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이익을 내기 위해 항상 더 큰 위험을 감수하려는 속성이 있다. 이런 기업의 탐욕이 재난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감독·예방하는 것이 정부 역할이다."
재난 연구의 대가인 찰스 페로(89·사진) 예일대 명예교수(사회학)는 재난을 기업과 정부 간의 줄다리기에 비유했다.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균형이 무너지면 어느 한쪽으로 끌려가는 것처럼, 정부의 관리·감독이 느슨해지면 기업의 탐욕이 재난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페로 교수는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정부 조사단원으로 참여하면서 재난 연구에 관심 갖기 시작했다. 이때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해 1984년 펴낸 저서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에서 "원자력발전소, 화학 공장, 항공기, 선박 등 인간이 만든 복잡한 시스템은 항상 참사 위험을 안고 있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실수가 겹치면 대형 사고가 발생한다"는 '정상 사고(Normal Accident)' 이론을 제시했다. 100여년간 전 세계에서 발생한 주요 대형 사고를 분석한 이 책은 재난 연구의 바이블로 통한다.
페로 교수는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한국에 원자력발전소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니 해운업체의 상습적 과적 운항과 불법 개조, 정부의 감독 실패와 구조 과정의 혼선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한 것이 없었다"며 "이런 수준이라면 한국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게 이상할 정도"라고 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정상 사고' 이론으로 볼 때 세월호 참사는 뭐가 문제였나.
"정상 사고는 아무리 주의해도 시스템의 복잡성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다. 세월호 참사는 누구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 해운업체와 정부 등 잘못한 주체가 너무 많다. 세월호 참사는 극단적으로 비정상적인 사고다."
―당신은 선박 사고 가능성이 항공 사고보다 훨씬 높다고 했는데….
"항공 사고는 일단 터지면 대형 사고다. 항공사들은 사고로 회사가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사고 예방에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 감독 당국도 항공기 안전 정보를 광범하게 수집·분석하고 공개한다. 반면 해상 운송은 고대 페니키아인부터 역사가 2000년이 넘었지만 사고 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배에는 블랙박스가 없다. 침몰 원인을 정확하게 밝히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과거의 실패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없는 구조다."
―이번 사고로 한국이 안전 후진국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꼭 선진국과 후진국으로 구분할 수는 없다. 쿠바는 미국보다 경제적으로 낙후했지만 허리케인 같은 자연재해에 훨씬 잘 대처한다. 수없이 대피 훈련을 하고, 건물도 허리케인에 버티도록 튼튼히 짓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티는 허리케인이 한번 지나가면 쑥대밭이 된다. 평소 얼마나 잘 대비하느냐 하는 문제다."
―재난 대비에서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가령 유럽의 광산 사고는 미국보다 훨씬 드물게 발생한다. 유럽의 규제가 미국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참사를 막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정부와 기업 차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정부는 감독과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작은 정부' 지지론자들은 '정부가 규제에 너무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고 비판하지만, 각국 정부가 국방비에 쏟아붓는 액수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정부는 재난 예방을 위해 더 많은 규제와 감시 인력을 고용해야 한다. 규제 관련 투명성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수록 규제·감독도 쉬워진다."
―기업은 뭘 바꿔야 하나.
"대형 사고가 터지면 기업이 망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위험을 통제하는 부서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효율성만을 추구해 위험 관리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 9·11테러 때 피해가 컸던 것은 원래 지하에 있어야 할 연료 탱크를 건물 중간 곳곳에 설치했기 때문이다. 지하에서 연료를 끌어올리는 비용을 줄이려고 그런 것인데 결과적으로 대형 참사로 연결됐다."
―안전에 대한 국민 인식도 높여야 하지 않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시민 의식 문제로 돌리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의식 변화는 굉장히 어렵다. 제도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국민이 싫어하겠지만 법이나 규정 위반에 대한 제재가 강화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