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헝거게임' 제작진의 아들이 여성에 대한 증오에 휩싸여 6명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영화는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자들을 죽여야 하는 미래 사회의 생존 서바이벌 게임을 다루고 있다. 평소 "여성들에게 인기가 없다"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온 범인은 여성들을 원망하고 대량 살인을 예고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후 범행에 나섰다.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시립대 학생인 엘리엇 로저(22)는 23일(현지 시각) 저녁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주립대(이하 UC샌타바버라) 캠퍼스가 있는 소도시 이슬라비스타에서 흉기와 총으로 6명을 살해한 뒤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자살했다. 엘리엇은 '헝거게임' 조감독인 피터 로저의 아들로 밝혀졌다. 그는 '헝거게임' 속편 시사회 때 아버지와 함께 레드카펫에서 출연 배우들과 사진 촬영을 하는 등 이 영화에 심취해 있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이 때문에 잔인한 살인을 다룬 영화 '헝거게임'의 폭력성이 이번 사건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미국에선 '헝거게임'이 흥행에 성공한 이후 어린이들 사이에서 폭력적인 성향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뉴욕타임스는 "인형을 갖고 놀던 여자 어린이들이 '헝거게임'의 여주인공을 흉내 내기 시작하면서 장난감 활과 화살 판매가 급증했다"고 전했다.
엘리엇은 이날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3명을 흉기로 살해한 후 자신의 BMW 승용차를 몰고 UC샌타바버라 여대생 기숙사로 향했다. 기숙사 문을 2분간 두드렸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자, 그는 바깥에 있는 여학생들에게 총기를 난사해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는 인근 식당에서 식사하던 청년 1명을 살해한 후 다시 차를 몰고 다니며 10여분간 행인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했다.
이번 총기 난사로 8명이 총상을 입는 등 부상자13명이 발생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엘리엇의 차 안에선 반자동 권총 세 자루와 400여발의 총알이 발견됐다. 피터 로저 조감독은 변호사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끔찍한 비극에 연관된 가족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면서 "우리 가족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으며 관련된 모든 분께 죄송하다"고 밝혔다.
은둔형 외톨이였던 엘리엇은 '묻지마 총기 난사'에 나서기 전 "여자들은 다른 남자들에게는 애정과 섹스, 사랑을 줬지만 내게는 단 한 번도 준 적이 없다. 나는 22세인데 아직도 숫총각이고 여자와 키스해 본 적도 없다"는 내용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그는 이 동영상에서 "여대생 기숙사에 있는 여자들을 모두 죽이고 이슬라비스타의 거리로 나가 모든 사람을 죽이겠다"면서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 모두를 죽여 '해골의 산'과 '피의 강'으로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런던에서 태어난 엘리엇은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가 이혼한 후 대인관계를 기피하는 외톨이로 지냈다고 경찰은 밝혔다. 그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여성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정신질환도 겪었다. 이 사건으로 2012년 12월 26명의 희생자를 낸 샌디훅초등학교 총기 참사 이후 잠잠했던 총기 규제 강화 여론이 미국에서 다시 일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희생자인 크리스토퍼 마르티네즈의 부친은 "내 아들은 비겁하고 무책임한 정치인들과 미국총기협회 때문에 죽었다. 그들은 총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내 아들과 같은 희생자의 생존권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도 안 한다"면서 "도대체 (총기 난사 같은) 이런 미친 짓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하느냐"고 말했다.
☞영화 '헝거게임'은
영화 '헝거게임(The Hunger Games·사진)'은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자들을 죽이는 생존 게임을 다뤘다. 작가 수잔 콜린스의 3부작 공상과학(SF) 소설을 영상화했다. 소설은 1부와 2부가 출간되자마자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하지만 폭력성이 짙어 청소년들에게 해롭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영화는 폐허가 된 북미 대륙의 미래 도시가 배경이다. 주인공들은 식민지 각 구역에서 뽑혀온 12~18세 사이의 소년·소녀 24명이다.
게임에 참여한 도전자들은 야외 경기장에 던져져 적인지 동료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 모든 과정은 24시간 리얼리티 TV쇼로 생중계되며 시청자들은 마음에 드는 참가자에게 돈을 건다. 마지막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