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5월호로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완연한 성년이다. 창간 기념호를 준비하며 의 독자를 다시 생각해봤다. 누가 우리의 독자일까? 30년 전통의 여성종합지에 어떤 독자들의 이야기를 담아야 하나?

창간 30주년 기념호 ‘더블 에스프레소’의 주인공은 손범수·진양혜 부부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대표적인 ‘잉꼬부부’다. 아나운서 출신의 이 부부는 이 표현을 친절히 정정해준다. 잉꼬는 앵무새의 일본 말, 굳이 말하자면 원앙부부라 해야 맞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원앙은 소문난 바람둥이다.

첫눈에 반한 선배와 아직 뭘 모르던 후배가 만나 사내 결혼한 이 부부는 신혼 초에 숱한 전투를 겪고, 서로 인정하고 닮아가는 과정을 거쳐 올해로 결혼 20주년을 맞았다. 작년에 고3 수험생을 치렀고 올해엔 거칠 게 없다는 중2 아들을 모셔야 하는 엄마, 아빠의 몫도 더해졌다. 생각해보면 독자 부부들과 전혀 다를 게 없다. 손범수·진양혜 부부처럼 인생의 완숙기를 거치며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보통 여성, 창간 30주년의 독자이다.

남편은 여전히 최고의 MC

가볍지도 묵직하지도 않은 음색이 TV 화면 앞에서 들을 때와 똑같이 귓전을 울린다. 손범수 아나운서의 단정하고 모범생스러운 이미지의 8할은 바로 이 목소리 덕분이 아닐까. 부부는 이런 서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어릴 때부터 목소리가 지금처럼 좋았습니까?
 손범수(이하 손)
  어릴 때야 뭐 이랬겠습니까. 하하.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서 트레이닝한 결과입니까? 실제로 들으니 더 좋네요.
 손
  음성은 부모님께 물려받는 거죠. 조음기관은 유전이라서 비슷하니까요. 하지만 물려받은 것 외에도 저희는 트레이닝을 받으니까요. 주어진 음성 중 가장 말하기 편하고 듣기 편한 자기 소리를 찾았다고 할까요?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같은 톤을 계속 유지하는 편인가요?
 손
  아무래도 젊었을 때의 소리하고 조금 다르긴 하겠죠. 근데 사람 신체에서 제일 늦게 노화되는 게 음성이라고 해요. 부모님 음성이 아주 좋으세요. 아버지께서 여든이 넘으셨는데도 전화 소리를 들으면 거의 청년 같으세요. 감사할 따름이죠.
중고등학교 때부터 아나운서가 꿈이었나요?
 손
  전혀 아니었어요. 아나운서가 된 결정적인 배경은 대학 들어가서 대학 방송 아나운서를 했거든요. 연세교육방송국 아나운서요. 그게 계기가 됐죠.
 진양혜(이하 진)  저도 구체적으로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근데 학급 회의를 진행한다든가, 행사 때 사회를 본다든가 하는 건 초등학교 때부터 해왔어요. 공지 사항이 있으면 선생님이 방송실에 가서 읽으라고 하신 적도 있고요. 그런 훈련이 어렸을 때부터 되어 있어서 익숙했던 것 같아요.

요즘 가장 잘나가는 MC가 누구인 것 같나요? 손범수 씨와 대적할 분이 없는 것 같은데요.
 손
  정말요? 그건 예전 일인데. 하하하.
 진  그래요?

아나운서로서 남편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진
  사실 아주 많죠.
 손  좋게 얘기해주세요. 남편으로서가 아니라 온전히 아나운서로서. 때로는 MC, 때로는 CF 모델. 하하하.
 진  저희 때는 개인의 캐릭터가 많이 부각되는 걸 별로 선호하지 않았어요. (아나운서는) 전체를 조율하는 모듈레이터라고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손범수 씨는 정말 최고의 MC죠. 정확히 조율하고 치고 빠질 줄 아는 MC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려 하고 그 안에 유머도 있고요. 그런 면에서는 최고라고 생각해요.
 손  (멋쩍어하며) 아이, 참. 하하하하.

