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희 산업1부 기자

"경제사절단 대부분이 호텔 방 안에 온종일 머물고 있거나 현지 투어를 다니는 게 현실입니다. 중소기업 사장님들만 그런 게 아니라 대기업 회장님들도 거의 똑같아요. 조선시대 신사유람단이야 선진 문물을 배우러 갔다지만, 21세기에 비즈니스 한다고 가서는 돈과 시간만 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여러 차례 동행했던 한 중소기업 CEO는 23일 이렇게 한탄했다. 이 CEO는 "방문 기간엔 사람들이 대거 몰리다 보니 오가는 항공료도, 현지 호텔 숙박료도 가장 비싸다"며 "눈도장 찍으러 간다고 하기엔 국가적 손실이 너무 크다"고 했다.

과거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 등이 돌아가며 맡던 경제사절단에 참여하는 기업인 선정(選定) 작업은 작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 때부터 산업통상자원부 주관으로 바뀌었다. 회장단 같은 명망가 위주로 사절단이 구성된다는 지적과 중소·중견기업인들이 소외된다는 비판을 수용한 결정이었다.

문제는 사절단 선정이 개방형 공모(公募)로 바뀌면서 동행하는 기업인 숫자가 필요 이상으로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작년 가을 베트남 경제사절단은 79명으로 2009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수행 인원(33명)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었다. 올 3월 독일 경제사절단에는 105명이 동행해 가히 '매머드급'이었다.

하지만 커진 외형과 달리 내실(內實)은 한참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100명 안팎의 기업인들이 우르르 다니지만 상당수 기업들은 별 소득은커녕 일정도 없이 왔다갔다 할 뿐인 탓이다. 최근 순방에 동행한 한 대기업 CEO는 "사절단 전체가 참석하는 2시간짜리 비즈니스포럼 말고는 일정이 없는 분들이 너무 많더라"며 "바쁘게 비즈니스 할 분들이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일각에선 "대통령 경제사절단에 CEO가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외국 바이어에게 신뢰감을 주는 효과가 크다"는 얘기도 나온다. 구체적인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대통령 수행에 따른 마케팅 효과만으로도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참석자들은 "사절단에 가보면 중소기업이 참여할 만한 대외 행사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경제사절단 규모를 늘린 것은 "대통령과 함께 순방을 다녀왔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기 위하려는 것이 아니라 중소·중견기업들에 글로벌 비즈니스 기회를 많이 주자는 의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순방 프로그램을 알차게 마련해야 한다. 그마저 힘들다면 최고의 비즈니스 외교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참여 인원을 실속 있게 줄이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