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올해 처음 치러진 6월 모의평가 채점 결과 영어 영역의 경우 만점을 받아야만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수로 한 문제라도 틀리면 2등급으로 떨어지게 돼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쉬운 영어 기조로 영어 사교육을 잡겠다는 정부 의도와는 달라 오히려 '사교육 시장'이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일 이같은 내용의 '2015학년도 수능 6월 모의평가 채점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모의평가 응시생 수는 57만9054명으로 재학생이 51만2281명, 졸업생이 6만6773명이었다.
A·B형 선택 비율은 국어 A형 46.9%, 국어 B형 53.1% 수학 A형 67.4%, B형 32.6%다.
평가원의 '영역·과목별 표준점수 도수분포'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영역별 만점자 비율은 올해 첫 통합형으로 치러진 영어 영역이 5.37%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는 수능과 모의고사 모두 통털어 역대 최대치다. 국어 영역은 A형과 B형간에 난이도 차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자연계 학생들이 치르는 A형이 1.99%, 인문계 학생들이 보는 B형이 0.54%로 유형간 1.45%포인트나 차이가 났다. 수학 영역은 A형과 B형이 각각 1.37%, 1.88%로 큰 차이가 없었다. 평가원은 만점자를 별도로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만점자를 인원수로 보면 국어 A형 5383명, B형 1650명, 수학 A형 523명, B형 3485명, 영어 3만1007명이다.
1등급과 2등급을 구분하는 1등급 구분점수(1등급컷)는 ▲국어 A형 126점, B형 128점 ▲수학 A형 133점, B형 129점 ▲영어 126점으로 나타났다. 2등급컷은 ▲국어 A·B형 123점 ▲수학 A형 128점, B형 123점 ▲영어 124점이다.
표준점수 최고점은 국어 A형 128점, B형 133점, 수학 A형 136점, B형 132점, 영어 126점이다.
표준점수는 수험생의 전체 평균 대비 상대적 위치를 알려주는 점수로 시험이 쉬워 평균이 높으면 표준점수 최고점이 떨어지고 어려우면 최고점이 올라간다.
채점 결과를 분석한 결과 특히 영어 영역의 경우 표준점수 최고점과 1등급 컷이 똑같다. 이는 만점을 받아야만 1등급에 진입할 수 있다는 의미로 역대 수능과 모의평가를 통털어 처음 있는 일이다. 표준점수 최고점도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고 표준점수 최고점을 받은 학생수도 3만1007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또 3등급 컷이 118점으로 1등급 컷과 8점 차이가 나 3점짜리 문항 3문제만 틀려도 3등급으로 떨어질 수있다.
국어의 경우 A형은 표준점수 최고점과 1등급 컷이 2점, B형은 5점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수학은 A형과 B형 모두 3점 차이가 난다. 다른 영역도 상위권 수험생 사이에서 배점이 높은 한두 문제 차이로 등급이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조용기 수능본부장은 "정부의 쉬운 수능 출제 기조에 따라 학습 부담을 줄이기 위해 쉽게 출제 했다"며" 특히 영어의 경우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빈칸추론 문제를 줄이고 통합형으로 치러지면서 난이도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만점자가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영어 영역의 변별력 상실로 영어에서 만점을 받지 못하면 서울 주요대학에 진학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늘교육 임성호 대표는 "영어 영역의 경우 1문제만 틀려도 1등급 진입이 불가능 할 것으로 보인다"며 "영어에서 만점을 받아도 정시에서 서울소재 중상위권 대학 진입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영어 변별력이 크게 약화돼 사탐에서 어떤 과목을 선택하느냐가 중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며 "문·이과 모두 수학 변별력이 크게 높아지고 수학에 대한 부담감은 매우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용기 본부장은이에 대해 "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때는 수능 성적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며 "정시의 경우는 수능만으로 선발하지만 모두 다 그런것이 아니고 또 영어 성적만으로는 학생을 선발하지 않기 때문에 사교육 경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쉬운 영어로 인한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국어와 수학 등 다른 과목에서 어렵게 출제되는 등 사교육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본 수능에서도 지금과 같은 쉬운 영어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조 본부장은 "적정한 변별력을 위해 노력은 하겠지만 영어에서 만점자가 이번 처럼 많이 나올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며 "이번에는 변별력때문에 다른 과목에서 어렵게 출제한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영어 말고도 국어와 수학도 쉽게 출제했다"고 말했다.
그는 "영어를 쉽게 출제하면 사교육이 늘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 문제를 틀리지 않기 위해 사교육 받을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평가원은 그러나 지나치게 높은 1등급 비율에 대해서는 난이도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한다는 계획이다.
조 본부장은 "만점자가 4%를 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한 문제만 틀린 동점자 많이 양상돼 1등급 비율이 2등급보다 많은 등 등급 왜곡 현상도 있을 수 있다"며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인지 따져 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도완 교육부 대입제도과장도 "올해 초 약속한 것처럼 쉬운 수능 기조는 일관성 있게 갖고 갈 수 있도록 하겠다"며 "다만 (쉬운) 정도의 차이, 일정 요건 정도의 난이도는 갖춰져야 하는거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가 적정 수준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변별력은 조금이라도 무게 중심을 옮기게 되면 쭉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며 "변별력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는데 9월 모평도 남아 있는 만큼 좀 더 밸란스를 잡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영어가 지나치게 쉽게 출제되면서 수학, 문과는 국어가 변별력을 좌우하면서 이들 과목에 대한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탐구영역도 주요 변수로 작용하면서 수험생들이 어떤 과목을선택하느냐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질 수 있어 치열한 눈치작전이 예상된다.
임성호 대표는 "영어의 경우 반드시 만점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이 크고 수학과 국어도 변별력을 가르기 때문에 이 과목들에 대한 부담도 더 커질 수 밖에 없다"며 "탐구영역의 경우 특목고, 재수생 학생들이 1등급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사, 경제, 세계지리, 지구과학, 화학Ⅱ 등은 선택 기피과목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