아내를 후배로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요?
 손
  기수로는 제가 KBS 공채 17기, 진양혜 씨가 19기예요. 입사는 정확히 3년 차이고요. 제가 1990년 1월 입사, 1993년 1월 입사니까요. 그때의 저는 젊고 미혼이니까 후배 여성 아나운서들 입사하면 눈여겨봤죠.
 진  아니, 아나운서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웃음)
 손  끝까지 들어보세요.(웃음)
 진  궁금하다.
 손  저랑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전체를 조율하는 모듈레이터적인 면부터…. 입사해서부터 (진양혜 씨가) 클래식이나 국악, 스포츠 프로그램을 많이 했어요. 다시 말해서 예체능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많이 한 거죠. 이 사람이 왕년에 육상 선수기도 했고…. 그런 것이 잘 맞물려서 지금까지….
 진  딱히 평가할 말이 없구나? 무색하다, 정말.(웃음)

선배 입장에서 봤을 때 후배인 진양혜 아나운서의 성장 가능성은 어땠나요?
 손
  저도 그땐 어렸으니까 선배 입장에서 그런 평가를 한다는 건 좀 어쭙잖은 거고요. 일단 객관적인 것보다는 주관적인 사심이 있었기 때문에….(웃음)
 진  입사했을 때 사실 제가 저희 동기 중에서는 기대주였거든요.(웃음) 근데 연애하는 순간부터 완전히 뒤로 밀렸죠.
두 분이 같이 진행한 적도 몇 번 있었죠?
 손
  정규 프로그램은 2000년 즈음에 SBS 하나밖에 없죠.
조만간 토크 콘서트 새 시즌 진행을 앞두고 있던데요.
 손
  예술의전당에서 하는 라는 프로그램이에요. 2010년부터 진행해와서 올해로 네 번째 시즌을 맞았죠.
어떤 콘셉트의 토크 콘서트인가요?
 손
  방송과는 많이 달라요.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그저 몰입해서 듣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거기에 토크가 추가되면 평소 듣지 못했던 그분들의 이야기나 인간적인 면을 한데 버무려서 즐길 수 있잖아요. 그래서 사전에 만나서 꼭 심도 있는 회의를 해요.
진행해보니 서로 잘 맞는 파트너인가요?
 진
  는 방송이 아니기 때문에 저희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게 돼요. 전체적인 큰 흐름은 있지만 디테일은 없어요. 어떻게 보면 저희 둘의 호흡이 참 중요하죠.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간에 별 무리 없이 진행해온 걸 보면 호흡이 맞는 것 같아요.
서로 모니터도 해줍니까?
 손
  가끔 하죠. 예를 들어 '오늘 의상은 어떻다'라든지 '저 상황에서는 저런 표현보다 이런 표현이 어떨까'라고 말해주는 건 거의 일상이에요. (아내가) 매일 라디오 생방송을 하는데, '오늘은 당신 톤이 조금 다운된 것 같다' 같은 얘기를 할 때도 있고요.
아내가 하는 라디오는 자주 듣습니까?
 손
  그렇죠. 집에 있을 때면 라디오는 라디오대로 TV는 TV대로 틀고 들어요. 차 타고 왔다 갔다 할 때는 습관처럼 106.1㎒ 틀어놓고요.

1호 아나운서 커플의 우여곡절 러브 스토리

퇴근길 ‘카풀’로 시작해 사랑을 키워간 이들은 그렇게 첫 사내 아나운서 커플이 됐다. 때로는 촌스럽지만 그 변함없는 촌스러움이 신뢰를 주는 남자인 손범수는 진양혜 아나운서의 영원한 이상형이다.

