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의 대표적인 병폐 중 하나가 책임지지 않으려는 '무사안일' '떠넘기기'다. 지난달 22일 오전 세월호 참사 희생자 시신이 안치된 목포기독병원에서는 유가족 신분을 입증하라는 검찰과 유가족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검찰이 한밤중에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유족들은 "이 시간에 어디 가서 증명서를 떼어오느냐"며 항의했다. '누가 증명서를 요구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본지 기자가 광주지검 목포지청에 문의했다. 목포지청 관계자는 "합동수사본부에 문의하라"고 했다. 합수부에선 "(목포지청) 총무계에 물으라"고 했다. 총무계에선 "합수부 언론 담당에게 물으라"고 했다. 언론 담당은 "형사부장실에 알아보라"고 했고, 형사부장실에선 "답변할 사람 찾아보겠다"고 하고선 연락이 끊겼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역시 마찬가지다. 대변인실에선 재난협력과로, 재난협력과는 해수부와 보건복지부로, 해수부에선 해양경찰청으로, 해경에선 다시 검찰 수사팀으로 답변을 떠넘겼다.
◇계급 정년도 없는 철밥통
민간 기업에서 고객을 상대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실무자부터 임원급까지 문책당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일반 행정직 공무원은 인사 평가에서 나쁜 점수를 받아 승진이 안 돼도 직급 정년이 없기 때문에 법률이 보장하고 있는 정년을 다 누리고 퇴직할 수 있다. 20년 근무 기간을 채우면 공무원연금도 받게 된다. 공무원연금은 적자가 생기고 있지만 해마다 2조5000억원을 국민의 혈세로 채워주고 있기 때문에 못 받을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정작 위험한 일을 하는 공무원인 경찰·군인·소방관 등은 일정한 기간 내 승진하지 못하면 계급 정년에 걸려 퇴출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8~2013년까지 6년간 계급 정년으로 퇴직한 경찰관은 경정(5급 사무관 상당)이 42명, 총경(4급 상당)이 53명 등 95명이었다. 경찰의 계급 정년은 경정 이상부터 적용된다. 소방관들도 소방령(5급 사무관 상당) 이상 계급부터 계급 정년이 적용된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계급 정년을 앞두고 명예퇴직한 소방관은 모두 99명이다. 반면 일반 공무원은 직급 정년이 없다.
◇"1개월 감사에 '무사안일' 200건 적발되기도"
감사원은 지난 2009년 9월부터 한 달여간 서울시 등 15개 시·도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 행정안전부(안행부 전신) 등 7개 중앙 행정기관을 대상으로 '무사안일·소극적 업무 처리 실태'에 대한 감사를 벌여 200건의 무사안일·소극적 업무 처리 사례를 적발했다. 감사원은 이를 바탕으로 2010년 '무사안일 감사 백서'를 발간했다. 당시 감사원은 "적극적으로 일하다 생긴 실수에 대해서는 '적극 행정 면책 제도'를 활용해 관용을 베풀겠지만, 할 일을 제때 하지 않을 경우에는 가중 처벌한다"고 밝히고, 공무원들을 상대로 순회 교육까지 실시했다. 그러나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났듯 공무원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는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1999~2000년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공무원들은 일이 터지면 (어떻게 해결할까를 고민하기보다) 자기 책임이 뭔지부터 따진다"며 "공무원은 잘못하면 감사에 걸려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만 생각한다"고 했다.
◇뿌리 깊은 보신주의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중앙·지방 공무원 1000명을 대상으로 행정에 관한 공무원의 인식 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스스로 '무사안일하다'고 답변한 사람들이 20.8%였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5%는 자신들이 '무사안일하지 않다'고 답했다.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의 원인으로는 '잘못되면 책임지게 돼서'란 답변이 35.4%로 가장 많았고 '보상이 미흡해서'(15.1%), '합법성 위주의 감사 때문'(14.5%),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보수성 때문'(8.2%), '자율성이 부여되지 않아서'(7.5%), '처우 개선이 안 돼서'(6.6%) 등의 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