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만에 달리의 작품으로 판명된 그림

1988년 한 화가가 스페인의 한 골동품점에서 단돈 150유로(약 20만원)에 구입한 그림이 현대 초현실주의의 대가로 꼽히는 살바도르 달리(1904~1989·스페인)의 진품으로 판명됐다고 AFP가 23일 보도했다.

달리는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현대 미술에 큰 족적을 남긴 천재 화가이다. 이번에 진품으로 판명된 이 유화는 달리가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처음 그린 그림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을 골동품점에서 구입한 사람은 미술사학자이자 화가인 토메우 라모다. 그는 지난 1988년 스페인 히로나라는 도시의 한 골동품 상점에서 이 그림을 발견했다. 라모는 "명확한 근거는 없었지만, 채색을 보고 달리의 작품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구입했다“고 밝혔다. 당시 라모가 골동품점에 건넨 돈은 2만5000페세타.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20만원에 불과하다.

골동품점 주인이 이렇게 싼 가격에 이 작품을 팔았던 이유는 달리의 작품이 아니라는 근거가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는 간략한 헌사와 함께 ‘1896년에 그려졌다’고 표시돼 있었다. 1896년은 달리가 태어나기 8년전이다. 이후에도 이 표시로 인해 전문가들은 이 그림을 달리의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X선과 적외선, 자외선 분석 등 고도의 감정기술이 개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전문가들이 지난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첨단 감정 기술과 필적 감정 등 갖가지 방법으로 이 작품을 분석한 결과, 이 유화가 달리가 17살이던 1921년 쯤 그린 진품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라모는 ”달리가 그림 왼쪽 아래에 적어넣은 1896년이라는 표시는 일종의 숫자 암호일 것“이라면서 "달리는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모든 사람을 속여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분명 무덤 속에서 웃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달리의 고향에서 달리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갈라 살바도르 달리 재단'은 아직 이 작품을 달리의 진품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달리의 진품으로 판명된 이 유화는 불타는 듯한 화산 위에 자궁처럼 생긴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주변을 천사들이 날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최고의 달리 전문가로 꼽히는 니콜라스 데샤르네스는 ”이 작품은 달리가 초현실주의를 구현한 최초의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라모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이달 초 익명을 요구한 개인 수집가에게 판매했다. 하지만 판매가격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