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열린 쌍쌍파티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고, 각각 물리학자·수학자가 되어 학문적으로도 동반자가 되었다. 포스텍 부부 교수인 김승환·최영주 씨를 만났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문학과 거리가 먼, 물리학과 수학을 연구하는 포스텍 김승환·최영주(55) 교수 부부가 철학적 주제를 고민하는 이유는 뭘까.
경북 포항시 남구 청암로에 있는 포스텍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CTCP) 김승환 소장실에서 부부를 만났다. 김 교수는 복잡계이론의 국내 권위자다. 정수론을 연구하는 최 교수는 미국 수학학회에서 초대 펠로우로 지명할 정도로 학계 저명인사다.
이 부부의 연구 분야는 물리학과 수학 분야에서도 특히 난해하다고 알려져 있다. 다행히 이 부부는 기자가 상상했던 과학자는 아니었다. 깡마르고 머리가 헝클어진 아인슈타인을 닮은 괴짜형 과학자는 그 자리에 없었다. 두 사람은 마음씨 좋은 50대 중반의 이웃집 부부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인터뷰는 난관의 연속이었다. 연구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 기자는 질문 공세를 폈고, 그로 인해 인터뷰는 3시간 동안 이어졌다.
먼저 남편인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에게 ‘어떤 연구 과제를 다루고 있는지’를 물었다. 김 교수는 지난해 11월 한국과학기자협회가 주는 올해의 과학자상을 받았고, 한국뇌연구협회 회장과 ACTCP 소장으로 일했다.
“제가 주로 하는 연구는 복잡계와 카오스이론에 대한 겁니다.” 김 교수는 “어렵게 생각하지 마라. 단순하지 않은 게 복잡한 것”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복잡계의 대표적 연구 분야가 뇌입니다. 뇌의 뉴런은 서로 소통하며 패턴을 만들죠. 이걸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를 연구 중이에요. 의식과 마취의 세계가 최근 연구 과제입니다.”
정수론을 연구하는 최영주 교수는 2005년 과학기술부가 선정한 여성과학기술자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가장 닮고 싶은 과학기술인에 선정됐다. 최 교수는 여성멘터링센터 등에 참여해 후학을 양성하는 멘토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그는 수학이 학생들에게 “어렵고 하기 싫은 학문”으로 취급받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수학계가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휠버트라는 수학자는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수학 문제를 설명하고 나서 그가 동의할 때 수학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어요. 성적 위주의 교육 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죠. 수학은 규칙이고 창의성의 원천이라는 걸 알려나가야 합니다.”
쌍쌍파티에서 만나 평생의 반려자로
이 부부는 올해로 결혼 32년째를 맞는다. 최 교수는 "사정이 있어 남들보다 결혼이 빨랐다"고 했다. "1982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남자친구와 해외 유학을 가겠다고 하자, 부모님이 결혼을 전제로 승낙을 했다. 당시 나는 남편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바람에 만 23살의 동갑내기는 서둘러 결혼했고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뒤 포스텍 설립 때 돌아와 이곳에 터를 잡았다.
두 사람이 만난 건 1979년 5월 이화여대에서 열렸던 쌍쌍파티에서다. 이화여대 수학과에 다니던 최 교수는 친구를 통해 서울대 물리학과 2학년인 김 교수를 파트너로 소개받았다. 이날을 인연으로 두 사람은 평생의 파트너가 됐다. 부부에게는 대학생 아들이 둘 있다.
10년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낳은 두 아들은 현재 대학생이다. 결혼은 빨랐지만 출산은 늦은 셈이다. 아들은 둘 다 기계설계디자인을 전공하는 공학도인데, 공교롭게도 부모가 전공한 물리학과 수학을 기본으로 배워야 하는 학문이다. 최 교수가 말한다.
"어릴 적 우리 애들은 학교와 집만 오가는 아빠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애들을 군대를 빨리 보낸 건 어른이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주변에서는 이런 나를 두고 계모가 아니냐는 농을 하는 분도 계세요. 대학생인 아들은 요즘 수학 공부를 제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해외 활동이 잦아 가끔 출장길에 예고 없이 마주치기도 한다. 과학자로서 상대의 영역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게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의 말이다.
"가끔 낯선 곳에서 남편을 만날 때가 있어요. 서울역이나 김포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죠. 출장이 많아 서로의 일정을 모두 확인하기 어려워요. 심지어는 모 학회에 둘 다 초청을 받고도 현장에 가서 그 사실을 안 적도 있는걸요."
최 교수는 자신의 연구 과제가 남편과 중복되는 걸 의도적으로 피해왔다.
"퀴리 부인은 노벨상을 처음 받을 때 남편의 업적이 아니냐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두 번째 노벨상을 받을 때 '이건 순수한 내 연구의 결과'라고 강조했죠. 남편의 뇌과학 연구와 내가 하는 정수론이 연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남편의 연구와 중첩되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 연구해왔습니다."
김 교수는 요즘 SNS에 푹 빠져 있다고 했다. 3년 전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을 만든 늦깎이 SNS 유저지만 최근에는 온라인에서 만난 지인들과 번개 모임을 갖고 복잡계이론이나 뇌과학 등을 주제로 토론도 한다.
각자 연구 영역에 매달려 살기 때문에 두 사람의 부부 관계가 딱딱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두 사람은 새벽 5시 30분이면 손을 잡고 포스텍 내 수영장으로 향한다. 남편은 "올빼미가 아침형 인간으로 바뀌었다"고 투덜대지만 아내인 최 교수는 마냥 좋은 듯 웃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