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구치소 내부 풍경.

운동장은 가로 90m, 세로 40m 크기의 직사각형 공간이다. 철조망을 친 담장 안이고 교도관이 감시를 하고 있기 때문에 백주 대낮에 탈옥은 불가능하다. 운동장 앞에 3층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 옥상에서 한 사람이 운동을 하고 있는 우리 수형자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깨에 문신을 한, 깡패 풍의 수형자가 그를 향해 “야, 시선 돌려” 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 사람의 모습은 곧바로 사라졌다.

나는 다른 수형자들을 따라서 가로 90m의 길을 걸었다. 내 보폭으로 40보였는데, 왕복하면 80보다.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며 3000보를 걸었다. 맨발에 고무신을 신고 모랫바닥 위를 걸었더니 처음엔 발밑이 따끔거렸으나 계속해서 걷자 오히려 발밑을 지압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때 걷고 있던 나를 뛰고 있던 한 깡패가 어깨로 밀치고 지나갔다. 실수가 아니고 내가 신입 수형자라는 것을 알고는 일부러 시비를 건 것이다. 감옥은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야수성을 가진 인간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하지만 조직폭력배도 아닌 동네 양아치 깡패 출신이 교도관이 감시하는 상황에서 행패를 부리니 내 성질상 용납할 수가 없었다.

운동시간에 한번 기가 꺾이면 계속해서 멸시를 당한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그 깡패의 뒷모습을 사납게 쳐다보았다. 내 시선을 의식한 깡패는 모르는 척하며 계속해서 운동장을 돌았다. 그가 다시 내 앞으로 뛰어올 때 나는 재차 멈춰 서서 그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때 대학 후배가 급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대학 후배는 초범인 내가 감옥 생활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불안했던지 나의 행동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선배님, 참으세요. 여기는 감옥이고, 감옥에서는 깡패가 왕이에요. 저 깡패는 신입 수형자가 오면 반드시 시비를 거는 악질이에요.”

깡패에게는 두 부류가 있다. 동네를 배회하며 자기보다 힘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금품을 갈취하는 파렴치한 양아치 깡패와 조직을 이뤄 한 지역을 장악하는 조직폭력배다. 양아치는 깡패 중에서 가장 질이 나쁜 놈이다.

현재 구치소와 교도소는 정전 등 장애 시에도 시스템의 중단이 없는 무정전 전원장치 전자경비시스템을 도입, 운영 중이다. 사진은 중앙통제실 모습.

조폭과 양아치

눈꼬리가 찢어진 험상궂은 인상에 어깨나 등, 배는 물론이고 손등과 팔등에까지 문신을 한 게 양아치의 특징이다. 이런 문신을 드러내며 은연중에 힘을 과시하는데, 문신을 많이 한 양아치일수록 펀치력이 약하다는 소리를 나는 많이 들었다.

감옥 안에서 가장 시끄럽고, 가장 말썽을 피우는 존재가 이들 양아치다. 운동시간에 수형자들은 다른 사동의 수형자들과 말을 주고받을 수 없다. 이는 금기사항이다. 양아치들은 항상 이 규칙을 깨뜨렸다.

이들은 운동장에 나오기만 하면 운동장 근처의 다른 사동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형님, 잘 주무셨습니까?” 하며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어느 동생이 어느 감방에 수감돼 있다든지, 형님 방으로 라면 두 박스를 보냈다든지 하는 정보를 운동시간에 주로 전했고 교도관이 제지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소매치기도 양아치처럼 감방의 골칫덩어리다. 소매치기는 운동을 감시하러 나온 교도관의 옷에서 순식간에 담배나 라이터를 훔쳐 감방 안에서 판매한다. 휴대폰도 감쪽같이 훔친다. 이 때문에 감방 근무 교도관들은 근무 중에 휴대폰과 담배, 라이터는 일절 소지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조직폭력배는 감옥 안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다. 우선 수형자 명찰부터 다르다. 일반 수형자들은 흰 광목에 검은색으로 숫자를 쓴 수형자 번호를 부착하지만, 조폭은 붉은 명찰이다. 수형자 번호가 붉은색이다. 범죄단체 조직죄로 구속되면 붉은 명찰을 달아야 한다. 붉은 명찰을 단 수형자는 수형자 세계에서 공포의 대상이다.

내가 수감된 8동에도 조폭이 있었다. 귀밑에서 턱까지 구레나룻을 길게 기른 그는 행동이 점잖았다. 운동시간에는 뜨내기 양아치들처럼 촐랑대지 않고 뒷짐을 지고 팔자걸음으로 걸었다. 말투는 상스러웠지만 욕설은 거의 하지 않았다. 특히 교도관들에게 깍듯했다. 감옥 생리에 익숙한 조폭들은 감방 안에서 사고 치면 형이 가중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좀체 말썽을 피우지 않는다.

양아치의 천적이 조폭이다. 양아치는 조폭의 ‘밥’이다. 양아치들은 조폭이 운동장에 나오면 맨 먼저 달려가 90도 각도로 고개 숙여 문안인사를 드렸다. 조폭이 무슨 말을 하면 두 손을 배 위에 가지런히 모은 상태에서 고개를 숙이고 경청했다.

기(氣) 싸움의 시작

명찰 색깔이 또 다른 수형자가 히로뽕 사범이다. 이들은 수형자 번호가 노란색인 노란 명찰을 부착한다. 히로뽕에 중독되면 뼈가 아주 약해져 조금만 힘을 가해도 뼈가 쉽게 부러진다.

