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지략과 의지와 힘이 집중되는 축구장에 오래전부터 과학기술이 침투해 들어왔다. 1863년 잉글랜드축구협회가 창설된 이후 지금까지 축구의 역사는 기술과의 긴장과 흡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보라.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골 판독 기술. FIFA(국제축구연맹)의 엄격한 기술 심사를 거쳐 독일 골컨트롤사가 개발한 골라인 판독 시스템(GLT)이 쓰이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봄부터 소쩍새는 우짖었다. 2002년 이후 기술 검토에 들어갔고 2006 독일월드컵을 전후로 하여 히딩크 같은 현역 감독들이 도입 필요성을 제기했으며, 2010 남아공월드컵 때는 확연한 오심이 발생하여 FIFA는 전격 도입을 선언하고 기술 개발에 들어간 것이다. 이 기술은 모든 기술이 그렇듯이, 군사 작전용, 즉 무인 공격 비행체 드론의 정밀 타격 카메라 센서 기술의 응용이다.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은 축구의 '순수성'을 해친다며 반대해왔다. 지금도 그는 골 여부를 판정하는 보조 심판을 골대 옆에 세우는 '6심제'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런 얘기를 왜 하는가. 한편으로 이 문제는 미래의 축구를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기술적·철학적 논란을 꼼꼼히 성찰하기 위해서다. 이를테면 2030 월드컵 때 어깨나 다리를 최첨단 티타늄 합금 소재로 바꾼 선수가 출전할 수도 있다. 수아레스 같은 선수가 아무리 이로 물어뜯어도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탄소 형성 임플란트로 무장한 선수가 교체되어 들어와 산산조각 내지 않을까. 2012 런던올림픽 때 절단 장애 후 인조 합금 수술을 한 남아공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육상 400m 종목에 출전한 적이 있다. 축구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누군가 큰 부상을 입어 첨단 합금으로 교체수술을 한 후 출장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대비해야 한다. 플라티니가 언급한 ‘축구의 순수성’이 복합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이런 얘기가 2014년 브라질월드컵 전술 분석에도 적용 가능하다.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지난 5월 28일 과거 잉글랜드 팀의 모든 월드컵 자료를 분석하면서 고도 500m 이하의 경기장에서 경기할 때 승산이 2배로 증가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고지대는 공기 밀도가 평지보다 낮아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산소 섭취량이 적다. 이렇게 되면 심장에 무리가 간다. 고온다습한 기후조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하고 가급적 성취동기를 강하게 유발하는 붉은색 유니폼을 입으라고 호킹 박사는 주문했다. 실제로 잉글랜드 대표팀은 ‘저산소 텐트실’ 같은 시설에서 적응 훈련을 했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6월 15일 무덥고 끈적거리는 도시 마나우스의 아레나 아마조니아에서 이탈리아에 2 대 1로 패했다. 게다가 유니폼도 흰색이었다.

패인은 무엇인가. 과학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인가. 공인구 브라주카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나는 로이 호지슨 감독의 전술 부재라고 생각한다.

좁은 의미의 ‘전술’은 경기 초반에 11명의 선수를 어떻게 배치하느냐 여부다. 19세기 중엽 잉글랜드의 지도자들은 이미 ‘포메이션(Formation·포진)’을 도입했다. 19세기에 유력했던 진용은 피라미드 시스템(2-3-5)이었다. 2명의 수비수(풀백), 3명의 미드필더(하프백), 그리고 5명이 공격을 하는 이 진용은 1930년대까지 널리 활용되었다. 1회 우루과이(1930년), 2회 이탈리아(1934년), 3회 프랑스(1938년) 월드컵에서 이 피라미드 전술이 지배적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전술 변화가 시도되었다. 이 피라미드 기술의 약점이 중원의 허약함이다. 그래서 5명의 공격수 중 2명을 미드필드로 내리는 ‘WM’(3-2-2-3) 시스템이 나왔다. 1930년대 이탈리아 축구를 이끈 주세페 메아차가 이를 실천해냈다. 1950년대에는 WM 시스템의 안정된 밸런스 대신 다양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헝가리의 ‘MM’ 시스템이 나온다. 푸스카스가 이를 실천했다.

