨는 서산에서 근무하는 판사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에 듣던 대로 미인이기까지. 인터뷰 내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보는 정 아나운서가 십분 이해갈 만큼 둘은 잘 어울렸다. 미주알고주알 재미난 에피소드를 풀어놓는 '수다' 과는 아니었지만 교과서처럼 반듯한, 그래서 티 하나 없어 보이는 부부의 이야기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아나운서 남편과 검사 아내의 첫 만남

정석문 아나운서가 지금의 아내를 만난 건 2009년 봄, 지인의 소개팅을 통해서였다.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정 아나운서는 , , 등을 거쳐 를 진행하던 입사 8년 차였다. 결혼을 생각할 나이였지만 대단히 급한 것도 아니었기에 그의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은 꽤 이슈가 됐다(정 아나운서와 김지영 씨는 만난 지 4개월쯤 지난 그해 7월 18일 결혼식을 올렸다). 하객으로 자리한 지인들이 "평소 아무리 예쁜 여자 연예인들 앞에서도 시큰둥했던 정 아나운서가 늘 신부 사진을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놓고 좋아하곤 했다"고 말했을 정도니, 얼마나 신부에게 푹 빠져 있던 것인지 대충 상상이 간다.

"초등학교 친구가 남편이 다닌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같이 다녔어요. 그래서 서로 알게 된 다음 저를 (남편과) 소개해주었죠. 사실 저는 만나기 전부터 엄청 맘에 들었어요. 인터넷으로 찾아봤거든요. 제 주변에는 공부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일단 (상대적으로 정 아나운서의) 외모가 정말 멋졌고.(웃음) (옆에서 정 아나운서가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사람들이 욕할라" 하며 제지한다.) 이미지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실제로 만나보니까 더 좋았어요."

만난 지 4개월 만에 결혼을 밀어붙인(?) 정 아나운서는 2살 연하의 아내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한 1주일 정도 만나니까 결혼해야겠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그 1주일도 거의 매일 만났어요."

이들 커플에게 좀 더 눈길이 가는 데는 아내 김지영 씨의 직업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대개 성공했다고 하는 직업군 1순위로 꼽는 '판검사'를 모두 해봤으니 말이다. 결혼 당시 경기 지역 검찰지청 검사였던 아내는 현재 판사로 충남 서산에 근무 중이다.

"저는 와이프 만나기 전까지 검사가 뭐 하는 직업인지 잘 몰랐어요. 물론 뉴스에 검사 어쩌고 하는 얘기가 맨날 나오지만, 막연하게 '나쁜 사람 잡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랐거든요. (가까이에서 본 판사라는 직업은) 일단 어려운 직업인 것 같아요.(웃음) 전 아마 사법고시 봤으면 떨어졌을 거예요. 그리고 사명감 없으면 못 할 것 같고요. 현실적으로는 지방에 근무하는 게 가장 힘들어요. 법조인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이 판검사를 목표로 삼을 텐데, 물론 그 일을 통해 보람을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막상 겪어보면 지방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는 게 쉽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 거예요. 업무량도 정말 많은 것 같고요."

옆에서 아내 김지영 씨가 말을 거든다.

"그런 면(업무가 많아 야근이 잦은 점)에서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참 부럽더라고요.(웃음) 사실 처음에는 TV에서 보던 사람이 실제로 제 앞에 있으니까 좀 신기했어요. 근데 그것도 익숙해지더라고요. 집에서는 일반 회사원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진짜 그냥 회사원.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하는 회사원이요."

직업이 직업인 만큼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화제와 이슈, 생활 속 경제를 가장 먼저 접한다는 것도 아나운서의 장점 아닌가.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깊이는 아니더라도 많이 알고 있어요. 방송을 하면 접할 기회가 아무래도 많잖아요.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심지어 집안일까지도요.(웃음) 해본 적이 없다는데 너무 잘해요."(웃음)

지방에서 근무하는 아내 대신 '서울 살림'을 책임지는 정 아나운서의 꼼꼼함도 아내의 일거리를 한시름 덜어준다.

"남편은 꼼꼼하다고 해야 하나 철저하다고 해야 하나, 뭐든 계획을 짜고 준비가 철저한 편인 것 같아요. (옆에서 정 아나운서가 "아냐, 그렇지 않아"라고 하자) 내가 보기에는 그런데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그리고 남편이 호기심이 많아요. 그래서 저 만나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대를 1년 정도 다녔어요."

이미 고려대 시절 영문학을 전공하고 경영전문대학원까지 나온 그는 호기심 때문에 아내의 전공 분야, 법에 잠깐 발을 담그기도 했다고.

"다니다 말았어요.(웃음) 처음에는 헌법, 민법, 상법, 형법 이런 거 배우다가 몇 학기 지나니까 무슨 지적재산권, 비교법 이런 걸 가르치더라고요. 사실 헌법, 민법, 상법 같은 건 배우면서도 '아, 그때 뉴스에 나왔던 내용이 이거였구나!' 하고 도움이 많이 되는데, 좀 깊이 있게 들어가니까 '이게 대체 나하고 무슨 관계지?' 싶더라고요.(웃음) 내가 법조인이 될 것도 아닌데 굳이 더 할 필요는 없겠다 해서 그만뒀어요. 그냥 호기심이었죠."