수형자들은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하여 라면이나 초코파이 따위를 걸고 내기 팔씨름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히로뽕 환자인 줄 모르고 팔씨름을 했다가는 십중팔구 골절사고가 생긴다.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해 히로뽕 환자는 명찰 색깔을 달리한다.

양아치 등쌀에 기분이 상한 나는 걷는 것을 중단하고 운동장 구석진 곳에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내 옆에 다가온 대학 후배가 나를 우리 방 수형자들이 없는 곳으로 안내하더니 우리 방 분위기에 대해 귀띔했다.

“선배님이 우리 방의 두 번째 연장자임에도 설거지를 자청하신 것은 아주 잘하셨습니다. 방장은 나보다 두 살 어린 마흔이고, 부방장은 마흔하나인데 성질이 까칠한 놈들입니다. 자기들은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남을 부려먹을 생각뿐입니다. 그놈들한테 빌미를 제공하지 마세요. 제가 그놈들을 먼저 손보려 하고 있으니까 참고 계세요.”

운동을 하는 동안 나는 수형자복 바지가 땅에 끌리지 않게 하기 위해 바지 끝을 두서너 번 접어 발목이 나오도록 했다. 그런데 접어놓은 바지 틈새에 운동장 모래가 끼였다. 나는 그것을 몰랐다. 방에 들어와 다리를 쭉 펴고 앉았더니 바지 밑단에 끼인 모래가 방바닥에 떨어졌다. 방장이 이를 트집 잡았다. 내가 모래를 치우는 동안에 방장은 계속 잔소리를 해댔다.

나는 몸에 살이 없어 방바닥에 그냥 앉아 있지를 못한다. 스펀지로 된 베개를 깔고 앉아 버틴다. 방장에게서 한소리를 들어 기분이 상한 나는 베개를 꺼내 습관적으로 방바닥에 던졌다. 베개 먼지가 방 안에 퍼졌다. 방에 먼지를 나게 했다고 방장이 또 잔소리다. 나는 못 들은 척하며 베개 위에 걸터앉았다.

분위기가 냉랭한 가운데 부방장이 방장에게 멸치의 영어 표기를 물었다. 그 다음엔 새우의 영어 표기를 질문했다. 미국 유학생 출신인 방장은 망설임 없이 알려주었다. 대낮에 웬 멸치와 새우 타령일까? 감이 왔다. 바싹 마른 내 몸매를 멸치에 비유하고, 구부려서 자는 내 모습을 새우에 비유한 것이다. 나를 겨냥한 조롱이었다. “요놈들 봐라?”하는 적대감이 불쑥 일었다. 그때였다.

현재 구치소와 형무소는 도주와 외부 침투 시에 대처할 수 있도록 각종 감지센서를 중복 설치하고 있다.

“넌 저질 범죄자야”

대학 후배가 방장을 향해 “야, 이 새끼야” 하고 고함을 질렀다. 방장이 화장실에 가다가 화장실 앞에 앉아 있는 대학 후배의 발을 무심결에 밟은 것이다. 후배의 고함이 이어졌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 새끼가 선배 발을 밟았으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지, 말도 없이 그냥 가? 어디서 배운 못된 버릇이야. 못된 버릇만 배웠으니까 회사 돈을 떼먹고 감옥에 왔지. 납품업체의 등을 쳐서 돈이나 빼앗고 그 돈으로 마누라가 있는 놈이 애인과 놀아났으니 너는 이 방에서 가장 질 나쁜 범죄자야.”

방장의 죄명은 업무상 배임이었다. 방장도 가만있지 않았다.

“너는 불쌍한 택시 운전기사를 무고한 놈이야. 나보다 더 질이 나쁜 범죄자야. 뭐가 잘났다고 큰소리를 치는 거야.”

두 사람의 고함 소리가 커졌다. 주먹다짐이 벌어질 것 같았다. 교도관이 달려오면 문제가 커진다. 수형자 전원을 이방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방은 깨어지고, 낯선 방에 가서 새롭게 신고식을 하고 말단 수형자가 되어야 한다. 이사 갈 때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피곤하듯 수형자들은 방을 옮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

부방장이 나서서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 방장은 출입문 쪽에 앉히고, 대학 후배는 화장실 쪽에 앉혔다. 사태는 일단 수습됐다. 부방장이 “이 기회에 우리 방의 문제점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기로 합시다” 하며 먼저 방장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방장이 입을 열었다.

“발을 밟은 것을 알았으면 사과했을 텐데, 몰라서 그랬소. 그렇다고 해서 나를 저질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하오.”

대학 후배가 말을 받았다.

“찬물에도 아래위가 있는 법이야. 나는 너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많아. 지난번에 이 방에 있었던 젊은 수형자가 어르신과 싸움할 때 어르신에게 욕설은 안 했어. 싸움을 하더라도 나이 많은 분께는 욕설을 하는 게 아니야. 그런데 너는 나한테 반말에 욕까지 퍼부었어. 그게 잘못된 거야. 나는 그걸 지적하고 싶어.”

발을 밟고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사소한 시비에서 시작된 싸움이 반말과 욕설을 했다는 새로운 시빗거리로 번졌다. 분위기가 다시 험악해졌다. 나는 대학 후배의 심중을 읽었다. 대학 후배는 꼬투리를 잡아 방장의 기를 꺾어놓을 속셈인 것이었다.

