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통형 버스 정류장 photo 박용남

포스 두 이구아수(Foz Do Iguacu)는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 1호인 ‘이구아수폭포’를 품에 안고 있는 세계적 관광지다. 이 도시에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 참가하는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베이스캠프가 6월 11일 차려진다. 포스 두 이구아수는 파라나주(州) 소속이고, 이 주의 주도는 쿠리치바(Curitiba)다. 이구아수폭포는 쿠리치바에서 비행기로 약 50분 정도 거리에 있다.

세계적인 저비용·고효율의 창조도시이자 생태·환경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는 쿠리치바는 우리나라의 정치인, 공무원, 학자·전문가, 언론인 등이 벤치마킹하기 위해 찾아가는 가장 유명한 ‘성지’ 가운데 하나이다. 이곳이 어떤 도시인지 학습여행을 떠나보기로 하자.

쿠리치바의 총면적(432㎢)은 우리나라의 대전시보다 작으나 인구(약 180만명)는 훨씬 많은 대도시이다. 남미의 변방에 위치한 제3세계의 전형적인 도시이지만 국제사회에서 쿠리치바에 보내는 찬사는 매우 화려하다. ‘지구에서 환경적으로 가장 올바르게 사는 도시’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도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쿠리치바는 지구촌에서 가장 완벽한 대중교통 시스템을 갖춘 녹색교통의 모델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도시를 시민들이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든 사람들은 쿠리치바에서 3번이나 시장을 역임한 자이메 레르네르와 그의 동료들이다. 이들은 쿠리치바를 간선교통축을 따라 선형 성장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토지이용과 교통계획을 통합해 대부분의 대도시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고질적인 도시교통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

1970년대 초반부터 40년 가까이 6개 주요 간선교통축(6개의 간선교통축 중 하나인 린야베르데는 1개의 연방국도를 이전시킨 자리에 2009년 12월 새롭게 개통하였다)을 따라 중앙버스전용차로를 건설하고, 지구 간 순환버스 노선을 도입했으며, 지선 노선도 완벽하게 구축했다. 이와 함께 사람들이 간선으로부터 지구 간, 지선이나 위성도시 간 버스를 환승할 수 있는 대형 버스터미널을 간선교통축의 양 끝에 건설했다. 급행버스 노선을 따라 대략 1.4~2㎞마다 중형 터미널도 입지시켜 승객들의 환승 편의를 획기적으로 도와주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승객들이 버스를 타기 전 먼저 요금을 지불하는 원통형 정류장을 갖춘 직통급행버스 체계를 도입했다. 이 체계의 핵심이 되는 원통형 정류장에는 버스승강대와 동일한 높이의 플랫폼과 장애인들이 승하차를 쉽게 할 수 있는 휠체어 리프트가 구비되어 있다. 정류장 규모도 보행 밀도를 감안해 정류장 2~3개를 붙여 미적 감각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이는 승객들의 승하차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불필요한 엔진의 공회전을 방지하자는 목적이었다. 이를 통해 화석연료 소비와 대기오염을 30% 정도 저감시켰다. 쿠리치바의 급행버스는 보통 운행하는 완행버스와 비교해 3배나 많은 승객을 수송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250명의 승객을 한 번에 수송할 수 있는 이중굴절버스를 도입했는데, 이 버스는 5개의 옆문을 가지고 있어 이전보다 승하차 시간을 더 줄이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땅 위의 지하철’이라 불리는 간선급행버스(Bus Rapid Transit)의 이와 같은 시스템은 지하철이나 경전철보다 건설비가 훨씬 저렴하다. 버스를 최우선시하면서도 시스템의 운영을 최적화할 수 있어 운영·관리비도 월등히 적다. 쿠리치바의 버스교통 시스템은 지구촌을 대표하는 생태디자인 모델이자 저탄소사회를 구현해가는 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국제사회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6번째 간선교통축인 린야베르데에서 바이오디젤 100%(BD100) 엔진이 장착된 이중굴절버스 24대가 시범적으로 운행되고 있다. 2012년에 140대의 BD100 버스와 30대의 하이브리드 버스를 도입해 시 전역에서 운행을 시작했고 앞으로도 계속 확대할 계획이다. 그들은 지금도 석유 없는 세상을 대비해 새로운 대체교통수단을 도입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쿠리치바시의 교통 부문 혁신은 앞에서 언급한 버스 교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유럽의 자전거 도시에 비해 아직 규모는 작지만 공단과 주거지, 공원과 공원을 연결하는 자전거 도로망이 거의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고 세계적 규모의 보행자 천국을 자랑한다. 일명 ‘꽃의 거리’라 불리는 보행자 전용공간은 연장이 1㎞로 네덜란드의 항구도시 로테르담에 있는 세계 최초의 보행자 전용도로인 라인밴에 버금가는 규모이다.

이외에도 쿠리치바는 최근 들어 시내 중심부에서 총연장 3.5㎞ 도로의 1개 차선을 막아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 등을 탈 수 있도록 하는 시클로비아 시범사업을 착수했다. 또 도심에 20개 자전거 정류소를 조성해 자전거를 빌려 탈 수 있게 하는 공용자전거 사업을 시작했다.

