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38)씨는 한·중 양국 바둑인들 모두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이창호(39)의 친동생인 그는 2001년 이후 15년째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면서 형의 중국 원정 때마다 뒷바라지해왔기 때문. 올해 초부터는 이세돌·구리(古力) 10번기에 나선 이세돌(31)의 매니저를 맡아 뛰어다니고 있다. '창호 동생'에서 '세돌 엄마'로 별명이 바뀐 이영호씨를 인터뷰했다.

매니저라고 해서 거액의 계약금을 상상했지만 빗나갔다. 계약서도 없다. 10번기 주최 측이 제공하는 통역비가 있을 뿐이다. 그래도 둘은 10번기 때면 '바늘과 실'처럼 붙어다닌다. 심지어 이세돌은 대국 중 식사를 할라치면 영호씨를 내부로 들어오게 해 밥도 함께 먹는다. "중국 각 지역을 돌며 치르는 일정을 보니 사방이 온통 세돌이의 적이더라고요. 나라도 함께해줘야겠다는 생각에 돕겠다고 했죠."

전대(前代) 바둑황제 이창호의 친동생 이영호씨(왼쪽)와 현역 최고 인기스타 이세돌이 황금콤비로 활동해 주목받고 있다. 지난 5월 윈난(雲南)성에서 열린 이세돌·구리 10번기 5국 전날 찍은 사진.

성장기 시절 이세돌이 이창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르면서 영호씨와도 자주 어울렸다. 결정적으로 가까워진 계기는 중국리그. 2005년 무렵부터 5년여 동안 구이저우(貴州) 선수였던 이세돌은 도착하면 으레 영호씨를 불러내 외로움을 달랬다. 이제는 베이징 소재 '이세돌 바둑도장'을 공동 운영할 만큼 친하다. 원생 100명이 손익분기점인데 현재는 40명 선. 이세돌은 중국 방문 때마다 꼭 들를 만큼 도장에 애착이 크다.

이창호와 이세돌, 두 거목을 거쳤다는 건 바둑계에서 보통 이력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형은 세돌이를, 세돌이는 형을 닮아가고 있다고 느껴요." 항상 남을 돕고 꾹 참는 성격이던 이창호는 중년에 접어들면서 다소 예민해졌고, 까칠하다는 소리를 듣던 이세돌은 조금씩 부드러워져 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바둑만 생각해온 형과 달리 이세돌은 사업에도 관심이 크다.

4월 하순 이창호의 중국 을조리그 원정과 이세돌의 10번기 4국 일자가 일부 겹쳤다. 영호씨는 열흘 일정의 형을 항저우에서 닷새간 돌본 뒤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신안에 내려가 이세돌을 보살폈다. "꼼꼼히 챙겨놓고 항저우를 떠난 데다, 을조리그 출전이 훨씬 나중 결정돼 형도 이해했을 거예요."

10번기 5국이 있던 날 아침 식당서 만난 이세돌은 "어젯밤 모처럼 잘 잤다"고 했다. 그날 바둑을 이겼다. 영호씨는 "처음 이틀 연속 잠을 덜 자게 괴롭힌 전략이 적중했다"며 웃었다. 이세돌보다 이틀 늦게 도착한 구리가 고산지대 적응에 실패, 역전패한 것과 대비된다. "거창하게 매니저란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그냥 불편 없이 지내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 만족해요." 두 사람은 내달 27일 10번기 제6국이 열리는 루안(六安)으로 날아가 다시 뭉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