감방 문에 걸린 플라스틱 명찰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 사회에서는 나이가 많으면 말발이 먹힌다. 특히 한두 살 정도의 터울에서는 한 살이라도 많은 사람이 왕이다. 생년이 같으면 생일이 빠른 사람이 형이다. 감방에서 학력이나 경력은 거짓말을 해도 검증할 길이 없지만 나이는 속일 수 없다. 감방 문 앞에 걸어놓은 플라스틱 명찰이 주민등록증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나이를 속였다는 게 들통나면 그 즉시 수형자 사회에서 왕따를 당한다. 대학 후배의 무기는 방장보다 나이가 많다는 점이었다.

부방장이 분위기를 정리했다.

“실수라 하더라도 남의 발을 밟았으면 사과를 하는 게 도립니다. 나이 많은 분께 욕을 하는 것도 잘못되었습니다. 방장이 먼저 사과를 하고, 그 사과를 받아들이는 선에서 끝내지요.”

방장이 대학 후배에게 사과했다. 방장은 체구만 우람했지 마음은 여렸다. 대학 후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운동장 모래를 방 안에 들여오고, 온 방에 먼지를 흩날리게 한 내 행동을 더 이상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다. 침묵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방장의 기는 더욱더 꺾어지게 마련이었다. 나는 이 침묵을 즐겼다.

아침식사가 끝나고 내가 천천히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검은색 제복을 입은 교도관 세 명이 갑자기 우리 방에 들어왔다. 매서운 눈초리에 군홧발 차림으로 들어선 세 명의 교도관은 우리 모두에게 방 밖으로 나가라고 지시했다. 방장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설거지를 하고 있던 내가 “나도 나가야 합니까?” 하고 물으니 설거지는 계속하도록 했다. 교도관 한 명이 화장실 안을 점검했고, 또 한 명은 벽에 일렬로 걸어놓은 우리 가방을 뒤졌다. 나머지 한 명은 공용함 주변을 세심하게 살폈다. 교도관 나름의 직업적 육감이다. 방장과 부방장이 먹지 않고 TV 밑에 숨겨둔 당뇨약과 고혈압약은 바로 압수됐다.

나는 교도관들이 싱크대 밑의 찬장 문을 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싱크대 앞에 바짝 다가섰다. 싱크대 아래 찬장은 김, 멸치, 고추장 등 우리 방의 부식물이 쌓여 있는 곳간인데, 찬장 모서리에 몽당연필 크기의 쇠붙이를 숨겨놓았기 때문이다. 이 쇠붙이는 플라스틱 숟가락과 젓가락에 자기 것이라는 표시를 하기 위한 용도로 보관 중인데, 흉기는 아니다. 하지만 감방 안의 쇠붙이는 무조건 압수대상이다. 교도관들은 싱크대 밑의 찬장 속은 뒤지지 않고 나갔다.

금지물품이 적발되면 징벌이 따른다. 신문 구독을 비롯해 물품 구매, 면회, 변호사 접견, 서신 주고받기, 실외운동 등이 금지되고 TV 시청이 제한되며 교도관의 감시 속에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한다.

모든 구치소와 교도소에는 ‘거실문 자동제어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전자잠금 장치를 설치해 원격으로 거실문을 제어하고 있다.

방장 이야기 “돌잔치 축의금으로 아파트 전세 얻어”

방장은 미국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유창한 영어회화 실력 덕분에 귀국 후엔 일류 호텔 구매팀에 경력사원으로 특채됐다. 구매팀은 호텔에서 필요로 하는 소고기, 돼지고기에서부터 각종 생선과 과일 및 야채, 심지어 후추, 소금 등 조미료까지 구입하는 부서다. 일류 호텔에서 한 해 소비하는 음식물이 엄청난 물량이다 보니 납품업체 입장에서 구매팀은 갑(甲) 중의 갑이다. 방장은 자신이 구매팀 대리 시절에 경험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첫애 돌잔치를 저희 호텔에서 했습니다. 잔치 비용을 줄이겠다는 생각에서 장소를 그렇게 정했는데, 거래처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엄청나게 몰려왔어요. 호텔 경영진에게 보고될 만큼 축하객이 많았어요. 축의금으로 들어온 돈과 돌반지로 서울 강남의 아파트에 전세를 들었으니까요.”

이 정도로 부수입이 많은 데가 구매팀이다. 뿐만 아니다. 매일 저녁 퇴근 시간에는 납품업체 사장들이 방장을 강남 룸살롱에 모시고 가려고 줄을 섰다. 그러나 술이 약한 그에게 저녁마다 계속된 술 접대는 고문이었다. 견디다 못한 방장이 정육을 납품하는 업체 사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술이 약하니 차라리 술값을 제게 주세요.”

부친에게서 사업을 물려받은 정육업체 사장은 방장과 나이가 비슷했다. 그 역시 술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판로 확장 차원의 어쩔 수 없는 접대였다. 그는 방장의 제안을 수락하고 방장이 지정한 계좌에 한 달에 500만원씩을 송금했다. 계좌의 주인공은 방장의 애인이었다. 액수가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방장에게 물었다.

“한 달에 용돈조로 100만~200만원을 받았다면 그런대로 납득할 수 있는데, 500만원은 웬만한 봉급쟁이들의 한 달 봉급보다 많아요. 처음부터 500만원이라는 액수를 요구했던 거예요?”

“액수는 말하지 않았고 알아서 보내주기에 말없이 받았지요. 한 달 동안의 밥값과 술값을 합치면 그 정도는 될 겁니다. 송금받은 후에는 술 접대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방장이 납품업체 몇 군데서 정기적으로 받았다가 검찰에 적발된 돈이 5억원이었다. 뇌물은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이 입을 열지 않는다면 들통나지 않는다. 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방장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상납했던 한 정육업체가 서울 동부지검의 농축산물 원산지 표시 위반 수사에서 적발됐다.

