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이 폭발한 후, 시민들의 분노도 폭발했다.
터키에서 사상 최악의 탄광 폭발 참사로 최소 27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총리의 경솔한 말 한 마디가 희생자 가족들과 터키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사고 이틀째인 14일(현지시각) 폭발 사고 현장인 터키 서부 마니사주 소마 지역을 찾았다. 알바니아 방문 일정까지 취소한 후의 발빠른 행보였다. 하지만 그는 사고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이런 (탄광) 폭발 사고는 늘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1862년 이후 일어난 지구촌 탄광 사고까지 일일이 거론하며 “다른 나라도 이런 사고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도 했다. 총리의 이 발언이 전해지자 유족들은 물론 시민들이 발끈했다.
◆ 유족의 분노, 격렬해진 반정부 시위
에르도안 총리의 기자회견장 주변에 있던 수백여명이 곧바로 분노를 터뜨렸다. 총리에게 항의하기 위해 몰려들었고, 총리는 측근들에 둘러싸여 피신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일부 유족들은 현장을 떠나려는 총리의 차를 발로 차기도 했다.
발언을 전해들은 시민들도 전국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에 나섰다. 소마 시내에서는 시민들이 총리가 이끄는 정의개발당(AKP) 당사로 몰려가 돌로 창문을 깨고 총리 퇴진을 외쳤다.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전했다.
일부 시위대는 이번 사고 탄광 업체인 소마홀딩스 이스탄불 본사 앞에서 ‘살인자’, ‘도둑놈’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수도 앙카라에서는 3000~4000명의 시민들이 중심가 크즐라이 광장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터키 진보 노동조합연맹의 카니 베코 위원장은 이번 사건을 ‘노동자에 대한 학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터키 최대 노동조합 단체인 공공노조연맹(KESK)도 이번 참사에 항의하기 위해 15일부터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NBC 방송은 시위대의 분노가 정부와 에르도안 총리를 겨냥한 것이라고 전했다. 에르도안 총리는 앞서 2010년 탄광 가스 폭발 사고로 30명이 사망했을 때에도 “희생자들의 운명이었다”고 말해 터키 대중의 분노를 샀었다고 방송은 전했다.
◆ 무리한 민영화와 정부 무관심이 빚은 대규모 희생
외신들은 현지 광부들을 인용, 탄광이 민영화한 이후 회사가 무리하게 경영을 한 것이 사고의 원인으로 꼽힌다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라프는 사고 원인을 두고 현지 광부들은 탄광 민영화를 지목한다고 전했다. 민영화로 하청업자가 늘어나고, 노조를 약화시키면서 인부들의 근무 환경이 나빠지고 사고 위험에 대한 노출이 커졌다는 주장이다.
터키 정부는 최근 16개 탄광을 민영화했다. 사고가 일어난 소마 탄광도 10개월 전 민영화됐다.
정부의 관리감독이 소홀한 점도 이번 사고로 이어졌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현지 언론을 인용, 지난달 말 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이 이번 사고가 발생한 소마 탄광에 대해 안전 조사를 요구했지만 집권 여당이 이를 부결시켰다고 전했다.
당시 마니사주 외즈귀르 외젤 CHP 의원이 의회에서 “2012년에만 3번의 화재가 있었고 지난해 10월에도 사고가 발생하는 등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며 소마 탄광의 잦은 사고에 대한 개선조치를 요구했으나, 집권당이 “터키의 탄광 시설은 외국보다 안전하다”며 묵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AFP통신도 오는 8월 예정인 인도 대선의 유력 후보로 꼽히는 에르도안 총리가 그간 터키 탄광업계와 유착 관계에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