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은닉 재산에 대한 의혹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이를 도운 여성 5인방의 존재가 알려져 화제다.
이들은 유 전 회장의 재산이 자녀들에게 넘어가는 데 핵심 역할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경영 지시를 받은 적이 있나요?"
- 그런 거 하나도 없어요.
"회사 돈을 빼돌린 적 있나요?"
- 전혀 없어요~. 걱정 마세요.
지난 5월 10일 인천지방검찰청에 출두한 전양자에게는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입가에는 잔잔하게 미소를 띠었다. 방송이나 기자들이 몰려든 당황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여유 있는 쪽은 전양자였다. 게다가 모자부터 의상까지 화려한 골드 컬러로 스타일링을 했고, 여기에 선글라스까지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드라마 속 푸근한 엄마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어 이날의 전양자의 모습은 이슈가 됐다.
전양자는 이날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회장 일가의 경영 비리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에 의해 피조사자 신분으로 소환됐다. 유 전 회장은, 자신은 철저하게 경영의 배후에 숨은 채 자신의 최측근들을 이용해 자금을 끌어모으고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을 거쳐왔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핵심 측근 7인방에 이어 여성 5인방이 주목을 받고 있다. 김혜경 한국제약 대표, 전양자(본명 김경숙) 노른자쇼핑·국제영상 대표, 김명점 세모신협 이사장, 이순자 전 문진미디어 대표, 윤두화 아이원아이홀딩스 이사다. 이들은 유 전 회장 핵심 계열사의 이사를 맡거나 대주주로 자주 이름을 올리면서, 복잡한 소유 구조의 세모그룹에서 비자금 조성과 관리 등의 핵심 고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양자, 유병언 일가의 처남댁?
사실 40여 년간 시청자와 호흡해왔던 중년 배우인 전양자가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최측근으로 지목된 사실은 그녀의 패션보다 더 충격이었다. 그녀는 본명 '김경숙'의 이름으로 유 전 회장 일가의 계열사인 국제영상과 노른자쇼핑, '아이원홀딩스', 또한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의 본산인 경기도 안성 소재 금수원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검찰은 전양자가 유 전 회장 일가의 횡령, 배임 행위에 가담했는지를 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구원파의 핵심 멤버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 당시 전양자는 구원파를 옹호하고, 유병언 회장과 자신을 둘러싼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기자회견을 자청한 바 있다. 그때 전양자는 "1977년부터 구원파 신도가 됐다"며, "늦게 한 결혼에 실패하면서 일부종사를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좌절감에 쉽게 종교에 귀의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전양자가 유병언 전 회장의 내연녀라는 의혹과 소문에 대해서는 "어떤 관계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싫다"고 밝히며, "유병언 전 회장의 부인인 권윤자 씨와 친자매처럼 가깝게 지냈다. 그런 인연으로 유병언 전 회장 부부와 자주 어울리긴 했지만 유병언 전 회장과의 개별적 만남이나 남녀로서의 관계는 전혀 없었다"고 잘라 말한 바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전양자가 구원파의 창시자인 고 권신찬 목사의 아들이자, 유병언 전 회장의 처남인 권오균 씨와 결혼했다고 알려졌다. 한 언론 매체에서 전양자가 2009년 권오균 씨와 재혼했다고 밝힌 것이다. 권오균 씨는 전양자보다 8세 연하다. 그러나 전양자는 이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면서 "이혼 후에 쭉 혼자 살아왔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전양자가 구원파 가족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보고 있다. 구원파 전 신도는 "영향력이 있으니까 금수원 대표이사로 앉히지 않았겠느냐. 유병언과 무관한 사람을 앉히겠느냐"고 귀띔하기도 했다.
전양자를 구원파로 이끈 인물로는 배우 윤소정이 지목됐다. 이 부분은 윤소정 역시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는 15년 전에 구원파를 탈퇴했으며, 현재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녀는 방송을 통해 "(전양자가) 노른자쇼핑 대표가 된 건 몰랐다. 나도 지금 TV를 보고 많이 놀랐다"고 밝혔다.
김혜경 대표, 유병언의 여자?
전양자와 더불어 유 전 회장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여성은 바로 김혜경 한국제약 대표다. 한국제약은 스쿠알렌 등을 제조하는 세모그룹의 계열사다. 유 전 회장의 과거 운전기사가 한 방송에 출연해 "유병언 전 회장은 '얘가 우리를 배신하면 우리(구원파)는 모두 망한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김 대표가 비자금 조성은 물론, 유병언 일가의 재산 증식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김 대표와 유 전 회장은 어떤 관계일까? 20여 년 전 구원파 신도였던 김 대표는 유 전 회장의 비서였다. 미인형 얼굴에 약사 출신으로 머리가 좋았다고 알려진 김 대표는 유 전 회장의 총애를 한몸에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구원파 측근은 방송을 통해 두 사람이 동거를 했고, 아이까지 낳았다고 폭로했다. 이 문제는 김혜경 씨가 두 아이를 미국으로 유학 보내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강남의 W어학원 대표는 한 시사지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이 '우리 아빠가 이단 종교 교주'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출한 아이들의 출생신고서상 아버지 생일이 유 전 회장과 같고, 출생한 곳이 일본이라는 점도 일치한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버지 이름은 김훈이고 유 전 회장과는 20년의 나이 차이가 나지만 같은 사람으로 보는 분위기다.