검찰 수사는 원산지를 확인하는 선에서 그쳤으나 이 업체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비자금 장부가 발견됐다. 납품업체 사장은 방장에게 상납한 돈을 비자금 장부에 전부 기록해 놓았던 것이다. 비자금 장부 발견 후 검찰 수사는 뇌물수수 사건으로 확대됐다.

“크리스마스 이브였어요. 가족과 강원도에서 스키를 타고 밤늦게 집에 도착했더니 검찰 수사관들이 나를 체포하려고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마누라와 자식이 보는 앞에서 수갑을 찼습니다.”

방장은 업무상 배임죄로 구속됐다. 검찰은 계좌추적을 통해 방장이 이용한 여러 개의 차명계좌를 찾아내 증거물로 제시했다. 방장은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 중인 상태였다.

구치소 내 구내식당 모습. 성동구치소의 김치는 이곳에 수감된 수형자들이 담근다. 국이나 반찬도 정성을 다해 만든다.

대학 후배의 사연, 무서운 무고죄(誣告罪)

대학 후배는 무고죄로 1심에서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역시 항소 중이었다. 그는 공인회계사 자격을 가진 금융맨이었다. 화이트칼라에 속하는 사람이 어떻게 무고죄로 엮였을까? 사연이 기구했다.

대학 후배는 서울 동대문의 한 빌라에 살았다. 큰 도로 이면에 있는 이 빌라는 10여 가구가 사는 원룸형 빌라였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음료수를 사러 동네 가게에 나가는데 웬 택시가 빌라 입구에 주차해 있는 거예요. 손님을 태우지 않은 빈 차였어요. 운전석에 앉아 있던 운전기사에게 차를 빼달라고 말했죠. 그랬더니 택시 운전기사가 저보고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이 대목에서부터 대학 후배의 언성이 높아졌다. 아직도 분이 덜 풀린 듯했다.

“택시 운전기사가 ‘주차비를 내면 될 것 아니냐’고 하면서 지갑에서 웬 카드를 꺼내들고는 ‘주차비 여기 있다. 결제해라’며 약을 올리는 겁니다. 카드를 뺏으려고 하니까 차 밖으로 나와 ‘카드 여기 있다. 결제해라’며 계속 약을 올리며 슬금슬금 도망치는 거예요. 저하고 나이가 비슷한 개인택시 운전기사가 저를 놀리기에 쫓아가서 붙잡았지요.”

화가 난 대학 후배는 주먹으로 택시 운전기사의 가슴을 한 대 쳤다. 택시 운전기사는 지지 않고 자기 머리로 대학 후배의 얼굴을 박았다. 택시 운전기사의 완력을 이기지 못한 대학 후배는 갖고 있던 휴대폰으로 112에 신고했다. 두 사람은 그 길로 경찰서에 연행됐다.

광대뼈 부근의 살이 찢어진 대학 후배는 전치 2주의 진단서를 첨부해 택시 운전기사의 처벌을 요구했다. 택시 운전기사는 가슴에 타박상을 입었다며 역시 전치 2주의 진단서를 끊어와 대학 후배를 폭력 혐의로 맞고소했다. 두 사람은 결국 서울북부지검으로 송치됐다.

우리 사회는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때문에 폭력사건에서 폭력의 원인제공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경찰은 폭력을 먼저 행사한 사람은 가해자로, 맞은 사람은 피해자로 기록한다. 검찰수사관은 대학 후배에게 택시기사와의 합의를 종용했다. 택시기사는 합의금으로 500만원을 요구했다.

대학 후배는 합의를 거부하고 폭력행위의 원인제공자인 택시기사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택시기사는 폭행을 당한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현장 조사가 실시됐다. 요즘 서울의 웬만한 곳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검찰이 감시카메라를 확인해 보니 대학 후배가 먼저 택시 운전기사의 가슴을 때린 것으로 나타났다. 택시가 빌라 앞에 불법 주차한 광경이나 택시 운전기사가 대학 후배를 놀리고 도망가는 장면은 감시카메라에 찍히지 않았다. 이것이 대학 후배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검찰 조사를 받고 있던 어느 날, 웬 사람이 검사실에 들어와 검찰수사관들에게 명함을 돌렸다. 검찰수사관은 그 명함을 대학 후배에게 주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분은 얼마 전까지 북부지검에서 검사로 재직하다가 변호사 개업을 했어요. 이분을 찾아가세요. 당신 사건에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검찰 조사를 난생처음 받은 대학 후배는 검찰수사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때가 저에게는 감옥에 오지 않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어요. 북부지검 검사 출신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했더라면 잘 풀렸을 것입니다.”

세상살이에서 타협하지 않고 강하게 나가면 부러지기 십상이다. 대학 후배는 오히려 무고죄로 엮였다. 택시기사를 먼저 폭행하고는 처벌해 달라며 112에 신고한 행위가 결국은 남을 무고했다는 것이다. 법원에서는 무고죄에 한해 정상참작을 전혀 하지 않으며 무조건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한다.

대학 후배는 무고죄에 폭력행위가 추가되어 1심에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주차 다툼인데, 법원에서 무고죄를 엄격하게 다룬다는 것을 모르다 보니 당한 일이다.

