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만든 건 남자 앤드 여자야. 여자가 된 남자가 아니고…."

영화 '하이힐'(감독 장진)은 이 대사로 요약된다. 그만큼 스토리 구조는 간단하다. 학창시절 자신의 여성성을 발견한 '지욱'(차승원)이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경찰관이 된다. '600만불의 사나이'라고 불릴 정도로 무자비한 인물이다. 마약 조직원 11명을 홀로 상대해 큰 부상을 당하지 않고 검거에 성공할 정도다.

겉으로는 강인한 완벽한 사내지만, 내면으로는 끊임없이 갈등한다. 트랜스젠더를 만나 현실적인 조언을 듣고, 성별을 갈아엎기 위해 돈을 모으게 된다. 그 와중에 학창시절의 첫사랑이었던 남자친구의 여동생도 지켜야 한다. 그가 여자가 되기에 현실은 무겁기만 하다.

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승원의 얼굴에 집중한다. 차승원의 표정은 영화의 중요한 열쇠다. 강인한 체력과 마초 같은 외피의 인물이지만, 속은 가녀린 여성성이 배어 나와야 한다. 과해서도, 부족해서도 안 된다. 차승원의 연기력은 이번 영화에서 다시 한 번 입증됐다. 영화 속 차승원의 눈빛은 깊고 슬프다. 특히 여장 연기가 압권이다. 선 굵은 그의 얼굴에 속눈썹을 붙이고 붉은 립스틱이 칠해진다. 긴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고, 가발까지 쓴다. 코미디 영화에서 보면 크게 웃음이 터질만한 장면이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관객을 숙연하게 만든다. 차승원을 따라 초반부터 쌓아온 감정이 장면의 몰입을 높인다.

코미디에도 일가견이 있는 차승원이라는 배우에게 코미디 부분까지 맡기지 않은 것은 장진 감독의 탁월한 선택이다. 만약, 차승원에게 웃음이라는 짐까지 지게 했다면 '트랜스젠더가 되고 싶은 마초'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을 듯하다.

상황 설정이 슬프고, 장르가 누아르라고 해서 시종일관 진지하지는 않다. 영화 초반 '허 회장'(송영창)이 사우나에서 지욱을 묘사하는 장면이나, '허곤'(오정세)이 형인 허 회장의 복수를 위해 지욱의 아파트를 뒤지다가 "경찰 집을 압수수색하는 게 이상해. 어지럽힌 거 다 정리하고 가라"는 등 코믹한 대사는 웃음을 유발한다. 차승원의 눈빛을 두고 "뽕 아니면 서클렌즈"라는 묘사도 관객을 관통한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코미디가 과해 극의 흐름을 무너뜨린다. 'SNL 코리아'에 등장하는 크루를 영화 속으로 데리고 온 것도 무리한 설정이다. '장진표 영화'의 색깔은 확실하지만, 기존의 'B급 코미디 정서'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액션도 만화적인 요소가 지나치다. "성전환자 헤아리려고 노력했다. 그들에게 평가받고 싶다"는 장 감독이지만 액션에서는 현실감을 쭉 뺐다. '슬로모션'이나 어디서 본 듯한 액션을 의도적으로 삽입했다고 하기에는 어딘가 촌스럽다. 지욱을 위협하는 칼이 공중에서 내려오는 찰나 허 회장을 쓰러뜨린다는 설정도 억지다. 포크로 손등을 찍고, 게 다리로 피부를 쑤시는 장면은 눈뜨고 보기 어렵다.

'로맨틱 헤븐'(2011) 이후 3년 만에 돌아와 쉽지 않은 동성애 소재를 누아르와 버무린 시도는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오랜만의 영화에 많은 욕심을 쏟아 부은 게 독이 됐다. 장 감독은 넘치는 자료수집으로 뒤늦게 시나리오도 수정했다. 그리고 영화에 플래시백 기법을 끼워 넣었다. 더 깔끔한 편집의 맛을 내지 못했다면 기존의 뚝심을 이어나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4일 개봉, 124분, 청소년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