이렇듯 쿠리치바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추진해 온 교통 분야에서의 혁신적 조치들은 자가용보다 대중교통, 그리고 동력차량보다는 보행자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최우선을 두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 결과로 쿠리치바에서는 다른 도시들처럼 자가용으로 인한 도시교통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덕분에 간선교통축 주변에 주거지를 조성하는 대중교통 지향형 도시 개발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바리귀공원 전경 photo 박용남

쿠리치바시가 국제사회에서 높은 인지도와 명성을 얻은 데는 교통 관련 혁신 외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다. 브라질은 물론이고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쿠리치바를 방문하는 언론인, 전문가, 공무원, 시민운동가들도 환경과 생태 관련 분야에서 발견되는 탁월한 업적과 창조적 노력들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관심을 끌고 있는 영역은 하천 관리와 공원·녹지 조성 관련 분야이다.

1971년에 주민 1인당 불과 0.5㎡의 녹지만을 가진 황폐한 도시에 지나지 않았던 쿠리치바는 오늘날 64.5㎡의 녹지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도시 평균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넓고, 유엔과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한 수치의 약 5배나 되는 엄청난 면적이다. 선진국 도시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이다.

1970년대 초반 쿠리치바 시장이었던 레르네르는 시 정부가 도시 전역에 나무를 심고 그늘을 마련하여 사람들이 그곳에서 물을 얻는 ‘그늘과 신선한 물’이라는 프로그램을 착수했다. 이는 여러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환경관리 방식이었다. 고속도로, 하상도로, 주차장 등을 건설하며 하천과 하천변 식생대 모두를 무분별하게 훼손하는 우리나라 도시들과는 아주 정반대이다. 하천의 직강화와 함께 호안을 시멘트로 피복하면서 둔치를 인공잔디와 놀이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전근대적이고 반환경적인 국내의 하천 행정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쿠리치바에서는 하천이 더 이상 인간만의 땅이 아니라는 자각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쿠리치바는 하천은 물론이고 주변 지역까지도 토지이용법률에 따라 철저히 개발을 규제하면서 원형 그대로 보존한다. 동시에 홍수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안으로 하천과 인접한 지역에 선형공원을 개발하고 유수지 역할을 담당하는 호수를 조성한다. 그 결과 쿠리치바에는 브라질의 도시공원 중 가장 큰 이구아수공원을 비롯해 동물원, 자연림, 조깅코스, 자전거도로 등을 골고루 갖춘 바리귀공원, 사웅로렌소공원, 팅귀공원 등 많은 공원들이 탄생했다.

또한 버려진 채탄장과 석산 개발이 끝난 부지를 대상으로 자연복원사업을 벌여 탕구아공원과 오페라하우스, 환경개방대학 등을 조성했다. 쓰레기 투기장이었던 곳을 식물원으로 개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에 힘입어 쿠리치바는 국제사회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 유명한 자연건축물을 갖게 되었는데 ‘트립어드바이저’가 선정한 남미를 대표하는 가장 빼어난 10개의 도시공원 중 2개(바리귀공원·탕구아공원)를 보유하고 있다.

그 결과 쿠리치바는 생물의 종 다양성이 매우 높다. 현재 쿠리치바시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새가 242종, 살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새가 48종으로 총 290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다양한 양서류와 포유동물, 그리고 50종의 뱀이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쿠리치바의 토착종이었다가 한때 교외로 사라졌던 동물들이 다시 도시 안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이 도시에서 배워야 할 것은 순환형 사회로 가는 열쇠가 환경 영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영역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곳에서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다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파로스의 등대에 착안해 만든 ‘지혜의 등대’라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이 도서관은 빈민가에 50개 이상이 세워져 저소득층 지역의 경관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쿠리치바에서는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에 탄약창이었던 곳이 파이올연극관으로, 약 100년의 역사를 가진 근대건축물이 방송국으로 사용된다. 건축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오스카르 니메에르의 1960년대 작품이었던 공공건물은 2002년 미술관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또한 폐전차와 차령이 지난 버스가 어린이 탁아소와 이동식 교실로 다시 태어나 활용되고 있다. 한마디로 도시 전체가 재활용을 모토로 다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쿠리치바는 적도와 가깝지만 해발 932m에 위치해 있어 평균온도가 섭씨 7.8~25.8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쿠리치바는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냉·난방 수요가 많지 않아 상류층이 사는 에코빌이나 공원 근처의 일부 부유층 주거지역을 제외하고는 태양열 주택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도시에서는 공공건축물을 지을 때도 철저히 자연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건설한다는 원칙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좋은 예로 2012년 6월에 바리귀공원 입구에 개장한 ‘르노 바리귀 엑스포센터(Expo Center Renault Barigui)’를 들 수 있다. 우수(雨水)를 재활용하는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는 12m 높이의 이 건물에는 4개의 수직정원이 조성돼 있고 2개 벽면에 흰색의 자스민을 심었다. 엑스포센터는 2년 안에 완전히 식물로 덮어 건물을 아름답고 향기롭게 만들겠다며 5000㎡나 되는 대규모 면적임에도 불구하고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는다. 자연통풍과 자연조명 시스템을 사용해 에너지 저소비를 완벽하게 구현해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쿠리치바가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창조적인 방식인 것이다.

‘땅 위의 지하철’이라 불리는 간선급행버스(BRT·Bus Rapid Transit) 시스템의 메카인 쿠리치바를 배우려는 열풍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2013년 말 현재 지구촌에는 총 168개 도시에 간선급행버스(BRT)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총연장 4424㎞, 하루에 약 3090만명이 이용하는 이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현장견학이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도도한 흐름에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단체장, 공무원, 정치인, 언론인, 전문가, 시민운동가 등이 벤치마킹을 위해 쿠리치바 현지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그 후 우리 사회에는 쿠리치바의 살기 좋은 도시 만들기 경험이 주요한 역할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 더 많은 기사는 06월 02일 발매된 주간조선 2309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