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들국화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전인권은 요즘 혼자다. 흩어져 지내던 친구들이 무려 25년 만에 들국화라는 이름으로 다시 뭉쳤는데 상황이 그렇게 됐다.
'한무대에 서는 것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는 팬들의 염원이 현실이 되는가 싶었다. 다시 뭉친 들국화는 근사했고, 여전했다. 새로운 음악이 담긴 앨범도 나왔다. 많은 사랑을 받은 '걷고, 걷고'가 담긴 들국화의 새 앨범. 그런데 이 앨범은 드러머 주찬권의 유작이 되었다. 다시 들국화가 되었다는 신나는 기분으로 모든 녹음을 끝내고 앨범 발매를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갑자기 길을 잃은전인권과 최성원. 둘만 남은 들국화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성향이 다른 두 사람이 남았다.
다시 각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제주도로 내려간 최성원은 당분간 휴식을 선언했다. 전인권은 활동을 선택했다. 새로 발표한 음악이 묻히는 것도 싫었지만, 그보다는 다시 음악을 하기로 힘들게 지핀 마음의 불씨를 끄고 싶지 않았다. 들국화적인 관점에서는 혼자가 됐지만, 그는 다시 전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들국화 음악의 궤를 이어가고 있다.
다시 걷고 걷는다
"요즘 좋아요. 음악이 좋아졌고, 연습도 이렇게 오랫동안 열심히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참 좋아요. 나하고 한 약속을 지키고 있어요. 진짜 잘 해주고 싶어요. 음악 열심히 보여주고 싶고, 잘하고 싶고, 좋은 음악 만들고 싶고."
세 번의 만남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인권의 얼굴이다. 요즘 전인권의 컨디션은 꽤 괜찮다. 한때 세상과 동떨어진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음악도 좋다. 들국화 재결성 이후 사람들은 여러 번 놀랐는데, 그중 하나는 전인권의 목소리가 전성기 못지않게 살아 있다는 것이다.
"나도 진짜 모르겠어요. 열심히 하니까. 그게 자신감이거든요. (자신감이) 많이 생겨서 (목소리가) 나오는 것 같아요. 들국화 새로 시작하면서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주변에서 그러더라고요. 자신감 때문에 좋아진 것 같다고."
그 자신감을 가지고 본인의 이름으로 밴드를 만들어 단독 공연까지 성황리에 끝냈다. 새 앨범 발표 이후 별다른 활동이 없어 아쉬워하는 팬들을 위해 일단 지켜본다는 심정으로 마련한 자리였는데 역시나 반응이 뜨거웠다.
"굉장히 좋아하고 웃더라고요, 관객들이. 크지 않은 공연이라 올 사람만 온 것 같지만 분위기가 참 좋았어요. 특히 엄정화가 와서 응원을 해줘서."(웃음)
새 앨범에서 가장 사랑을 많이 받는 곡이자 전인권 본인도 좋아하는 곡은 '걷고, 걷고'다. 다이어트 위해 걷기를 결심한 겨울 어느 날, 너무 추워서 나가기 싫어서 누워 있다가 툭 튀어나온 곡이다. 대중의 반응이 좋아서 곡 작업에 자신감도 많이 붙었다.
"곡이 많이 나와요. 처음에는 모든 것이 쑥스러웠는데, 연습으로 이겨내니까 나오더라고요. 새로운 신곡을 많이 만들고, 일 년에 한 번씩 앨범도 만들어서 내고 하면 후배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주찬권 없는 들국화는…
혈기 왕성한 많은 밴드들이 그러하듯 들국화도 참 많이 싸우고 화해하는 시간들을 반복했다. 개성 강한 전인권과 최성원 역시 대단한 존재들이었다.
"친구 서너 명이 다르면 아무리 싸워도 뭉칠 수가 있는데, 둘이 있으면 싸우지도 않아요. 그냥 다르지. (우리가) 음악적으로 친해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진짜 어려워요. 회사처럼 상사가 있어서 조율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계급이 매겨지는 순간 진짜 밴드가 될 수 없어요. 나는 젊은 친구들이랑 있어도 그들에게 '너는 어떻다' 하면서 따지는 법이 없어요. 밴드는 어려워요. 우리 둘은 다른 사람이야, 지금은."
주찬권이 세상을 떠나자 갑자기 어색해졌다. 예전에는 휴대폰으로 메시지도 자주 주고받았는데, 요즘은 전혀 연락을 안 하고 서로에게 시간을 주고 있다. 물론 아쉽지만 억지로 만들 생각도 없다. 다만 주찬권의 추모일에 맞춘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은 열려 있다. 현실에 맞게, 방법을 잘 의논해보려고 한다. 아직은 시간에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자연스럽게 해나갈 생각이다.
"밴드는 서로 열심히 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해요. 자기 음악에 충실해야 하고요. 서로 음악을 열심히 할 수 있고 재미있게 할 수 있으면 돼요. 그렇게 하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기지 않을까요? 믿음을 가지고 신뢰하고, 그래야 좋은 음악이 나와요."
인터뷰 내내 전인권은 음악적인 욕심을 내비쳤다. 음악 작업을 하고 일선에서 활동하다 보니 점점 음악적인 욕심이 커진다. 그는 국제 무대에 대한 꿈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한류와는 다른, 미국이나 영국 시장의 중심을 뚫는 제대로 된 한류를 시도하는 것이 그의 새로운 꿈이다. 다행히 요즘은 글로벌한 분위기 형성이 잘돼 있어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도 조금 쉬워졌다.
