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북한 담배입니다. 최근 중국에 다녀온 탈북자로부터 받았습니다. 일단 담배곽이 예쁩니다.

제일 왼쪽에 있는 담배는 입니다. 자줏빛 케이스와 이름에서 풍기는 것처럼 평양의 당간부 등 고위층에게 배급하는 담배입니다. 평양백산담배합영회사에서 만듭니다.

국규6993:2005 입니다. 국규는 국가규격의 약자입니다. 2005년에 처음 생산되기 시작했나 봅니다.

인민대학습당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뭔가 자금성 분위기가 나는게 자줏빛과 묘하게 잘 어울립니다. (그걸 의도한 디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있을 건 다 있습니다. 옆면에는 라는 문구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다른 면에는 바코드도 찍혀 있습니다. 바코드를 검색하는 어플로 검색해보니 '평양담배'라고 나옵니다!!! 인터넷은 아는 게 정말 많네요. 깜짝 놀랐습니다.

니코틴은 1.2mg 들어있습니다.

담배를 피워봤습니다. 저는 평소엔 담배를 전혀 안피우고, 아주 가끔 피우는 FCS(Fully Controllable Smoker) 입니다. FCS는 제가 방금 지어낸 말입니다. 가끔 옆사람이 담배를 피울 때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뜻하는 '소셜스모커(Social Smoker)'보다도 적은 빈도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오, 담배 맛이 나쁘지 않습니다. 저의 짧은 식견으로는 말보로 1미리와 비슷한 맛입니다. 연기의 냄새도 나쁘지 않습니다.

담배입니다. 조선룡봉담배공장에서 생산합니다. 곽에 금색과 자주색을 썼습니다. 상당히 신경쓴 디자인이지요.

북한에서 담배는 상당히 중요한 기호품입니다. 합법적으로 허용되면서도 물리적으로 접근이 쉬운 몇 안되는 소일거리 중 하나이기 때문일 테지요. 북한 정권도 흡연에 대해서는 너그럽다고 합니다. 담배 생산현황을 보면 너그러움을 넘어 장려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3S 정책과 유사한 이유겠지요. 시중에 나도는 담배의 종류가 300여종이 넘는다고 합니다.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의 담배 회사와 합작해서 담배를 생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싱가포르의 경우, 북한에 담배 원료를 꽤 많이 수출하고 있습니다. 담배의 원료는 사치품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북한에 합법적으로 수출할 수 있는 품목이라는 얘기지요. (시가는 사치품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만약 시가에 중독된 일반 계급의 북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 또한 상당히 불행할 듯 합니다. 아마 김씨 일가와 최측근 정도가 시가를 피우겠지요?)

한때 남북한 합작 담배가 생산된 적이 있습니다. 2000년의 일입니다. 과 라는 이름으로 시판되다가 이듬해 생산이 중단됐습니다. 남북 관계가 경색되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안팔려서랍니다. 두 담배 모두 반응이 신통찮았답니다.

펜은 펜이지만 다같은 펜은 아니라오, 모나미와 몽블랑의 (가격의) 간극처럼 북한의 담배는 철저히 계급화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담배곽을 꺼내드는 순간 그 사람의 신분과 계급이 드러난다고 보면 됩니다.

담배는 중앙당 공급용입니다. 그러니까 평양 시내에 살면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은 식사하면서 식탁 위에 이나 을 꺼내놓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방패 담배입니다. 선내대성담배공장에서 생산합니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군장성들 용입니다. 이것도 디자인이 나쁘지 않습니다. 어딘가 아이비리그 대학의 휘장을 연상케 합니다. 찾아보니 프린스턴이나 콜럼비아 대학 로고와 전반적인 디자인이 비슷하군요.
옆면에 귀여운 그림이 있습니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의미의 픽토그램입니다.

북한에도 폐암 환자가 꽤 많다고 합니다. 북한 여성들에게 발병하는 암 중에서 가장 많이 발병하는 암이 폐암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한국과 다른 점은 북한에서는 암이라고 진단을 받으면 여지없이 3개월 내에 사망한다고 하네요.
일단 조기진단이 안되는게 가장 큰 원입니다. 인민무력부장이었던 오진우도 지난 1995년 폐암으로 죽었습니다. 당시 '넘버투'였던 그를 살리기 위해 북한 정권은 그를 프랑스에도 보냈지만 이미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저에게 담배를 선물해 준 분의 얘기에 따르면 북한의 일반 인민들이 피우는 담배는 질이 너무 떨어져 차마 피울 수 없답니다. 손가락 길이만한 담배에서조차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차이를 좁히지 않는 북한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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