결혼할 때 '존경하는 선배여서 결혼했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그 감정에는 변함이 없나요?
 진
  그때나 지금이나 제가 손범수 씨에게 느끼는 객관적인 감정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이 험난한 시기에.(웃음) 참 신뢰가 가는 선배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성향들을 갖고 있었고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제가 원하는 태도들이 있었고요. 그게 변하지 않았어요.

입사하고 1년여 만에 결혼했어요.
 진
  같은 필드에서 선후배로 있다가 부부가 되니까 어느 순간 제 자리가 없어지더라고요. 그때 저는 자존심도 굉장히 강했고, 동기 중에서는 나름 기대주였거든요. 근데 그렇게 되니까 사내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이 사람과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원칙을 몇 년 동안 고수했어요. 이 사람과 일하는 프로듀서는 만나지도 않았고, 이 사람이 하는 일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고요. 그러다 보니 '진양혜는 공주'라는 루머도 있었죠. 자기가 방송 못 하는 게 남편 때문이라고만 생각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요. 근데 그때 저는 정말 손범수라는 사람과 일적으로 연결되는 모든 것을 다 끊고 스스로 일어서야 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다만 그게 너무 오랫동안 제 발목을 잡았어요. 좀 유연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손범수 씨에게 되게 미안해요. 까탈스러운 아내였죠. 나도 참 힘든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요. 지금은 많이 유연해졌어요.

결혼이 그 정도로 일에 지장을 줄 거라고 예상은 했나요?
 진
  아뇨. 저는 아나운서가 되고 나서도 이게 그냥 직장인이라고 생각했지, 방송 잘해서 유명해져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혼하고 나서도 나는 계속 내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요.
 진
  뽑아놨는데 방송은 안 하고 연애만 하냐, 이제 결혼했으니까 TV는 그만해야 되는 거 아니냐(라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어떤 부장은 '남편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너까지 방송하려고 하면 그건 공정한 게 아니다'라고까지 했어요. 그때는 그런 얘기를 손범수 씨에게 못 했어요. 신경 쓸 것 같아서요. 그리고 너무 자존심 상해서요. 남편에게 쪼르르 일러바친다고 생각할까 봐요. 게다가 허니문 베이비까지 생겼거든요. 그때는 정말….(웃음) 다이내믹하게 살았죠.

방송사에 입사해서 아나운서로 활발하게 일하고 싶었을 텐데 (남편을) 원망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진
  그런 건 아니었어요. 제 자존심을 지켜주는 면도 있고요. 사실 저희는 '잘나가는 것'과 '실력 있는 것'은 무관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요. 근데 손범수 씨는 잘나갔고, 잘 해줘서 그게 제 자존심이었어요. 저도 차츰 제가 좋아하는 것들(클래식 음악 방송 등)을 하면서 성격이 많이 유연해졌고요.

결혼 직후에 아내가 힘들어했던 걸 알고 있었습니까?
 손
  그럼요.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그 당시에는 어렸고 사려가 깊지 못해서 그렇게까지 힘들었을까, 하는 건 한참 뒤에 인식하게 됐죠.
 진  그것도 제가 누누이 얘기하고 학습시켜서 알게 된 거지, 스스로 깨달은 건 아니에요.(웃음)
 손  이 사람이 입사해서 정확히 1년 반 만에 저랑 결혼한 건데…. 요즘 입사하는 20대 중반쯤 되는 신입 아나운서 중에 그렇게 빨리 결혼하는 친구가 거의 없거든요. (보통은) 10년이 지나도 (결혼을) 안 하는데요. 근데 들어오자마자 결혼한다고 하니까 선배들이 쟤 뭐지? 했을 것 같아요. 게다가 그땐 더 보수적이었으니까요. 이 사람도 당시 초년병이었을 땐데 얼마나 감당하기가 힘들었을까 싶어요. 
신혼 초에 부부 싸움 많이 했겠어요.
 손
  어마어마하게 했죠. 치열하게 했죠.
지금은 무뎌졌나요?
 손
  무뎌졌다기보다 이런저런 거 겪으면서 20년 되니…. 그죠? (진양혜 아나운서를 바라보며 묻자 그녀는 그저 웃는다.)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이 왔나요?
 손
  그랬죠. 느낌이 왔죠. 호감을 갖고 몇 차례 대화를 해보면서 나랑 잘 맞을 것 같다, 지혜롭다, 현명한 여성이다, 귀여운 면도 있고 사랑스럽다, 됐다, 그럼 공략을 해야지. (좌중 웃음) 가는 길에 태워다주면서 더 친해졌죠.