부방장과 변호사 이야기

부방장의 혐의는 사기였다. 부방장은 아내가 있고, 애가 둘이다. 그런 처지에 유부녀를 만나 그녀에게 오피스텔을 사주고 낮 시간에 만나 회포를 푸는 등 깨가 쏟아지는 생활을 하다가 애인과의 생활비 마련을 위해 남의 돈을 찾아주는 심부름을 했다. 그 대가로 400만원을 받았는데, 신종 금융 사기단의 술수에 말린 것이었다.

부방장은 구속 직후에는 매일 검찰청에 불려나가 밤늦도록 조사를 받았으나 내가 온 뒤에는 검찰 조사가 끝나 검사의 처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만약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하거나 벌금형으로 약식 기소하면 당장에라도 풀려날 수 있었다.

부방장은 사기 액수가 400만원이기 때문에 곧 풀려날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그는 우리 방에서 가장 행복한 수형자였다. 낮에는 휘파람을 불면서 몸 관리에 신경 쓰고, 밤에는 새로 사귀었다는 애인에게 연애편지를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점심식사 후 변호사 접견을 마치고 감방에 돌아온 부방장의 얼굴에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혼자서 싱글벙글이었다. 방장이 그 이유를 물었다.

“접견이 끝날 무렵 변호사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사장님, 골프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조만간 저하고 라운딩 한 번 하시죠.’ 조만간 라운딩하자는 말이 무슨 뜻인 줄 아세요? 변호사가 슬쩍 암시를 준 겁니다. 내가 조만간 풀려난다는 암시 말이에요.”

부방장은 경찰에 체포돼 북부지방검찰청에 송치되자마자 북부지검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했다. 변호사가 전관예우를 요구해 부방장은 착수금으로 3000만원을 지불했다. 착수금 3000만원을 받은 변호사는 기소유예 조건으로 5000만원을 더 요구했다. 기소유예를 받으려면 검찰 고위층을 상대로 로비를 해야 하는데, 로비자금으로 5000만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형사 사건에 대한 심판을 법원에 청구하는 권리인 공소권(公訴權)의 행사를 검사에게 독점시키는 기소독점주의(起訴獨占主義)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재판에 회부(이를 기소라고 한다)하거나 회부하지 않는 불기소 권한은 검사가 쥐고 있다. 수형자의 1차 생살여탈권이 검사 손에 있다는 말이다. 검찰의 전횡과 독단을 견제해야 하는 법원에서도 일부 판사는 자신의 입신영달을 위해 검사의 눈치를 살피는 형편이다.

흔히 판사·검사·변호사를, 법조를 지탱하는 세 축이라고 해 ‘법조3륜(輪)’이라 부른다. 형사 사건의 피고인이나 민사 사건의 피고를 변론하는 변호사는 판사나 검사와 대등한 위치에서 의뢰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당당한 존재라는 의미다. 그러나 변호사는 수사 과정에서는 검사의 눈치를 살피고, 재판이 시작되면 판사의 하해와 같은 선처를 바라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이들 변호사가 갖고 있는 비장의 무기는 해박한 법률지식이 아니라 로비력이다. 변호사가 판사나 검사를 금품으로 구워삶는 게 로비다. 판사나 검사의 회식 자리에서 밥값과 술값은 변호사 몫이며, 이 돈을 내기 위한 기회를 잡기 위해 변호사들 간에 경쟁이 치열한 게 현실이다. 변호사의 실력은 로비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로비를 잘하는 변호사일수록 의뢰인이 많다. 로비에는 돈이 든다.

인터넷 화상 면회 모습. 시간과 경비를 줄일 수 있는데, 통신장애를 감안해 면회시간이 15분쯤 된다.

보고 싶은 신문 다 볼 수 있어

우리 방에는 네 종류의 신문이 들어왔다. 종합일간지 두 개와 경제지 하나, 스포츠신문 하나였다. 신문 구독 대금은 각자가 냈다. 신문은 매일 오전 10시30분쯤 감방 도우미가 배달해 준다. 할 일은 없고 시간은 남아도는 수형자들에게 무료함을 달래주는 게 신문 구독과 TV 시청이다. 보고 난 신문은 모아두었다가 식사 때 밥상 위에 깔았다. 신문이 테이블보 역할도 했다.

신문에 실린 ‘오늘의 운세’는 특히 인기다. 오늘의 운세는 신문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두 종류 이상의 신문에서 운세가 좋다고 실린 날은 나도 막연한 기대감에 젖어들곤 했다. 부방장은 신문 광고에서 우연히 내가 쓴 책의 제목과 내 이름을 보았다. 부방장은 그 광고를 우리 방 사람 전부에게 보여주었다. 그 일로 내 직업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내 직업을 알게 된 방장, 부방장, 어르신, 대학 후배 모두가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바로 반성문 쓰기였다. 교도관을 통해 법원에 제출하는 이 반성문을 재판장이 반드시 읽는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수형자들은 이 반성문이 감형에 도움이 된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한국의 재판장은 1인당 한 달에 평균 200건에서 300건의 재판을 맡는다. 아무리 간단한 사건이라도 형사 사건은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건 기록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 사건의 기록이 A4 용지로 1000장이 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건을 한 달에 200건이나 맡는다고 치면 매달 A4 용지 20만 장을 읽는 셈이다. 판사들이 재판 기록을 집에 갖고 가서 읽는다는 게 틀린 말이 아니다.

재판에서는 1심이 가장 중요하다. 2심(항소심)과 3심(대법원)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1심에서 유죄 받은 사건을 2심에서 무죄로 번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1심 재판장은 사건 기록을 최초로 검토하고 판단하는 판관(判官)이다.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1심 재판장은 기록을 세심하게 읽는다.

