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포장지를 보내면 선착순 1만명 전원에게 순금 반지를 드린다'는 파격적 경품(景品) 행사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던 때가 있었다. 1970년 2월, 조미료 시장을 놓고 미원과 미풍이 벌인 경품 전쟁의 자취가 광고 면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먼저 불을 뿜은 건 미풍이었다. 조미료 봉지 5장을 보내면 선착순 1만명에게 고급 스웨터를 준다고 했다. 그 밖에도 내의(內衣) 3만벌, 보자기 3만개 등 총 10만명에게 상품을 주는 전무후무한 규모였다(조선일보 1970년 2월 6일자). 라이벌 미원이 바로 대응에 나섰다. 포장지 5장을 받아 추첨 없이 선물을 주는 방식은 같았지만 1만명에게 줄 상품으로 순금반지(3g)를 내걸었다. 플라스틱용품 세트, 쇼핑백 등을 포함한 총 상품의 수혜자는 15만명이나 됐다(1970년 2월 14일자).

선착순 1만명에게 스웨터 혹은 금반지를 준다는 파격적 경품 행사로 논란을 부른 두 회사의 조미료 광고들(조선일보 1970년 2월 6일자(위), 2월 14일자).

두 회사의 경품 총액은 약 2억원. 오늘의 금값 기준으로 환산하면 100억원이 넘는다. 스웨터나 순금반지는 오늘날 13만원 정도로 비슷한 가격이었지만 금반지 쪽이 약간 더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경품 욕심에 주부들은 너도나도 필요 이상의 조미료를 사다가 다른 그릇에 쏟아붓고 포장지를 보내기 바빴다.

과열 경품에 대해 비판 여론이 높아가자 경찰 당국이 나섰다. 치안국은 두 회사가 과소비를 조장하고 사행심(射倖心)을 자극한다며 법무부에 위법 여부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했다(1970년 2월 20일자). 한 달 뒤 경찰이 단속에 나섰고 미원이 경품 행사를 먼저 중지했다.

조미료 전쟁의 후폭풍이 가시기도 전인 1971년 여름엔 6대 소주 회사들이 모두 뛰어든 경품 전쟁이 벌어졌다. 백화·진로·삼학·보해·보배·금복주 등 소주 회사는 7월 초순부터 출혈을 감수하며 선전 공세를 시작했다. 이들이 내건 경품은 코로나 승용차만 8대였고, 황소·냉장고·피아노 등을 받는 사람까지 합하면 총 당첨자가 100만명이 넘었다. 특히 병마개 안쪽을 보고 당첨 여부를 즉시 확인하는 방식이어서 술 판촉 효과가 컸다. 소주 판매가 50% 이상 늘어났고, 시민들은 필요 이상으로 과음하는 일이 잇따랐다(1971년 9월 3일자).

보다 못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상도덕(商道德)의 타락'이라며 경품 판매 허가를 취소해 달라고 당국에 건의했지만 내무부는 방송 광고 횟수만 규제했다(1971년 7월 14일자, 9월 4일자). 최근 어느 백화점이 1등에 최고 10억원의 상품권을 내걸고 행사를 벌여 '경품 신기록'이라고 화제가 됐지만 총 당첨자가 100여명이다. 10여만명에게 상품을 주던 40여년 전 경품 행사의 규모가 실감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