작업하는 거 알고 계셨죠?
 진
  처음엔 전혀 몰랐어요. 시간이 지나니까 너무 직접적으로 대시해서 그땐 좀 피하고 싶었죠. 이거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근데 동기, 선배들과 술자리에 가면 (손범수 씨는) 취해도 흐트러지지를 않더라고요. 그 모습이 진짜 좋았어요. 실수 안 하고 남을 케어해주는 모습이요. 신뢰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오라고) 부르면 잘 나갔어요. 늦게 귀가할 때도 손범수 선배랑 같이 있다고 하면 부모님도 허락해주셨고요.
 손  7년 전쯤 작고하신 양혜 씨 외할머님이 저를 그렇게 좋아하셨대요. 둘이 만나는 걸 알기 훨씬 전부터요. TV를 보면서 '저런 사람 만나야 된다'고….(웃음)
 진  정말 신기해요. '저런 사람이 책임감도 있고 여자 속 안 썩인다' 그러셨거든요. (좌중 웃음) 제가 저희 외할머니 사랑으로 컸어요. 여장부셨는데, 손범수 씨를 참 좋아하셨어요.
 손  처음 뵐 때 그 엄하신 양반이 저를 보고 화사하게 웃으시는 거예요. 처음 뵈었을 때의 그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아요. 항상 저를 환하게 맞아주셨어요.
집에서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요?
 손
  양혜 씨. 어른들 앞에선 찬호 엄마.
 진  범수 씨. 여보. 가끔 자기야. 화나면 야! (좌중 웃음)

잉꼬부부로 소문났는데 그 비결이 뭔가요?
 손
  잉꼬부부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잉꼬는 일본 말. 만약에 쓰시게 되면 '원앙 부부'로.
 진  원앙 부부는 해로하지도 않아요. 기러기가 해로하고요.(웃음) 아무튼 제가 애교가 별로 없어요. 집에 같이 있는 날이라고 해서 막 붙어 있지도 않아요.(웃음) 서로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요.
 손  저희는 지나치게 밀착하려고 하지 않아요.
 진  너무 '부부 지향적'이지 않은 삶을 산다고 할까요?
 손  흔히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거든요. 부부는 이심이체거든요. 제가 들었던 주례 말씀 가운데 가장 감명 깊은 게 하나는 '지나치게 가까워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부부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사랑을 넘어 존경하게 됩니다'. 또 하나는 정운찬 박사님이 하신 말씀,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착각에 빠지지 마십시오'.
 진  나는 결혼 전부터 그걸 알았는데 당신은 최근 들어 너무 강조하는 것 같아.
 손  아냐. 10년 전에 알았어.(웃음) 아무튼 우리(사회)가 너무 그런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다는 말이죠. 집착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나친 애착 관계. 그 대신 저희는 서로의 독립적인 공간과 시간을 존중한다고 할까요? 인정하는 편이에요.
 진  사물이 가장 아름다운 거리를 '미학적 거리'라고 하는데, 살면서 그 거리가 딱 정해져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어쩔 땐 너무 가깝고 어쩔 땐 참 멀기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 저희는 좀 탄력적으로 살아온 것 같아요. 때로는 아주 멀리서 신경 쓰지 않을 때도 있고 때로는 참 가깝고요.
 손  저희가 올해 6월 28일이면 딱 20주년, 결혼한 지 만 20년이에요.
 진  그 안에 무수한 일들이 있었는데, 그 안의 감정들을 살펴보면 어쩔 땐 나의 남편이 너무 자랑스럽고 '이 사람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고… 어쩔 때는 숨 쉬는 것도 꼴 보기 싫을 때가 있고요.(웃음)
 손  하하하하하하하. (박장대소하더니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이런 게 부부죠.
 진  처음엔 저 위주로 생각했는데 감정은 상대적인 거거든요. 제가 상대를 꼴 보기 싫어하면 상대도 분명히 그럴 거예요. 그런 생각이 스스로를 덜 민감하게 한달까요? 그래서 편안하고 좋은 것 같아요.