죽으려고 하니 살아났다
음악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면서도, 전인권은 본인이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가는 비주류 스타일이라는 점을 자주 강조했다. 마약으로 다섯 번이나 수감될 만큼 곡절 많은 삶을 살아온 그다. 인생을 돌아보니, 마약이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했더란다.
"식겁했어요. 이젠 안 해요.(웃음) 한 걸음만 걸어봐도 고생이에요. 마음이 추우니까. 주변에 아무도 없고, 진짜 고생이에요. 희망적인 것이 하나도 없어요. 별일이 다 있었어요. 필리핀에 도망간 적이 있는데, 그땐 죽을 생각만 할 때도 있었고."
누구나 쉽게 경험하지 않는 어둡고 힘든 기억을 전인권은 무용담처럼 들려줬다. 정말 힘든 기억이지만 그는 그걸 굳이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지난날은 가위로 자를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그저 마음이라도 내려놓고 싶다고 한다.
"많이 배웠어요. (마약이)배우기 위해서 해볼 경험은 아니지만. 그때 제가 깨달은 것 중에 젊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는 다리가 저리면 아프다고 난리를 부리잖아요. 감옥에서 너무 심심하면 그 아픔을 '니가 언제까지 저리나 보자' 하면서 가만히 냅둬요. 그러면 시원하게 천천히 풀리는데 기분이 좋아져요. 고생이 오면 피하려고 하지 말고, 피하려고 하면 더 괴로우니까 그냥 와봐라 해요. 그러면 서서히 없어져요."(웃음)
물론 죽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말하기 힘든 기억도 있었다. 하루가 지루하고, 옆을 둘러보면 온통 우울한 사람들. '내가 천벌을 받는구나. 그런데 벌치고 좀 심하다'라는 생각도 수없이 했지만, 죽으려고 하니 살아나게 되더란다.
"제 노래 중에 '2막 1장'이라는 곡이 있어요. 가사 중에 '빗나간 화살은 다시 되돌아온 날개다'라는 말이 있어요. 진짜 고생을 해보면 경험이 되어서, 글도 잘 써지고 곡도 잘 써져요."(웃음)
힘들었지만 시간을 지나왔다. 원망의 마음이 생길 때는 "피차 손해 보는 일 없으니까 나 살려내든지 죽이든지 마음대로 하슈. 피차 좋은 일 아니유. 노래나 잘되게 해주시유" 하면서 견뎌왔다고 한다.
손녀바보 전인권의 가장 큰 행복, 가족
세 번의 만남에 빠뜨린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그는 늘 아내와 함께였다. "지겨워서 다음 달부터는 따로 다닐 계획이다"라는 농담을 던지지만, 둘이 떨어져 있는 모습은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아내는 그가 음악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영원하고 든든한 아군이다. 스페이스 공감 리허설 자리에서는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좋았는지 아내에게 반응을 체크했고, 삼청동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는 같은 속도로 산책을 했다. 낯선 사람이 많은 전시장에서는 아내가 있어 자연스럽게 융화했다.
부부가 다시 합치게 된 계기는 딸의 결혼이었다. 그때 이후로 전인권은 뭐든 잘되고 있다고 믿는다. 음악 활동을 다시 시작하고 일상의 행복까지 되찾아서다. 시집간 딸은 그에게 손녀를 선물했다. 그의 휴대폰에는 커다란 눈망울이 예쁜 손녀의 사진과 동영상이 꽉 채워져 있다. 손녀바보가 된 전인권의 귀여운 말이다.
"예뻐요. 너무 예뻐요. 가족 중에서 할아버지를 제일 좋아해요. 엄마보다 아빠보다 할머니보다. 나한테 있다가 다른 사람한테 가면 막 울어. 기분 정말 좋아요. 천사 같아."
그는 올해 예순이 됐다. 손녀를 둔 할아버지로서 놀라운 나이는 아니지만, 평생 자유로운 뮤지션으로 살던 그인지라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한단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1~2년 젊어지고 싶어 해요. 누구나 그렇고 나도 그래요. 그 정도 젊었으면 좋겠어요. 나이 앞 자리 숫자가 달라져서 좀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딱 하루 그랬어요. 어느 날 '어, 이런가? 나 한 게 뭐 있나, 그동안? 뭘 더 할 수 있나? 이제 어딜 가나 육십이라고 그러겠네?' 이런 생각 했지, 이후로는 괜찮아요."
창작을 하는 뮤지션과 규칙적인 일상은 어울리지 않지만, 요즘 그의 일상에는 꽤 확실한 룰이 있다. 그는 일찍(오후 4시) 저녁을 먹고, 일찍(오후 6∼7시) 잠이 들고, 아주 일찍(새벽 1시) 일어난다. 아침을 기다리는 시간은 가장 행복하고도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등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는 창작자로서의 귀한 시간은 더할 수 없는 행복의 요소. 아내와 다시 가정을 꾸린 후 얻은 최고의 선물이다.
전인권의 사인에는 '건강'이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다. 아픈 친구를 생각하면서 쓴 것이 상징적인 두 글자가 되었다. 여기엔 본인도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 또한 담겨 있다. 전인권은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음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