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브라질월드컵은 창의적 전략·전술이 부각된 대회였다. 축구 강호 네덜란드의 루이스 판 할 감독은 약팀이 주로 수비 강화를 위해 구사하는 스리백을 들고 나와 3위라는 값진 성적을 거뒀다. 알제리는 한국과 벌인 조별리그 2차전에서 벨기에와의 1차전 주전 라인업을 5명이나 바꾸는 과감한 실험으로 4대2 대승을 일궈냈다.

반면 한국 축구는 획일적이었다. 상대에 상관없이 4―2―3―1 포메이션으로 일관했고, 선수들도 훈련으로 반복된 패턴이 상대에게 읽히자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축구에는 300개가 넘는 전술이 있다"며 "선수들은 그걸 이해할 수 있는 머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선수들이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FQ(Football Quotient·축구 지능 지수)'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한국 축구의 주축은 학원 축구를 거치지 않았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 선수 중 가장 창의력이 돋보였던 선수는 손흥민(22·레버쿠젠)이었다. 알제리전에서 수비가 밀집된 상황에서 공이 날아오자 손흥민은 등으로 트래핑을 한 뒤 바깥쪽으로 드리블하는 척 상대를 속이고 나서 순식간에 방향을 전환해 골키퍼 가랑이 사이를 통과하는 슈팅으로 골을 터뜨렸다. 축구의 정석적인 움직임은 아니었지만, 창의력을 발휘해 만들어낸 득점이었다.

사진=게티이미지 멀티비츠, 그래픽=김현국 기자

'FQ'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 손흥민은 한국의 학원 축구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손흥민은 7세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7년간 학교 축구부에 들어가지 않고 국가대표 출신의 아버지 손웅정(52)씨에게 패스·드리블 등 기본기를 배웠다.

손웅정씨의 지도 철학은 연령별로 배워야 할 축구의 기본기가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3~4학년 때 슈팅이나 킥을 많이 연습할 경우엔 근육에 무리가 간다고 생각했다. 대신 패스를 하는 방법과 공을 잡고 돌아서는 움직임 등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어린 시절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착실하게 기본기를 쌓은 손흥민은 자연스럽게 축구에 대해 눈을 뜰 수 있었다.

"결과 중심의 유소년 축구에서 FQ를 키울 순 없어"

이용수 세종대 교수(KBS 해설위원)는 학원 축구를 거친 국내 선수 대부분이 'FQ'가 부족한 원인에 대해 "주입식이란 말로 대표되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이 축구에도 나타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 교수는 "한국의 학원 축구는 여전히 감독 한 사람이 30~40명을 일방적으로 지도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선수들은 축구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수동적으로 훈련하게 된다"고 했다.

손흥민의 성공 사례를 보듯 축구는 연령별 교육이 중요하다. '황금 세대'의 등장으로 화제를 모았던 벨기에 축구는 2000년 자국에서 개최한 유럽축구선수권 예선 탈락 이후 장기적인 관점으로 유소년 시스템을 새로 구축한 결과 이번 월드컵에서 8강 진출의 성과를 이뤘다.

벨기에 유소년 시스템의 가장 큰 변화는 7세 이하 어린이들은 2대2, 9세 이하는 5대5, 11세 이하는 8대8 경기만 치르도록 한 것이었다. 선수 한 명 한 명이 공을 다루는 시간과 횟수를 늘려 창의성을 길러주면서 팀원 수를 나이에 맞게 제한해 체력과 전술 이해력을 키우도록 했다.

국내에도 최근 들어 기본기 교육을 강조하는 젊은 지도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히고 만다. 당장 성적을 내야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스템 때문이다.

결과에 집착하는 유소년 축구시스템에선 경기에서 이겨야 학교 관리자나 학부모로부터 유능한 지도자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이용수 교수는 "연령별로 해야 할 훈련이 따로 있지만, 승패가 중요한 지도자들은 당장 대회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어린 선수들에게 지구력 위주로 훈련을 시킨다"며 "그 결과 필요한 시기에 민첩성과 유연성, 스피드를 기르지 못하게 된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축구를 보는 눈을 키워야 할 시기를 놓쳐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축구협회의 역할도 필요하다. 지도자 개개인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축구의 흐름을 따라잡기란 쉽지 않다. 지도자들이 선수들의 창의성을 키우고 전술 이해도를 높일 수 있게 협회 차원에서 해외 사례 분석 등 교육 자료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