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태우 기자] 한폭의 그림과 같은 골이었다. 로빈 반 페르시(31, 네덜란드)의 환상적인 몸짓이 이케르 카시야스(33, 스페인)와 스페인의 철옹성을 무너뜨렸다.
반 페르시는 14일(이하 한국시간) 브라질 살바도르의 아레나 폰테 노바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예선 B조 스페인과의 첫 경기에서 환상적인 동점골을 터뜨렸다. 이날 5-3-2 전술을 들고 나선 네덜란드의 최전방 공격수로 출격한 반 페르시는 0-1로 뒤진 전반 44분 달레이 블린트의 장거리 패스를 몸을 날려 머리로 받아 넣으며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하이라이트 필름을 자주 만들어내곤 하는 반 페르시지만 이날 골은 더 특별했다. 네덜란드는 전반 27분 사비 알론소에게 페널티킥 골을 허용해 0-1로 끌려갔다. 스페인의 패싱 축구에 맞서 수비가 거칠게 맞섰으나 사비 에르난데스의 패스 한 방에 무너졌다. 디에구 코스타가 틈을 빠져 나갔고 결국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그러나 반 페르시의 그림 같은 골에 네덜란드도 원기를 되찾았다.
전반 종료 직전 왼쪽 후방에서 블린트가 최전방의 반 페르시를 보고 길게 패스를 넣어줬고 스페인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뚫은 반 페르시가 카시야스 골키퍼의 위치를 보고 몸을 날려 환상적인 골을 만들어냈다. 사실 이날 유난히 스페인의 오프사이드 트랩에 고전했던 반 페르시였으나 아르연 로벤과 같이 돌진하는 상황에서 로벤의 마크를 담당했던 헤라르드 피케가 일자 라인을 유지하지 못한 틈을 파고들었다.
‘ESPN’의 통계에 따르면 이날 반 페르시의 골은 17야드(15.5m)를 날았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70년 이후 월드컵 역사상 가장 긴 비거리를 자랑한 헤딩골이었다고 설명했다. 1998년 프랑스 대회 당시 올리버 비어호프(독일)가 멕시코와의 16강전에서 총알 같은 장거리 헤딩골을 기록한 기억은 있지만 ESPN은 이 기록을 특별히 언급하지 않으며 반 페르시의 골을 최장거리 헤딩골로 인정했다.
반 페르시의 골에 최악의 흐름에서 벗어난 네덜란드는 후반 8분 로벤, 후반 19분 데 브라이, 그리고 카시야스의 실책을 놓치지 않은 반 페르시의 추가골, 로벤의 원맨쇼 골이 연달아 터지며 5-1로 승리했다. 사실상 B조 1위 결정전으로 불린 이 경기에서 승리함에 따라 네덜란드의 1위 통과도 유력해졌다. 2위로 올라갈 경우 개최국 브라질과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승리였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에서 패한 빚도 깨끗하게 갚았다.
한편 12번째 월드컵 경기에서 세 번째 골을 터뜨린 반 페르시는 카시야스의 무실점 기록도 멈춰 세웠다. 이번이 8번째 메이저대회 출전인 카시야스는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433분 무실점 기록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이날 85분을 더 버티면 1990년 이탈리아 대회 당시 왈테르 젱가(이탈리아, 517분)가 세운 최고 기록을 경신할 수 있었으나 반 페르시의 환상골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카시야스의 월드컵 무실점 경기(7경기) 기록도 반 페르시 탓에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