2심 재판장은 기본적인 사건 기록에 1심 공판 기록까지 첨부한 방대한 자료를 세심하게 검토할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1심 판결에서 불복한 항소 이유 부분을 한정해서 살피는 경향이 짙다. 그렇기 때문에 2심 재판장은 사소한 부분을 놓치는 수가 있다. 이를 보완하는 하나의 장치가 바로 반성문이다.

맨 먼저 대학 후배가 자신이 쓰고 있던 반성문을 내게 보여주며 감수(監修)를 부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 후배의 사건을 정확히 알아야 했다. 사건 기록의 핵심은 공소장과 판결문이다. 공소장은 검사가 작성하는 것으로, 범죄행위를 육하원칙에 입각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서류다. 재판은 공소장 내용을 토대로 진행된다. 판결문은 공소장 내용의 옳고 그름을 재판부가 판단하여 그에 합당한 형량을 부과한 것이다.

반성문 감수(監修)

대학 후배는 자신의 변호사로부터 두 가지를 당부받았다고 했다. 하나는 택시기사에게 치료비 명목의 위로금을 주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서를 받아내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합의를 했다는 사실을 밑바탕에 깔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취지의 반성문을 재판부에 제출하는 일이다.

이 두 가지가 충족되면 바로 보석신청을 하겠다는 것이 변호사의 변론 전략이었다. 변호사의 보석신청 제의에 대학 후배는 매우 고무돼 있었다. 택시기사와는 그가 요구한 500만원에 합의하는 것으로 일이 진행 중이므로 남은 것은 반성문 작성이었다.

나는 대학 후배가 그동안 썼다는 반성문을 읽어보았다. 반성문 앞 부분에는 대학 후배의 삶이 적혀 있었다. 언제 어디서 태어났고, 부모는 어떤 분이며, 학력은 어떻다는 점을 기술했다. 그 뒤에는 택시기사와의 싸움에 대한 전말을 적고, 지금은 감옥에서 깊이 뉘우치며 반성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대학 후배는 반성문에서 어머니가 고혈압인 점을 강조하고 자신이 군 복무 중 허리를 크게 다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사실을 감안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런데 내용이 무덤덤했다. 사실관계를 나열하는 데 그쳤다. 나도 감동을 받지 못했다.

더욱 고약한 것은 반성문 곳곳에 여전히 분노가 서려 있다는 점이었다. 본인은 반성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택시기사와의 싸움 부분을 장황하게 언급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피력했다. 반성문이 아니라 재판부에 보내는 일종의 탄원서 같았다. 나는 대학 후배의 반성문을 고치기로 했다. 대학 후배를 밥상 옆에 앉히고 차근차근 물었다.

-부친이 군 출신이라고 되어 있는데, 계급이 뭐야?
"예비역 대령입니다."

-예비역 대령이라면 자식들을 강하게 길렀을 것 아니야? 이런 경우에는 단순히 군 출신이라고 하지 말고 '저는 예비역 대령 출신인 강직한 아버님 밑에서 어렸을 적부터 국가가 무엇이고 정의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라고 쓰는 거야. 당신이 군 복무 도중에 허리를 다쳐 수술을 받았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 상태야?
"비만 오면 쑤시고 아픕니다."

-허리 아픈 사람은 다 그런 거야. 제대 후에 재수술 받은 적은 없어?
"한 번 있습니다."

-그 부분을 강조하는 거야. 수술을 한 번만 받았다고 하지 말고 세 번이나 받았다고 뻥을 치는 거야. 감옥에 오기 얼마 전에 재수술을 받았다고 하고, 지금은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거야.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 혼자 산다고 되어 있는데, 당신이 모시고 사는 거야? 따로 사는 거야?
"따로 삽니다."

-판사가 가족사항을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어. 따로 살더라도 반성문에서는 당신이 모시고 산다고 해야 판사가 감동을 먹는 거야. 그리고 택시기사와의 싸움을 장황하게 적어 당신은 잘못이 없다고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1심 판결에서 이미 결론이 난 거야. 억울한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되레 재판장 심기만 건드리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어. 이 대목은 다 삭제해.

법정이 된 감방

납품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방장도 반성문 감수를 부탁했다. 방장의 경우에는 검찰의 계좌 추적으로 사실관계가 명명백백 밝혀진 사안이었다. 어떤 종류의 반성문이 필요한지 나도 궁금했다.

방장이 부연 설명을 했다.

“제 부친이 위암으로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변호사가 이를 변론 소재로 활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변호사 말의 요지는 ‘피고인이 납품업체로부터 처음 돈을 받았을 무렵에 부친이 위암 수술을 하게 되어 부친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받게 됐다는 점을 반성문에 부각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감형 사유가 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부각시킬 내용은 저와 납품업체 간의 특수한 관계라고 합니다. 제가 받은 5억원 가운데 그 절반이 넘는 3억원은 저와 절친한 납품업체 사장이 주었습니다. 그 사장은 저와 동갑입니다. 저는 그 납품업체 사장에게 제가 아는 호텔 세 군데를 소개해 주고 그 회사 제품이 납품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또 그 사장 공장에 화재가 나서 큰 피해를 보았을 때는 재기할 수 있도록 제 돈 1억5000만원을 이자도 받지 않고 빌려준 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제가 받은 5억원 모두가 납품에 따른 대가가 아니고 인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금전거래라는 점을 반성문에 자세히 쓰라고 변호사가 당부하더군요.”