한편 자국 선수들의 특성에 맞게, 즉 고정된 포지션에서 벗어나 능란한 개인기로 상대방을 유린하는 브라질의 ‘4-2-4’ 전술이 제시된다. 펠레의 시대가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1960년대에 이탈리아는 효율적인 수비 축구, 즉 카테나치오를 제시했다. 개인기가 뛰어난 브라질을 막기 위해 포백 라인 뒤에 최후의 한 명이 담당하는 ‘리베로(Libero·자유인)’ 개념이 이때 나왔다. 1970년대에 네덜란드는 최종 수비와 전방 공격수 간격을 20여m 이내로 유지하며 모두가 올라갔다가 모두가 내려오는 토털 사커를 제시했다. 리누스 미헬스의 철학을 요한 크루이프가 실천했다. 1974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대패한 우루과이의 감독은 “그들은 미래의 축구를 했다”고 증언했다. 이 무렵 독일은 3-5-2 전술의 밑바탕이 되는 그들만의 리베로 경기를 펼쳤는데, 베켄바워가 증명했다시피 대단히 공격적인 스타일로 발전했다. 이탈리아 AC 밀란의 아리고 사키 감독은 이 모든 흐름에 맞설 수 있는 공격형 압박 축구 전술 ‘4-4-2’를 고안했다.

이로써 오늘날 경기장에서 볼 수 있는 전술의 기본 형태가 모두 제시되었다. 그 이후 전개되는 변화는 이 기본 포메이션의 능란한 변용이다. 감독은 이 가운데 특정한 전술을 자신의 철학과 경험에 비춰 선택한 후 팀을 구성하여 조련을 한다. ‘포백’이라는 기반 위에서 주요 선수의 스타일, 당일 경기 상황의 돌발 변수에 따라 변화무쌍한 대처가 이뤄진 것이다. 요약건대 4-4-2 혹은 4-2-3-1을 기본으로 하되 공격형 미드필더가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맡는 중원 장악 전술이 2000년대 이후에는 지배적이었다. 프랑스의 지단이 높은 수준에서 이를 실천했고 메시, 루니, 이청용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그랬던 흐름이 2010 남아공월드컵 때부터 의미 있게 변하기 시작했다. 공격 대형으로 전진하기보다는 안정적으로 수비를 구축하는 ‘스리백’이 적어도 월드컵에서는 대세를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의 클럽 축구에서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스리백은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숫자로 보면 3명이 4명보다는 적다. 그러나 좌우 윙백이 원활하게 기동할 경우 수비형 미드필더 2명과 함께 최대 5명이 안정적인 수비라인을 구축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포백은 미드필드까지 밀고 올라가는 공격형 압박 수비인 데 비해 스리백은 최대 5명까지 안방을 지키는 밀집 수비 대형이다. 1년 내내 리그 운영을 해야 하는 클럽에서는 매우 수세적이고 재미 없는 진용이지만 조별리그 통과 후 토너먼트로 전개되는 월드컵에서는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실리 축구’ 전술이 스리백이다.

1998 프랑스월드컵 때부터 조별리그 상위 2개 팀만 토너먼트로 진출하는 방식으로 변하면서 무적의 강팀도 일단 16강 진출을 위해 스리백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2010 남아공월드컵 때는 챔피언 스페인을 제외하고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등이 스리백으로 선수비 후역습을 노리는 패턴을 보여줬다.

이번 대회에서도 스리백이 효과를 보고 있다. 지난 6월 16일 아르헨티나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F조 첫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는 오래전에 퇴출된 것처럼 평가된 스리백으로 진용을 짜고 나왔다. 이에 대해 황선홍 포항 감독은 “화려함은 사라지고 실리를 지향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도 스페인의 현묘한 패싱 축구, 즉 ‘티키타카’를 깨기 위해 스리백을 구사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2명이 가급적 하프라인을 넘지 않았다. 필드 플레이어 절반, 즉 5명이 수비에만 몰두하는 방식이었다. 상대방의 공격을 차단한 미드필더나 수비수가 공을 치고 나가면 주변 선수 한두 명이 수비로 내려설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5 대 1로 완파했는데, 그중 절반의 골이 이런 패턴에서 가능했다. 반 페르시의 아름다운 헤딩 슛과 아르연 로번의 폭풍 질주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스리백은 종래의 수비지향적 스리백이 아니라 공격지향적이라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브라질이라는 기후조건도 작용하고 있다. 무덥고 습도가 높은 날씨, 게다가 고지대 경기장에서 뛰어야 할 경우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일단 수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브라질 노동법원의 권고에 따라 무더위 때문에 선수들이 탈진하여 부상을 입는 것을 막기 위해 경기 도중에 2분 정도 물을 마실 수 있는 ‘쿨링 브레이크’까지 도입한 대회 아닌가. 이런 악조건에서 경기의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실리 축구가 일차적으로 고려될 수 있다. 쉼없이 움직이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방향으로 패스를 해가는 스페인이 일찌감치 몰락한 것은 이러한 조건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기기 위해서는 공격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스리백을 쓰긴 하지만 그 라인을 극단적인 경우 중원까지 올리는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팀이 독일이다. 화려한 패스 축구, 즉 스페인 국가 대표팀과 그 나라의 최상위 클럽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전개하는 티키타카를 깨기 위한 독일 축구의 대응 방식이 ‘게겐(gegen) 프레싱’, 즉 전방 압박이다.

