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는 인간과 문명의 상징이다. 인간은 의자에 앉아 안식을 구한다. 의자에 앉아 아이는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해간다. 사회에서 의자는 신분의 표식이기도 하다. 어떤 의자는 권좌(權座)를 상징한다.기업체의 사무실 의자는 근로자들을 옥죄는, 네 발 달린 짐승이 되기도 한다.
최수철의 장편 '사랑은 게으름을 경멸한다'(현대문학)는 의자에서 시작해 의자로 끝나는 소설이다. '인간은 의자에 예속된 존재'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의자에 잠시 앉았다 가는 것일 뿐 의자에 속하는 건 아니잖아요'라고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의자야말로 가득 차 있으면서 동시에 텅 비어 있는 우주 만상의 완벽한 표상'이란 깨달음도 설파한다. 의자를 통해 우주의 만다라를 느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소설은 의자에 앉아 번역을 하면서 사는 남자가 의자에 얽힌 트라우마를 앓는 여성을 만나 전개되는 연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의자에 관한 성찰을 담은 관념 소설이기도 하지만 의자를 매개로 해서 이뤄진 연애소설이기도 하다. 이 밖에 의자를 통해 예술을 탐구하는 디자이너, 의자에 관한 소설을 쓰는 작가도 등장한다. 의자를 계기로 해서 떠오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진다. '의자의 인문학'이랄 수 있는 사유가 재치 있고 깊이 있는 잠언을 낳는다. 의자에 관한 서사의 흐름이 쉬지 않으면서 때로는 냉소가 섞인 유머를 곁들이기도 한다.
최수철은 "의자에 기댔지만 의자를 넘나드는 이야기"라며 "의자를 통해 삶과 역사, 권력, 섹스를 두루 다뤘다"고 밝혔다. 그는 이탈리아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연안 여객선을 탄 적이 있다. 그는 싸구려 표를 구한 승객들이 선실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배의 로비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의자를 떠올렸다"고 회상했다.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의자에서 벗어나 결국 진정한 자신의 의자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럼으로써 독자에게 "당신의 의자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