방장의 반성문을 읽어보니 묘사가 구체적이지 않았다. 막연하게 ‘호텔 세 군데에 납품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기술하는 것보다 세 군데 호텔 이름을 구체적으로 적시할 때에 사실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나는 방장에게 1억5000만원을 무이자로 빌려주었다는 것을 입증할 증빙 자료가 있는지를 물었다. 방장은 “변호사도 그 자료를 요구했는데, 차용증을 받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나는 “그렇다면 그 납품업체 사장을 증인으로 내세워 그런 사실을 입증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방장은 “재판부가 증인 신청을 받아들였지만, 증인이 출석하지 않아 재판이 연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방장은 변호사가 작성했다는 납품업체 사장에 대한 증인 심문 사항을 보여주며 그중에서 고칠 게 있으면 고쳐달라고 부탁했다. 증인 심문 사항이 무려 50가지나 됐다. 단순하게 ‘예’ 혹은 ‘아니요’라고 증인이 간단하게 대답하게 만든 질문도 있지만, 긴 설명을 요하는 것도 있었다. 증인이 법정에 출석하는 것을 꺼려할 만도 했다.

방장의 변호인이 작성한 증인 심문 사항은 변호사가 온갖 기록을 다 검토하여 엄청나게 고생해서 작성했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사건의 전체 개요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이 있어서 오히려 재판장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할 소지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증인 심문 사항의 순서를 사건 발생 순으로 재정리했다.

또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는 질문들은 혼란을 막기 위해 다 삭제했다. 방장은 내가 수정한 증인 심문 사항을 읽었다. 부방장이 증인 역을 맡았다. 졸지에 우리 방이 법정이 됐다. 방장이 변호인 자격으로 증인인 부방장을 심문했다.

-증인과 피고인이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친하게 지낼 무렵에 증인은 피고인의 부친이 위암 수술을 받게 됐다는 사실을 피고인으로부터 들었지요?
"예."

-피고인이 증인에게 그러한 집안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술값을 돈으로 주면 몸이 축나지도 않고 아버지 수술비 마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여 증인은 피고인에게 돈을 주게 되었지요?
"예."

-그 이후로 피고인은 증인에게 술 접대 요구를 하지 않았지요?
"예."

방장은 내가 수정해 준 증인 심문서에 대해 매우 만족해했다.

1970년대 수원형무소 모습. 전자경비시스템을 운영 중인 요즘 형무소와 차이가 난다.

감옥은 시간이 정지된 곳

감옥은 시간이 정지된 곳이다. 화장실 구조에서 알 수 있듯이 시설까지 옛 모습 그대로다. 그러나 수형자들이 외부 서신을 받는 방법은 과거에 비해 달라졌다. 하나는 통상적인 우체국을 통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컴퓨터 통신이다.

수형자의 가족이나 친구가 성동구치소 홈페이지에 접속해 수형자 이름과 수형자 번호를 입력한 후 편지를 쓰면 된다. 구치소 측은 이 내용을 인쇄해 수형자에게 전해준다. 이 컴퓨터 통신을 요긴하게 이용하는 사람도 방장이다. 모두가 방장 나름의 감방생활 처세술이다.

살 줄 아는 사람은 어디서건 사는 법이다. 그들에게 감옥은 감옥이 아니다. 하나의 수도장이고, 헬스센터이며, 독서실이고, 학교다. 방장은 출소 후를 대비해 자동차 전문 서적 등을 정기 구독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수형자들과 잡담하며 지낼 시간이 없었다. 말을 적게 할수록 사람의 무게는 더 나가는 법이다.

수형자들이 감방 문을 나갈 수 있는 기회는 면회와 변호사 접견, 이발할 때와 목욕할 때, 의무실에 갈 때와 운동시간이다.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는 매일 한 차례씩 면회가 허용된다. 때문에 면회객들을 교통정리 하지 않으면 늦게 온 사람은 면회를 못하고 헛걸음한다. 주말에는 토요일 오전에 한해서 가족 면회가 허용되는데, 그 주에 한 번이라도 면회한 가족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부모나 아내일지라도 일주일에 두 번 면회는 못 한다는 이야기다. 형이 확정된 기결수는 면회가 한 달에 한 번뿐이다.

일반인이 면회를 가려면 근무시간인 주중보다는 주말이 편하다. 그럼에도 주말 면회가 불가능한 것은 교도관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휴일에 근무하는 공무원에게 초과수당을 지급할 예산이 없어 면회 금지다.

면회에는 일반 면회 외에 화상 면회와 특별 면회가 있다. 화상 면회는 예컨대 서울 거주자가 경북 청송의 청송교도소에 있는 수형자를 면회하고 싶을 경우 면회자의 거주지와 가까운 교도소나 구치소에 화상 면회를 신청해 그곳에서 화상을 통해 청송교도소 수형자와 면회하는 방식이다. 시간과 경비를 줄일 수 있는 화상 면회는 통신장애를 감안하여 면회시간이 15분쯤 된다.

특별 면회는 두꺼운 플라스틱 창을 사이에 두고 앉아 마이크를 통해 면회하는 일반 면회와 달리 사방이 탁 트인 특별면회실에서 마주 보고 앉아 손을 잡을 수도, 음식물을 먹을 수도 있다. 특별 면회를 하게 되면 교도관이나 동료 수형자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함부로 막 대하지 못하는 끗발 있는 수형자로 취급한다.

교정 행정을 법무부의 일개 국(局)에서 처리하던 시절에는 법무부 직원이 교도소에 전화 한 통을 하면 특별 면회가 가능했다. 검사가 전화하면 무조건 오케이였다. 힘없고, 돈 없는 서민 수형자들은 엄두를 내지 못했으나 정치인이나 기업인 출신의 수형자와 조직폭력배들은 수시로 특별 면회를 즐겼다. 그래서 특별 면회는 비리의 온상이 됐다.

