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공화국 당시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 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고(故) 김근태 전 민주당 의원이 28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김용빈)는 29일 민청련을 결성해 불법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김 전 의원에 대한 재심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1985년 9월 4일 당시 서울대 학생이었던 김 전 의원은 ‘민청련’을 결성하고,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를 배후에서 조종한 혐의로 구속돼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씨 등으로부터 22일간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받았다. 고문을 견디다 못한 김 전 의원은 거짓으로 자백한 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의 확정판결을 받고 복역했다. 이후 김 의원은 활발한 정치활동을 이어갔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다 지난 2011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아내인 새정치민주연합 인재근(60) 의원은 김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난 지 열 달 뒤인 지난 2012년 10월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수사에 관여한 사법경찰관이 직무에 관해 죄를 범했으므로 형사소송법 420조 7호에서 정한 재심 사유가 인정된다”며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허위진술을 강요하는 상태에서 이뤄진 진술에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김 전 의원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뒷받침하는 최모씨 등의 검찰 진술은 대공분실에서 협박과 폭행, 고문을 당해 거짓 진술한 것으로 증거능력과 신빙성이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김 전 의원이 소지했던 ‘자본주의의 과거와 현재’라는 책에 대해서도 “이적표현물은 국가 존립이나 자유질서를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내용이어야 하고 일부 표현만 떼는 것이 아니라 전후 맥락도 고려돼야 한다”며 “현재 시점에서 이 책을 이적표현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1989년 관련조항이 폐지됐다며 유·무죄 판단을 하지 않고 면소 판결했다.
인 의원은 재판부의 선고 후 “집시법 위반에 대해 면소가 선고된 부분이 아쉽지만 국가보안법 무죄 판결은 진실과 법치의 승리”라며 “무자비한 고문으로 김 의원이 세상을 떠난 뒤에 이런 판결이 내려져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인 의원은 집시법 법리 등을 검토해 상고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