주말부부는 어려워

신혼 시절 경기도 평택에서 근무했던 아내 지영 씨는 이후 광주지검 검사를 거쳐 현재 충남 서산에서 판사로 재직 중이다. 2012년 12월부터 서산 근무를 시작했으니 판사로 임용된 지 어느덧 1년 반. 당연히 주말부부 외에는 선택권이 없다.

"처음에는 검사가 되고 싶어서 검사가 됐는데 결혼하니까 여러모로 힘든 점이 많았어요. 일단 2년마다 지방을 옮겨 다녀야 하는데 그게 결혼생활 하는 데 너무 안 좋을 것 같았죠. 그에 비해 판사는 4년 정도 지방 근무를 마치면 그다음에는 좀 더 안정적으로 이동이 가능해요. 가정생활 하는 데 훨씬 좋을 것 같아서 판사로 바꾸게 됐어요."

부부가 처음부터 주말부부로 살았던 건 아니다.

"처음엔 남편이 (당시 제가 근무하던) 평택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했어요. 평택엔 KTX가 없으니까 누리호를 타거나 가끔 차로 오갔죠. 그렇게 1년 반 정도 살다가 제가 광주로 발령 받으면서 주말부부 생활을 시작했어요."

혹자는 결혼 5년 차에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눈길을 주고받는 이들을 바라보며 '주말부부라 가능한 것 같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역시 주말부부는 권할 만한 게 못 된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안 좋아요. 일단 두 집 살림을 해야 되니까 품도 두 배로 들고 교통비도 엄청나게 들어요. 아이 육아도 문제고요."

육아를 맡고 있는 정 아나운서는 아예 SBS가 있는 목동에 살림을 차렸다. 사내 어린이집도 요긴하게 활용한다.

"저희 아나운서들은 본인 방송 스케줄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에 일찍 나오면 일찍 퇴근하는 게 가능해요. 저 같은 경우는 오전 7시 라디오를 진행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3∼4시쯤 퇴근하죠. 그리고 아이 픽업해 오면 그때부터는 육아예요."(웃음)

주중에는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어쨌든 육아는 전적으로 정 아나운서의 몫이다. 이제 막 네 살 된 아이를 매일 보지 못하는 엄마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

"주말부부는 장점이 없어요. 아이 못 보는 게 가장 힘들죠. 평일에는 매일 화상통화 해요. 금요일 저녁에 (서산에서 서울로) 올라갔다가 월요일 새벽에 내려오는데, 주말 재밌게 놀고 월요일 아침에 아이랑 떨어질 때가 정말 엄청난 일이에요."

아이도 엄마가 오는 금요일을 가장 좋아한단다.

"아이가 금요일 아침 되면 오늘이 금요일이라고 좋아해요. 수요일쯤 되면 '오늘 금요일이야?' 하고 물어보고요. 그런 거 보면 짠하죠."

아직 어리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면에서 아이 교육 등 육아에 대한 대략적인 계획을 짤 엄두도 나지 않는다.

"앞날을 알 수가 없어요. 어디로 발령을 받을지 모르니까요. (옆에서 아내가 "판사는 지방 근무 마치면 그 후에는 주로 수도권이나 서울에서 오래 있을 수 있대"라고 하자) 지역법관제도 없어진대. 이번 주에 기사 났더라. 한 지역에서 10년 이상 근무 못 하게 한대."

한 지역에서 오래 아이를 키우는 건 이미 포기한 지 오래.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새 길을 찾을 땐 또 과감해야 한다.

"남편은 아이를 시골로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도 해요."(웃음)

"저희 아버지가 강원도 홍천 시골에 계시거든요. 텃밭 일구시면서요. 근데 그 지역은 선생님 숫자랑 학생 숫자랑 비슷하대요. 영어나 수학 한 자 더 배우는 것도 좋겠지만 어릴 때는 특히나 그런 게(자연에서 뛰노는 게) 좋으니까요. 모르겠어요, 어떻게 될지. 저희도 아직은 막연해요."(웃음)

그래서 둘째를 갖는 것도 당분간 계획 무(無).

"저 혼자 애 둘을 키우기가….(웃음) 일단 같이 살아야 둘째를 낳을지 안 낳을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결혼할 때 아내가 (직업 성격상) 지방 근무를 해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그때는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 닥칠지 가늠하지 못했어요. 근데 막상 경험해보니 '검사 이거 너무 힘들다' 그래요. 본인도 검사보다 판사가 적성에 더 맞지 않나 해서 겸사겸사 옮기게 됐는데, 여기(판사)도… (썩 근무 조건이 나은 것 같진 않아요)."(웃음)

주말부부라는 제약에 가로막혀 계획은커녕 그때그때 상황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부부지만 마음 한구석에 꿈은 있다. 특히 사진 찍기와 여행을 좋아하는 정 아나운서는 더 늦기 전에 아내와 둘이 세계여행을 가고 싶단다.

"미국 월스트리트의 전설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라는 사람이 있어요. 30대에 이미 억만장자가 됐고 젊은 나이에 은퇴해서 세계여행을 떠났죠. 한번은 오토바이로 전 세계를 일주해서 기네스북에 올랐고, 그로부터 10년 뒤에는 자동차를 타고 전 세계를 일주했어요. 제가 그 사람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서 아내와 처음 만난 날 그렇게 꼭 한번 여행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어요. 요즘에는 농담 삼아 중학교 때 애 기숙학교 보내고 우리끼리 가자' 그래요.(웃음) 너무 나이 들면 다니기 힘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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