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중심가 카이저빌헬름 교회 근처에 케테 콜비츠 미술관이 있다. 콜비츠는 1·2차 세계대전과 나치 치하에서 고통받는 사람들 모습을 작품에 담아 불의(不義)의 시대에 저항한 여성 미술가다. 지난겨울 이곳을 찾았더니 한 무리 고등학생들이 교외(校外) 미술 수업을 받는 모양이었다. 각자 콜비츠 판화 작품들 앞에서 연필로 열심히 데생을 하고 있었다. 콜비츠의 단순하면서 강렬한 묘사를 배우려는 것이다.

▶콜비츠는 1차 대전에서 아들을 잃고 2차 대전에서 손자를 잃었다. 그는 이런 어머니와 할머니 심정으로 반전(反戰)·평화 메시지의 걸작들을 많이 남겼다. 그의 판화 중에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는 작품이 있다.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어린아이들을 강인한 두 팔로 품에 꼭 껴안은 어머니의 눈빛에 분노와 애절함이 교차한다. 콜비츠는 또 가난하고 힘없지만 기댈 데 없는 사람들의 슬픔과 절망을 화폭에 담았다. 그의 작품에선 늘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묻어난다.

▶중국 근대의 문호 루쉰(魯迅)은 1920년대 목판화 운동을 하면서 콜비츠를 스승으로 삼았다. 1980년대 오윤 등이 전개한 한국 민중미술운동에서도 콜비츠는 전범(典範)이었다. 이런 역사를 떠올리며 올해 광주비엔날레를 은근히 기다렸다. 비엔날레 창설 20주년을 맞아 여는 특별전에 콜비츠와 루쉰의 판화가 100여점이나 나온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그런데 전시회 모양이 어째 이상하게 돼 가는 것 같다.

▶특별전 초대 작가인 홍성담씨의 대형 걸개그림이 논란이 되면서 개막식이 썰렁해졌다고 한다. 홍씨는 박근혜 대통령을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이 조종하는 허수아비로 그렸다. 이에 대한 비판이 일자 그는 허수아비를 닭 모양으로 바꿨다. 비엔날레 측은 걸개그림 전시를 유보했고 몇몇 작가는 이에 대한 반발로 작품을 철수했다. 이런 소동 속에 케테 콜비츠나 루쉰의 이름은 덮여버렸다.

▶콜비츠는 "나는 혁명가가 아니다"라며 "나는 예술가로서 느끼고 표현할 뿐"이라고 했다. 그의 작품이 감동을 주는 것은 안에서 참고 참다 예술의 이름으로 토해내는 울부짖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홍씨는 지난 대선 때도 박근혜 후보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출산하는 듯한 그림을 그려 논란이 됐다. 광주비엔날레는 국민의 지원과 관심 속에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비엔날레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운영자나 참여하는 작가·큐레이터나 비엔날레 위상에 걸맞은 시야를 생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