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 부패 정도를 둘러싸고, 유 전 회장 본인의 시신이 맞느냐는 의혹이 이어지고 있다. 유 전 회장의 시신이 발견 당시 ‘백골(白骨)’에 가까운 상태였는데, 유 전 회장이 살아있다는 게 마지막으로 확인된 5월 25일부터 시신 발견 날짜까지 길어도 19일간 시체가 80% 가량 부패해 백골화되는 게 가능하냐는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국내 연구진이 지난 2010년 인체와 비슷한 돼지 사체를 이용해 부패 속도를 측정한 실험 결과가 유 전 회장의 시신 부패 속도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성대 정재봉 법의곤충학 박사(34)는 올해 2월 발표한 ‘돼지 사체를 이용한 법의학 및 법곤충학적 연구’라는 논문에서 돼지 사체가 부패하는 모습을 주검발생·팽창·부패·건조의 다섯 단계로 나눠 속도를 측정했다. 정 박사는 피부와 장기가 사람과 가장 유사한 데다, 잡식성이라는 점 또한 비슷해 돼지 사체를 인체를 대신할 표본으로 골랐다.

정 박사는 2010년 8월 부산 사상구 낙동강 인근 초원에서 돼지 사체 4구의 부패 속도를 측정했다. 정 박사는 다양한 시신의 상태를 가정하기 위해 돼지 사체 4구에 담요를 덮거나 지붕을 설치하는 등 조건을 달리했다. 이 중 몸통을 담요로 감은 돼지 사체의 상태가 겨울 점퍼와 면바지를 걸치고 있었던 유병언 전 회장의 시신 상황과 유사하다.

담요를 감은 돼지 사체는 ‘건조 단계’가 종료 시점까지 도달하는 데 15일이 걸렸다. 이 단계는 뼈·연골·털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체 조직이 사라진 상태로, 유 전 회장의 시신이 발견될 당시의 모습과 비슷하다. 건조 단계가 종료하면 시신은 ‘백골화 단계’로 접어드는데, ‘건조 단계’에서 남아있던 조직마저 곤충에게 먹히거나 부패해 뼈만 앙상하게 남는 상태다.

담요를 감은 돼지의 사체가 15일 만에 백골화 직전의 상황까지 도달한 실험 결과는 마지막 행적이 드러난 시점부터 19일 후 뼈가 드러날 만큼 부패한 시신으로 발견된 유 전 회장의 상황이 비정상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2010년 실험 시점은 한여름인 8월로, 낙동강 지역은 평균 기온 27.6도, 평균 강수량 17.2mm이었다. 이와 비교했을 때 유 전 회장의 시신이 발견되기 전인 5월말과 6월의 순천 날씨는 평균 기온 20.5도, 평균 강수량은 12.9mm였다. 유 전 회장의 시신에 비해 돼지 사체가 더 빨리 백골화 직전까지 부패한 이유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