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 별 볼일 없는 중년의 싱글대디 버드(케빈 코스트너)는 12살의 어린 딸 몰리(매들린 캐롤)를 학교에 태워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투표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마치 네 뜻대로 될 것 같다는 기분만 들게 할 뿐이지. 누구한테 투표하건 우린 보험료도 못 낼 형편이고, 네가 아프면 또 다시 내 피라도 팔아야 할 거야."

앞서 몰리는 그날이 대통령 선거 투표일이라서 아빠 버드에게 투표장에 꼭 갈 것을 종용했다.

투표권 행사와 관련된 학교 숙제 때문도 있지만 똑똑한 몰리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아빠가 시민의 의무인 투표권을 반드시 행사해주길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빠 버드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그렇게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마침내 몰리는 아빠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선생님은 모든 투표가 중요하고, 그건 '사회적 약속'이랬어!"

그런데 두 부녀에게는 곧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 아빠 버드의 한 표가 박빙으로 치닫고 있던 대통령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게 된 것.

하필 그날 근무태만으로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버드는 만취해 투표장에 결국 가지 못했는데 그런 아빠를 대신해 몰리가 몰래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다.

그런데 그만 전자투표기 오작동으로 제대로 카운트가 되지 않았고, 대통령 선거는 버드 혼자만의 재투표 결과에 따라 승패가 갈리게 됐다.

이후 버드에게는 재선을 노리는 공화당과 정권탈환을 원하는 민주당 대선 캠프 양 측의 엄청난 선거운동공세가 가해지고, 그로 인해 그는 일약 세계적인 인물로 주목을 받게 된다.

에서 버드의 한 표가 지닌 남다른 가치는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대단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학급 반장을 뽑는 투표도 아니고 엄청난 수의 유권자가 존재하는 대통령 선거에서는 가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일반투표와 선거인단 투표를 병행하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드문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영화적인 상상력만을 기반으로 하는 불가능한 일은 결코 아니라는 점에서 가 현실 세계에 던지는 함의는 대단히 무겁다.

2000여만 표가 움직이는 선거에서도 어쨌든 1표라도 많은 쪽이 승리하기 마련. 다시 말해 는 어쩌면 실제 선거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통해 한 표가 지닌 가치를 제대로 보여준다.

사실 투표일이 되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이 바로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던가.

허나 선(線)은 수없이 많은 점(點)들이 모여 이뤄진다. 점이 빼곡할수록 선이 뚜렷하듯이 투표율이 높을수록 당선자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아울러 세상 모든 선들은 반드시 방향성을 갖기 마련. 그 방향이 옳지 않을 때는 선을 이루는 수많은 점들이 그 방향으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된다. 점 한 개의 무관심은, 그래서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에서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버드의 존재를 가장 먼저 취재한 기자 케이트(폴라 패튼)도 방송 멘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다시는 이런 말씀 하지 마세요. '한 표로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가 현실 세계의 유권자들에게 던지는 더 큰 메시지는 한 표의 가치와 함께 그것을 제대로 행사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투표권 행사에 무관심했던 버드가 재투표일까지 변해가는 과정은 이 영화의 백미다.

일용직 노동자로 별 볼일 없이 살다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된 버드는 한 동안 투표보다는 갑자기 누리게 된 세간의 관심과 이익에 더 많은 눈길을 주게 된다.

그런 와중에 공화당과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오로지 승리를 위해 그 동안 고수했던 정책마저 포기하면서 버드의 환심을 사려 한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어린 딸 몰리는 버드에게 "아빠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망치고 있다"며 울먹이기도 한다.

그런 버드의 자세를 바꾸는 계기가 된 건 미국 전역에서 버드에게로 날아든 수없이 많은 편지들.

편지의 주인공들은 버드처럼 대부분 먹고 살기도 팍팍한 소시민들이었고, 그들은 버드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투표권을 행사해주길 바란다.

마침내 버드는 그들의 편지를 통해 자신이 가진 한 표의 엄청난 무게를 깨닫게 되고 재투표 전 두 대통령 후보들과 마주한 정책토론회에서 자신이 받은 편지 가운데 하나를 두 후보들에게 읽어준다.

"제게 첫 번째 질문을 던져주신 분은 켄터키주 헨더슨에 사시는 피터 맨티스씨입니다. '버드 존슨씨에게. 저희 부부에겐 세 딸이 있습니다. 저희는 생계유지를 위해 두 군데서 일을 합니다. 그래도 어떨 때는 적자가 나기도 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데도 가족을 보살필 수 없다면 가장으로서, 한 남자로서 자신에게 회의가 들기 시작합니다. 제 경우도 그렇습니다. 저는 이 나라를 위해 싸웠고, 그것이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두렵습니다. 후보자에게 물어봐주세요.우리가 세계 최대의 부국이라면 어째서 살기 힘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겁니까?'"

투표율이 높더라도 그것이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대다수 유권자들이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고 연애하듯이 혹은 무관심 속에서 투표장에 들어서기 때문 아닐까.

우리나라 같은 경우 영·호남의 지역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도 결국은 투표를 연애하듯이 하기 때문 아니던가.

그러나 투표는 연애질이 아니다. 선거란 에서 어린 몰리의 말처럼 후보자와 유권자 간에 계약(契約)을 맺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다.

그리고 계약이라면 계약내용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후보의 공약이 실현가능한지, 과거 공약이행률은 어느 정도 되는지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후보의 도덕성도 중요하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계약을 맺지.

다시 말해 선거에서 중요한 건 '호불호'가 아니라 '신뢰'다. 바로 그러한 투표권 행사가 세상을 바꾸지 않겠는가.

에서 수의사나 연방의회 의장이 꿈인 어린 몰리도 작문 수업 과제로 '투표가 중요한 이유'라는 주제의 글짓기 발표를 통해 이런 말을 한다.

"세계의 모든 위대한 문명들은 같은 길을 따라왔습니다. 속박에서 자유로, 자유에서 번영으로, 번영에서 만족으로, 만족에서 무관심으로, 무관심에서 다시 속박으로. 우리가 이런 역사에서 벗어나려면 순환고리를 깨야만 합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2012년 11월15일 개봉. 러닝타임 1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