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용학 대농그룹 회장이 1995년 5월 8일 한·일 경제 친선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일본 정부가 외국인에게 주는 훈장인 ‘훈일등(勳一等) 서보장(瑞寶章)’을 받은 후 신라호텔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박용학(99) 전 대농그룹 명예회장이 2일 숙환(宿患)으로 별세했다. 국내 면방직 산업의 선구자이자 한일경제협회장, 한중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한국무역협회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1915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난 박 전 명예회장은 1935년 원산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에서 사설 우체국을 하다 상경해 1946년 자본금 100만원으로 대한계기제작소를 설립했다.

그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 대농그룹의 전신인 곡물·비료 무역업체인 대한농산을 창업했고, 1968년 쌍용그룹으로부터 금성방직과 태평방직을 인수해 대농그룹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섬유업체로 육성했다. 한 재계 원로는 "박 전 회장은 면방직 산업을 수출 산업으로 키우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박 전 회장은 이어 1969년 미도파 백화점을 인수했다.

대농그룹은 석유파동과 국제원면 시세 폭락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어 1975년 법정관리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박 전 명예회장은 10여년 만에 경영 위기를 극복하고, 내외경제·코리아헤럴드 등 언론사를 인수해 사세를 확장했다. 박 전 명예회장은 1989년 아들 박영일씨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1991~1994년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내며 '재계의 마당발'로 불렸다.

아들 박영일 전 회장은 이후 대농그룹을 유통·정보통신 사업을 주축으로 21개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키워갔다. 대농그룹은 1990년대에는 재계 30위권에 올랐다.

하지만 1997년 신동방그룹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전략에 휘말리고, 잇따라 IMF 외환위기를 맞이하면서 해체되고 말았다. 당시 사세 확장 과정에서 재무구조가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농그룹은 신동방그룹으로부터 미도파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1288억원을 쏟아부었다가 1998년 최종 부도 처리됐다.

유족으로는 아들 박영일 전 회장과 딸 선영·경희·은희(디큐브아트센터 극장장)씨, 사위 이상렬 청운대 총장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35호실, 발인은 4일 오전 8시. (02)3010-2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