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볼 때 대중 앞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정치인이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 어찌 보면 연예인보다 더욱 절박한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이미지 관리가 필수적이었다.
지난 7월 시진핑 주석과 함께 방한한 영부인 펑리위안은 화제의 중심에 선 최초의 중국 퍼스트레이디다. 그녀의 패션에 대한 관심 덕분에 이미지 전략가인 나 또한 여러 뉴스 채널에서 ‘퍼스트레이디로서의 그녀의 패션 외교’에 관한 인터뷰를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펑 여사는 를 언급하는 등 위트 있는 소통으로 기존 중국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고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 충분한 역할을 했다. 특히 이번 방한을 통해 그녀의 패션은 ‘배려 외교’로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그녀의 배려 패션의 세 가지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혼인 박근혜 대통령을 배려해 시진핑 주석의 넥타이와 본인의 스카프 색을 맞추던 커플 룩을 지양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입국 당시 우아한 한복 저고리를 연상시키는 재킷을 입는 방법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다는 것이고, 셋째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컬러를 활용했다는 점이다. 입국했을 때와 창덕궁을 관람할 때 우리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흰색, 절개와 지조의 상징이자 조화의 의미를 담은 녹색 계열의 옷을 입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물론 귀국 시에는 중국을 상징하는 빨간색의 스카프로 피날레를 장식하며 인상적인 패션 외교를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정치 이념과 성향을 드러내는 전략적 이미지 관리
이렇게까지 퍼스트레이디의 패션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주목해야 하는 걸까? 단지 그녀의 취향일 수도 있지 않을까? 끼워맞추는 것이 아니냐 하는 평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대중 앞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정치인이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 어찌 보면 연예인보다 더욱 절박한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이다. 정치인들은 대중의 인기를 바탕으로 표(票)를 얻으므로 강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하고 자신만의 색깔을 일관되게 전달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정치인들은 연습과 훈련, 때로는 경험을 통해 이미지 관리를 한다. 그런데 이제는 정치인뿐 아니라 그 가족의 이미지도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펑 여사의 패션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남편과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성향을 보여주는 문화적 기호인 셈이다.
한성대학교 의류패션산업전공 김성복 교수는 "19세기 부르주아 남성들은 자본주의의 성장에 따라 합리적인 단순 기능미를 갖춘 비즈니스 슈트를 유니폼처럼 입게 되었다. 그러나 이 보수적인 단순한 슈트는 부르주아 남성들의 성공을 가시적으로 표시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사치스러운 여성 패션을 등장시킴으로써 성공을 과시하고자 했다. 그런 흐름에 따라 당시의 여성들은 거추장스럽고 과장된 값비싼 드레스를 입고 그들의 아버지나 남편이 이룩한 부를 효과적으로 진열해주어야 했다. 따라서 여성복은 남성들의 지위와 계급을 전시하기 위한 '과시적 소비'의 장이 되었다"고 말한다. 오래전부터 여성의 패션은 단순한 옷차림이 아니라 그들이 주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그 이미지를 상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패션이 전략이라는 뜻이다.
패션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던 퍼스트레이디들
변호사 시절 둔탁한 검은색 안경테와 부풀린 듯한 파마머리로 촌스러웠던 힐러리 클린턴은 퍼스트레이디가 되자 21세기 여성을 대변이라도 하듯 지적이면서도 세련된 커리어 우먼 헤어스타일로 이미지 연출에 성공했다. 민주당 연방 상원의원으로 데뷔하면서 쇼트커트 스타일로 변신했고, 패션에 있어서는 선명한 색상의 슈트로 자신감 있고 당당한 미국인다운 모습을 표현했다. 특히 대외적으로 중요한 공식 석상에서는 유독 블루 계열을 즐겨 입는데, '블루'는 도시적인 세련미를 표현하기에도 적합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가 소속된 민주당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그녀만의 이미지 전략인 셈이다.
또 다른 패셔니스트는 고 다이애나 비다. 다이애나 비는 재클린 케네디와는 다른 면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황태자비에 걸맞은 우아하면서도 단아한 스타일링과 기부 및 자선 활동을 통해 보여준 자애로운 모습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시간과 장소, 목적(T.P.O)에 맞는 옷으로 황태자비의 본분에서 벗어나지 않는 적절한 옷차림을 연출했고, 자선사업에 열정을 기울인 그녀답게 하얀 셔츠와 짙은 색 스커트에 네이비 컬러 재킷을 더하는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는 자신과 두 딸을 위해 미국의 대중 브랜드 J.Crew(제이크루)를 즐겨 구입함으로써 서민들에게 '대통령과 가족도 당신들과 같은 옷을 입는다'는 동질감을 주었고, 비중 있는 자리에서는 '제이슨 우', '타쿤' 같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젊은 아시아계 디자이너의 옷들을 선택함으로써 미국에 거주하는 유색인종을 대변하는 역할에도 앞장서고 있다. 개성 있으면서도 상황에 알맞은 그녀의 스타일링은 미국 중년 여성들 사이에서 '미셸 따라 입기' 열풍을 일으켰다. 신진 디자이너의 의상은 물론 중저가 브랜드를 고급스럽게 소화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녀에 대해 에서는 "아마도 패션 역사상 최고의 '레인메이커(Rainmaker, '행운을 부르는 사람' 혹은 '특정 분야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이미지 전략'은 대중의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기업의 대표와 간부, 전문직 종사자, 외부인과 접촉이 잦은 영업 직원, 취업 준비생, 심지어 결혼을 앞둔 남녀까지 주어진 상황에 따라 자신의 매력을 최대한 부각시켜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미지 전략은 전문화된 기술적 영역이기는 하지만 이미지 연출을 위한 형식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강점과 약점에서 본질과 진면목을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내가 오늘 입는 옷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생각하고 옷장 앞에 섰다면 이미 당신은 이미지 전략가다.
허은아 소장 국내 최초 글로벌 이미지 전략가로 컨설팅 회사 '예라고'의 대표이며 한국이미지전략연구소 소장이다. 많은 정치인, 기업 임원의 퍼스널 이미지 컨설팅을 하고 있으며 MBC 등에서 다수의 방송 강의를 진행했다. 저서로는 ,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