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슨·IBM·마이크로소프트·삼성전자·LG전자·화웨이….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북서쪽으로 차를 타고 20분쯤 달려가면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의 간판이 연이어 나타난다. 바로 스웨덴이 자랑하는 연구 도시인 '시스타 사이언스 시티(Kista Science City·이하 시스타)'에 입주한 기업들 면면이다. 면적 200만㎡의 시스타에는 12만명이 거주하는데, 이곳에 있는 1168개 ICT업체에서 일하는 인력이 2만4000명이나 된다. 특히 블루투스(근거리무선통신)와 LTE(4세대 이동통신) 같은 원천기술이 이곳에서 탄생해 시스타는 세계 최고의 '모바일 밸리(Mobile valley)'라고 불린다.
◇세계 최고의 모바일기술 연구단지
시스타의 상징은 32층짜리 사이언스 타워 빌딩이다. 이곳 1층 식당가와 바로 옆 갤러리 쇼핑몰은 점심시간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시스타에 있는 스웨덴 왕립공대(KTH) 무선통신연구소(Wireless@KTH)의 클라스 베커만 소장은 "전 세계 주요 ICT 기업들이 다 모여 있어 식당에 1시간 반만 앉아 있으면 글로벌 동향을 거의 파악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시스타는 1976년 통신기술회사 에릭슨이 스톡홀름의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해 도심 외곽에 있던 군사훈련장 터로 무선통신사업본부와 연구소를 옮기면서 시작됐다. 에릭슨은 2003년에 본사까지 이곳으로 옮겼고 블루투스와 LTE 기술을 개발해냈다. 스웨덴 최대 기업인 에릭슨이 이곳에 자리를 잡자 납품업체들도 뒤를 따라 공장과 연구소를 이전했다. 에릭슨 협력업체인 아이텔(iTell)의 로저 군트문드사터 대표는 "시장을 좌우하는 고객이 가까이 있고, 필요한 전문 인력과 생산설비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시스타의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스타에는 연구원 1100여명과 대학생 6800여명이 살고 있다. 특이한 것은 에릭슨의 경쟁 업체들도 입주한 것. 베커만 소장은 "부품업체와 대학, 연구소가 몰리면서 인력을 찾아 에릭슨의 경쟁업체들도 이곳으로 왔다"며 "시스타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인식이 퍼져 서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ICT 기업들이 몰리자 정부 연구소와 대학도 시스타로 찾아왔다. 스톡홀름대와 스웨덴왕립공대는 정보통신대학을 아예 이곳으로 옮겼다. 스웨덴 아크레오 연구소의 임장권 박사는 "반도체 연구에 필수적인 클린룸(청정실) 같은 시설을 기업체가 대학이나 연구기관이 쓸 수 있도록 지원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벤처 창업의 요람으로 성장
왕립공대 무선통신연구소는 시스타 입주 기업 및 유럽연합(EU) 소속 4개국 대학 연구원들과 24시간 화상통신을 하면서 LTE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5G(5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연구 중이다. 이 대학 성기원 교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옆자리 동료에게 말하듯 다른 나라 연구원들과 화상회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스타는 최근 벤처창업의 요람으로 발전했다. 입주 업체와 대학이 참여하는 시스타 운영기관인 '일렉트룸(Electrum)' 재단은 매년 10~15개 벤처업체를 선정해 지원한다. 태양전지업체 미드서머도 2004년 창업 당시 시스타 보육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았다. 이 회사는 딜로이트 컨설팅이 2007~2011년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녹색기술업체로 선정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시스타의 또 다른 장점은 높은 생활 만족도다. 류영대 한국연구재단 스웨덴 사무소장은 "주말이면 썰물처럼 사람이 빠져나가는 산업단지가 아니라 주거와 쇼핑, 여가시설을 겸비한 자족(自足) 도시"라고 말했다. 스웨덴 정부는 2015년까지 18억달러를 투자해 시스타를 세계 최고의 기업 단지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