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르헨티나 백성은, 특히 소박하고 가난한 이들은 수녀님들에 대해 매우 따뜻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수녀님들을 존대하고 사랑합니다. 수녀님들 안에서 성모님을 느끼며 거룩한 어머니이신 교회의 이미지를 보게 됩니다.”
8월 방한하는 프란치스코(78) 교황이 1993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보좌주교 시절 현지 시립병원에 파견돼 온 한국 수녀회 ‘성가소비녀회’에 보낸 편지 내용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중남미한국문화원이 교황 방한을 기념해 마련한 ‘사진으로 보는 교황과 아르헨티나의 한인들(El Papa Francisco y la comunidad coreana a través de imágenes)’ 전에서 이 편지를 찍은 사진을 선보였다.
중남미한국문화원이 공개한 편지는 한글 번역문이다. 수녀회 소식지 ‘소비녀’ 1993년 가을호 지면을 촬영했다. 중남미한국문화원에 따르면, 1993년 4월15일 성가소비녀회(당시 명칭 ‘서울 성가소비녀회’)는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주교(현 프란치스코 교황)의 초청에 화답해 수녀 3명을 아르헨티나 ‘테오도로 알바레스’ 시립병원에 파견했다.
환자들을 보살펴줄 원목수녀를 찾지 못해 오랫동안 고심한 베르골료 주교는 지구 반대편에서 온 수녀들의 전교활동에 감사하는 뜻으로 같은 해 5월29일 성가소비녀회 창립 50주년 축하 편지를 보내왔다.
교황은 편지에서 “기존에 있던 수녀회가 철수한 뒤 이곳 수도회 대표들에게 수녀를 보내달라고 20여통의 편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는데 한국에서 수녀님들이 와주셨다. 우리 아르헨티나인들은 수녀님들 안에서 성모님을 느끼며 거룩한 어머니이신 교회를 본다”며 고마워했다.
당시 아르헨티나에 파견된 세 명의 수녀 중 한 사람인 최정희 베노아 수녀는 “교황님은 온화하며 겸손한 분이셨다. 수도생활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무엇이든지 도와주시겠다는 말씀과 오랜 시간 많은 일을 하면서 지치고 슬픈 모습으로 살지 말고 하루에 서너 시간만 일하더라도 웃으면서 기쁘게 살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 하느님이 왜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는지 알 수 있었다. 나에게 새로운 수도생활의 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교황이 스페인어로 작성한 편지의 원본은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글 번역본과 교황이 한국 수녀들을 초청하기 위해 보낸 공식 서한만 남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으로 선출된 뒤인 지난해 성탄절에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인 수녀들에게 카드를 보내 변함없는 감사를 표했다.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의 아르헨티나 진출은 당시 테오도로 알바레스 시립병원의 원목신부였던 동포한인 문한림 유베날 주교(59)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지난 2월 아르헨티나 산마르틴 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된 문한림 주교는 교황 방한에 맞춰 8월 중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불과 2년 전까지 교구장과 교구 사제 관계였던 프란치스코 교황과 문 주교가 한국에서 재회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성가소비녀회는 1943년 12월25일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성재덕 베드로 신부가 설립한 국내 토종 수도회로 가난한 사람, 병자, 장애인, 무의탁자들을 돌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