게겐은 ‘대항하다’ ‘맞서다’라는 뜻으로 ‘탈압박’ 전술을 가리킨다. 볼을 빼앗겼을 때 재빨리 그 주변을 에워싸는 것으로 위르겐 클롭 감독이 도르트문트를 유럽 무대의 절대강자로 이끌면서 채택한 전술이다. 기본적으로 탄탄한 수비라인을 구축하되 역습 시 강한 체력과 스피드로 상대가 대응책을 찾을 겨를도 주지 않는 전술이다. 이를 통해 클롭 감독은 분데스리가 2연패(2011·2012),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2013)을 달성했다.

네덜란드와 브라질 역시 큰 틀에서 보면 이를 구현하고 있다. 모두가 스페인 축구를 깨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다. 2004년에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맡았고 지금은 콜롬비아를 이끌고 있는 호세 페케르만 감독 역시 4-1-3-2 전술을 바탕으로 한 남미형 ‘게겐 프레싱’을 우아하게 실천하고 있다. 콜롬비아 선수들은 미드필드에서부터 물러서지 않는 전진 압박(포백이나 스리백이 아닌 하프백)으로 점유율을 높이고 역습 시 일절 주저함 없이 상대 문전까지 도달해 버리는 전술로 승점 9점을 획득해 16강에 진출했다. 조별리그 승점 9점, 즉 전승 통과는 6월 26일 현재 콜롬비아, 네덜란드, 아르헨티나뿐이다.

여기에 한 팀이 더 시동을 걸고 있다. 6월 26일 현재 한국 팀을 기다리고 있는 벨기에다. 마르크 빌모츠 감독이 게겐 프레싱의 신봉자라는 것은 루카쿠, 아자르, 펠라이니 같은 선수들을 통해 이미 입증된 바 있다.

브라질에서 열리는 대회라는 점 때문에 북중미와 남미 팀들이 선전을 하고 있다는 점도 물론 고려해야 한다. 우승까지 노리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8강은 기본이라고 여기는 멕시코와 콜롬비아,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은 칠레와 코스타리카, 감동과 충격을 동시에 선사한 수아레스의 우루과이 등이 16강에 안착했다. 16강 중 절반가량이다. 그러나 이들의 경기, 특히 콜롬비아와 코스타리카가 전개한 플레이를 보면 그들의 성취가 단지 익숙한 기후에서 뛰기 때문에 얻은 선물이라고 하기 어렵다. 일찌감치 16강에 진출한 코스타리카는 강호 잉글랜드를 56년 만에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귀국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첨단과학의 도입, 무더운 날씨, 의외의 변수 등이 다양하게 작동했지만 역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감독의 축구 철학이다. 이것이 모든 내용과 결과를 지배했다. 변수는 변수일 뿐, 축구를 온전히 축구답게 하는 것은 역시 인간의 공간 상상력, 즉 감독의 철학이었다.

한국의 홍명보 감독이 러시아전과 똑같은 11명을 내세웠을 때, 알제리의 바히드 할리호지치 감독은 첫 경기 벨기에전과 달리 5명이나 선수를 교체하여 선발 투입했다. 사실상 다른 팀이 들어온 것이다. 강호 벨기에와는 어느 정도 실리 축구로 버텼지만 상대적으로 약체인 한국전에서는 중앙에서부터 수비를 하는 하프백으로 거세게 공격했다. 알제리는 공격 때 조금의 지체도 없이 앞으로 전진했다. 대패 후 홍명보 감독이 말했다.

“모든 것은 나 자신의 전술 채택의 실수 때문이다.” 가슴이 쓰리지만, 맞는 말이다. 현대 축구의 전진 방향을 몰랐으니 한국 축구의 공격 방향을 알 수 없었던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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