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현길 포항 북부경찰서 수사과장

8년 전 오늘(2006년 7월 23일) '서래마을 프랑스인 영아 살해 사건'이 처음 알려져 온 나라와 해외까지 놀라게 했다. 남편과 함께 한국에 거주하던 프랑스인 여성이 두 차례에 걸쳐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살해한 뒤 3년 넘게 가정용 냉장고 냉동실에 보관하다 적발된 엽기적인 살인·시신 유기 사건이었다. 한국 경찰은 유전자 감식 결과를 근거로 아이들 엄마를 용의자로 지목했고, 프랑스 경찰은 한국 경찰 수사 자료를 그대로 인정해 프랑스로 달아난 여인을 검거했다.

사건 당시 서울 방배경찰서 담당 수사팀장으로서 풀리지 않던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범인이 3년여간 아이들 시신을 냉동고에 보관했고, 나중에 이사하면서도 시신을 다른 곳에 유기하지 않고 냉동고에 뒀던 이유는 뭘까.' 의문은 프랑스 경찰의 피의자 신문 과정에서 밝혀졌다. 바로 폐쇄회로(CC)TV 때문이었다.

현지 경찰 조사에서, 범인은 이사 날이 다가오자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다가 이사 하루 전 날 냉동고에서 시신을 꺼내 배낭 속에 넣어 새로 이사 갈 집 냉동고로 미리 옮겨 놓았다고 털어놨다. 당시 서래마을 빌라 단지뿐만 아니라 주변에 많은 CCTV가 있어 방범 시스템이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해 다른 곳에 유기하지 못했다는 설명이었다.

당시 CCTV는 아날로그 방식이어서 VHS 테이프를 교체해 가며 녹화하는 방식으로, 화질도 좋지 않았다. 특히 현장 근처 일부 CCTV는 고장 또는 운영 미숙으로 녹화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범인에게는 굉장한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과거 CCTV 설치가 지역 주민 반대에 부딪혔던 시절, 경찰 교육기관이 일선 경찰관에게 "사후 범죄 수사보다는 범죄 예방 효과를 강조하라"는 지침을 주기도 했다. 최근 국민들도 CCTV가 범죄 예방은 물론, 사후 수사와 추적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점을 받아들여 명실상부한 '최상의 범죄 예방 도구'로 인정하는 듯하다.

경찰은 국민 지지를 바탕으로 CCTV 순기능을 강화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고성능 CCTV 설치를 확장하고, 관제센터 등을 운영해 범죄 예방과 범인 검거에 큰 도움을 얻고 있다. 또 국정원장 자택 방화 사건에서 활용됐던 걸음걸이 분석 기법 등 CCTV 자료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수사 기법을 개발·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