이처럼 남용되던 특별 면회는 노무현(盧武鉉) 정부 시절인 2007년 법무부 산하에 교정본부가 신설되면서 수형자들에 대한 차별대우라고 하여 제한됐다. 교정본부 출범과 함께 우리나라 교정 행정은 획기적 변화를 맞이했다.

이 시기에 '형의 집행 및 수형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도 46년 만에 처음으로 개정됐다. 개정된 '형 집행법'에 의거한 특별 면회는 수형자의 교화나 건전한 사회 복귀를 위해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는 허용되지 않는다.

요즘은 검사가 특별한 사유가 없는데도 교도소에 특별 면회를 부탁하면 기록이 남는다. 자칫하면 청탁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때문에 검사 스스로가 꺼린다.

그렇지만 특별 면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교도소 소장이나 부소장, 보안과장 같은 끗발 센 교도관이 오케이 하면 지금도 특별 면회가 가능하다. 우리 방에서는 부방장이 유일하게 특별 면회를 했다. 특별 면회를 하고 온 부방장은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누라의 손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변호사 접견은 면회와 달리 제한 시간이 없으며 하루에 몇 차례라도 할 수 있다. 단,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변호사 접견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변호사가 접견실에 설치된 커피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오면 수형자도 변호사와 함께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변호사 접견 때 교도관은 참여하지 못하며 접견 내용을 청취하거나 녹취하지 못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멀리서 관찰은 가능하다.

머리를 빡빡 밀면 재판장에게 밉보여

방장은 일주일에 평균 두 번 이상 변호사를 접견했다. 담당 변호사가 감옥을 자주 방문했기 때문이 아니다. 변호사 입장에서 교도소 접견은 교통편을 고려할 때 반나절을 허비하는 일이다. 시간이 돈과 직결되는 변호사 사회에서 어느 변호사가 그런 수고를 한단 말인가?

방장에게서 변호사 비용 1억원을 받은 대형 로펌에서는 소속 변호사들이 성동구치소에 접견을 가는 날엔 자기가 담당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곳에 수감돼 있는 다른 수형자들을 접견 명목으로 불러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주고 커피도 마시게 하며 감방에서의 무료한 시간을 접견실에서 편히 보내게 배려했다.

수형자들이 가장 기대하고 고대하는 것이 변호사 접견이다. 수형자들의 이 애타는 심정을 변호사들이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교도소 접견을 많이 다니면 다닐수록 수형자 사회에서 인기 있고 존경받는 변호사가 된다.

교도소에서의 이발은 2주에 한 번씩인데, 강제가 아니고 희망자에 한해서다. 교도관은 재소자의 신체와 두발 등에 대해 위생 관리를 지도할 의무는 있지만, 강제로 이발을 시키는 것은 인권침해에 해당하며 이를 위반한 교도관에게는 주의조치가 내려진다.

내가 처음 이발할 때 방장이 조언했다.

"머리를 전부 다 밀지 마세요.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가 머리를 빡빡 깎고 법정에 나가면 판사들에게 미움을 삽니다. 재판부에 반항하는 심리로 비치는 겁니다. 저도 처음 감방에 왔을 때는 자포자기 심정에서 머리를 빡빡 밀었다가 고참들한테 혼이 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면회 온 부모님이 저를 보며 하염없이 우는 거예요. 머리를 빡빡 깎은 제 모습을 보고는 형이 확정된 줄 착각한 겁니다.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절대 머리를 다 밀지 마세요."

감옥의 이발사는 나와 같은 수형자다. 사회에서 이발업을 한 수형자도 있지만 감옥에서 이발 기술을 배운 수형자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이발사마다 실력이 천차만별이다. 이발 시간이 되면 감방 복도에 10개의 철제의자가 놓이고 러닝셔츠를 벗은 수형자들은 그 의자에 앉아서 차례를 기다렸다. 감옥에서 처음 이발할 때 나의 '깎사'는 실력이 형편없었다. 뒷머리와 옆머리를 바리캉으로 슬쩍 밀고 난 뒤 쓱싹하며 가위질 두 번을 하고는 끝이라고 했다.

조직폭력배에 대해서는 깍듯이 예우했다. 이발 시간이 길었고, 바리캉보다는 가위를 더 많이 사용했다. 앞머리는 이마를 살짝 덮을 정도로 고르고, 옆머리는 짧게 치고, 뒷머리는 풍성하게 다듬었다. 윗머리엔 머릿기름을 뿌려 머리칼이 하늘로 치솟게 했다.

요령을 파악한 나는 이발 순서를 미뤄서라도 조폭이 앉았던 자리에서 이발하곤 했다. 조폭들이 머리 스타일에 신경 쓰는 것은 재판장에게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조폭들은 법정에 출석하기 전 반드시 이발을 하고 깨끗이 세탁한 수형자복을 입었다. 감옥에서도 돈을 내면 수형자복을 세탁소에 맡길 수 있다.

목욕은 겨울철에는 2주에 한 번씩 뜨거운 물로 할 수 있다. 여름엔 매일 감방 안에서 샤워가 가능하지만, 추운 겨울에는 뜨거운 물이 나오는 감옥 내 목욕탕에서 단체로 목욕한다. 수형자들은 겨울철엔 목요일 면회를 기피한다. 면회로 인해 목욕을 놓치면 한 달 동안 목욕을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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