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25일 열린 유럽의회 선거를 잠정 집계한 결과, 프랑스·영국·덴마크에서 유럽연합(EU) 해체와 유로화 반대를 주장하는 극우 정당이 1위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그리스에서는 EU의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극좌 정당이 1위를 달렸다. 이 극우와 극좌파는 전체 751석 가운데 140석 이상을 차지할 전망이라고 유럽의회 사무국은 밝혔다.

극우 성향의 영국독립당(UKIP) 당수 나이젤 파라지(사진 왼쪽)가 유럽의회 선거를 잠정 집계한 결과를 듣고 기뻐하고 있다. 오른쪽은 프랑스 선거에서 1위를 기록한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

전통적으로 좌·우 양당 체제를 유지해온 프랑스와 영국에서 극우파가 정치 무대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2008년 유럽 경제 위기 이후, '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남유럽 국가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중도 좌·우파의 친(親)EU 명분론에 대해 유권자들이 피로감을 나타내고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성향을 드러낸 것이다. 프랑스 마뉘엘 발스 총리는 "유럽에 '정치적 지진'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유럽의회 선거는 자국 선거와 비교해 투표율이 낮고, 기존 정당에 대한 심판 차원에서 극우 또는 극좌파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유럽의회 선거는 극우와 중도우파, 중도좌파와 극좌까지 국가별 정당들이 이념별로 유럽 차원의 정치적 그룹을 꾸려서 치른다. 유럽의회는 EU 관련 법안에 대한 동의·부결권과 예산권, 국제조약 동의권을 갖고 있다. 또 2009년 체결된 리스본조약에 따라 이번 의회부터는 EU의 행정부에 해당하는 EU 집행위원회 위원장 선출권도 갖게 됐다.

물론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돌풍'은 아직까지 제한적이다. 이번 선거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과 프랑스의 대중운동연합 등 중도우파 성향의 유럽국민당그룹(EPP)이 751석 중 214석을 차지했다. 이 중도우파 그룹들이 유럽의회 전체에서는 1위가 될 전망이다. 프랑스 집권 사회당이 포함된 중도좌파 유럽사회당그룹(S&D)은 189석으로 2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BBC방송은 "중도우파와 좌파 등 친(親)EU 성향 의원이 여전히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극우파의 목소리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반(反)EU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좌·우파 연합이 형성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프랑스 국민전선과 오스트리아 자유당 등 극우 의원들이 140명 이상 유럽의회에 입성하면, 유럽 각국의 정치 지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의회 선거 정치 지형도

이번 선거 결과로 이민자 복지 축소 등 각국의 국내 정책에서도 극우의 주장이 반영될 가능성이 커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선거는 극우가 승리한 프랑스·영국·덴마크나 극좌가 승리한 그리스의 국내 정치에서 중요한 작용을 할 것이며, 결국은 EU 전체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EU 차원에서 논의 중인 유럽은행 통합 문제에서도 통합에 반대하는 극우파의 주장이 반영될 가능성이 커졌다.

AP통신은 "현재 진행 중인 EU와 미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도 지연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