김 대표는 '유병언의 여자'라는 의혹에 대해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유 전 회장은 옛 세모의 사장이었고 나는 직원이었다. 회사의 어른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평교인으로 조용히 설교를 듣다가 우연히 회사를 들어가게 됐고, 유 회장님은 회사에 들어가서 알게 됐다"고 주장한다.
또한 유 전 회장의 아이들을 낳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다른 사람을 만나 사귈 수도 있고, 지금도 그럴 수 있는데, 그런 식으로 떠들면 어떻게 하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김 대표는 공식적으로는 미혼이기 때문에 이 같은 소문에 대해서는 "3류 소설"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본인의 강한 부정에도 불구하고, 금융감독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김 대표가 세모그룹 계열사 중 이익이 나는 회사의 지분만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청해진해운의 지주회사 '아이원아이홀딩스' 지분 6.29%를 보유한 3대 주주이자, 세모그룹이 부도 처리된 뒤 세모해운의 선박을 물려받아 여객선사업을 하다가 청해진해운에 인수된 '온바다'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이들 회사에서 약 10억 원의 배당금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여기에 대해서 김 대표는 회사 설립 초기 주식 배당을 받은 것은 인정했다). 반면 손실 위험이 있는 계열사 주식은 대량 매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대표가 유병언 일가의 지분구조 재편에 핵심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 대표는 이번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지목되어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있지만, 현재 미국에 머무르고 있다.
"유병언의 말엔 무조건 복종해라" 송재화
여성 5인방은 아니지만, 유병언 전 회장의 여인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송재화 씨다. 세모그룹 계열사가 지분을 보유한 남녘수산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구원파 핵심 간부로, 1980년대 중반까지 유 전 회장을 대신해 신자들로부터 거액의 모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원파 전 신도는 언론을 통해 "송 씨가 (유 전 회장의) 자금책이었으며 20여 년간 유 전 회장과 밀착 관계에 있었다"고 폭로했다.
송 씨는 과거 박순자 씨와 함께 '통영파'로 알려졌다. 박순자 씨는 오대양의 대표이자 교수로, 신도들과 함께 집단자살로 생을 마감한 인물. 송 씨는 구원파 신도들에게 "유병언 사장 말엔 절대 복종해야 한다. 유 사장의 사업은 못 먹는 성도들을 위한 헌신 행위"라는 발언으로 유 전 회장의 사업을 정당화시켰다. 또한 "유 씨가 세운 삼우트레이딩을 돕는 것이 신도들의 교제를 확산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하면서 돈을 끌어모았다고 알려졌다.
특히 송 씨는 과거 유 전 회장이 상습사기 등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을 때 자금책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박순자 씨의 자금 일부가 세모 측으로 흘러들어갔는지 수사했지만 혐의를 입증하는 데에는 실패했고, 유 씨가 송재화 씨를 통해 구원파 신도들한테 11억여 원을 받아 쓴 부문만 법원에서 인정됐다.
당시 판결문에는 송 씨가 유 전 회장에게 비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유병언 명의로 된 차용증이나 어음 등의 문서를 일절 남기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 사채를 끌어모으는 등 수완을 발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수표나 채권 등은 현금화해 마대자루에 담은 뒤 중간 운반책을 거쳐 최종적으로 유 전 회장에게 전달토록 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재판에서 송 씨는 유 전 회장과의 친분을 마지막까지 부인했다. 결국 송 씨는 유 전 회장과 공모해 사채 약 16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다.
송 씨는 실제로 유병언 전 회장 일가의 가족이었다. 송 씨는 권신찬 목사의 차남인 권오균 씨와 결혼했지만, 목사가 두 사람을 인정하지 않아 헤어졌다고 한다. 이유는 송 씨가 속한 모임이 교회 내에서 물의를 일으킨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놀라운 루머도 있다. 유병언 회장의 처남댁이었던 송 씨와 유 전 회장이 동거했다는 소문이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한 언론에서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출소 후 세모그룹 전면에서 사라진 듯 보였던 송재화 씨는 현재 제주도 서귀포에서 남녘수산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남녘수산은 문진미디어 등 유 전 회장 일가 계열사들이 지분을 보유하고, 구원파의 수련시설로써 쓰이는 곳이다.
부인이지만 현재 별거 상태, 권윤자
유병언 전 회장은 구원파 창시자인 고 권신찬 목사의 외동딸 권윤자 씨와 결혼했다. 그러나 세 번째 부인설까지 나돌면서 유 전 회장은 부인 권윤자 씨와 호적상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뿐, 사실상 별거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유 전 회장과 여자 문제로 갈등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혜경 대표와는 사이가 나빴다고 전해지는데, 한 구원파 관계자는 "(유병언의 자금 관리를) 여자들이 주로 했는데 김 씨와 권 씨는 유 전 회장을 사이에 놓고 늘 긴장 관계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과거 구원파 신자이기도 했던 정동섭 전 침례신학대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유 전 회장 운전기사에 따르면 김혜경 대표 때문에 유 전 회장 부부가 많이 싸우고 언쟁을 했다.
권 씨는 자기 남편을 교주라 불렀는데 부부 싸움 와중에 '당신이 JMS(기독교복음선교회) 교주에 비해 나을 게 어디 있나. 정명석(JMS 교주로 JMS 고위 간부들로부터 조직적으로 여신도들을 성상납받았다)과 똑같은 인간이다' 그렇게 험담하면서 싸우는 걸 운전기사가 들었다고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권 씨는 구원파의 본산으로 알려진 대구 일대에 부동산을 갖고 있다. 송 씨와 김 씨가 현금이나 주식을 관리했다면 권 씨는 부동산 형태의 자산을 관리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