결혼 20주년인데 특별히 계획 중인 이벤트가 있나요?
 손
  20주년 때는 제대로 해보려고 하죠.
 진  늘 계획은 하는데 실천하지를 못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신혼 초의 손범수 씨는 참 귀여운 남편이었어요. (결혼한 지) 99일째라고 편지도 써주고 CD도 골라서 적어주고 그랬어요. 근데 저는 곰살맞은 성격이 아닌지라 너무 기뻐, 고마워 같은 표현을 잘 못했던 것 같아요. 만날 놀렸어요. 이건 또 어디서 얻어온 립스틱이야? 어떤 매니저가 준 소품이야?
 손  하하하. 산 것도 꽤 있는데. 연애 초반에 하면서 협찬 상품을 주로 이용했더니….
 진  어떻게 보면 재밌는 남편이었죠. 지금 후회되는 건 남편이 선물 줄 때마다 계속 (고맙다고) 반응해줘서 꾸준히 지속되도록 했어야 했는데….(웃음) 몇 년을 채 못 간 거죠.
 손  올해는 20주년이니까 뭔가 크게 해야죠. 그래서 여행도 꿈꾸고 있는데 서로 스케줄 조정하는 게 관건이니까요. 조율하고 있는 중이에요.

‘고3 엄마’에서 ‘중2 엄마’로

지난 1년, 온전히 ‘고3 엄마’로 살아온 진양혜 아나운서는 살도 좀 찐 데다가 찐 살이 좀체 빠질 줄 모른다고 반쯤 농담 삼아 한숨을 내쉰다. 한데 올해는 중2 엄마란다. 그런 그녀가 두 아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하나다. “엄마도 너희와 같이 배워가는 중이란다”라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이다.

올해 첫째가 대학생 됐죠?
 손
  지금 스무 살, 올해 대학생 됐죠. 딱 허니문 베이비예요. 1995년생이니까요.
스무 살 아이 엄마인데 왜 이렇게 젊어 보이세요? 아빠도 그렇지만요.
 진
  저희는 직업이 그렇다 보니까….
 손  (손으로 말하는 손짓을 하며) 역시 이게 되시는군요. (좌중 웃음)
 진  아, 그래요? 난 또! (진심인 줄 알았어요) 이게 당신과 나의 차이야. 난 순진해. 난 금방 좋아가지고. (좌중 웃음)
진심인데요.(웃음)
 손
  진심이든 거짓말이든 이런 얘기는 들을수록 좋은 거지요.
둘째는 중학교 2학년인데 말 잘 듣나요?
 손
  그 정도면 비교적 잘 듣는 편이에요.
아이들은 잘 키운 것 같나요?
 손
  감사하게 잘 (자랐어요). 예전에 제가 학력고사 준비하면서 '우리 후배들은 이런 고생 안 하겠지' 생각했어요. 10년 후에는 달라지겠지, 하고요. 근데 지금은 더하잖아요. 그런 가운데 전업주부로 아이에게 올인해도 아이를 대학에 보낼까 말까인데,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아내가) 진짜 애 많이 쓴 것 같아요.
 진  저는 진짜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노력한 것에 비해서 받은 게 참 많아요. 저희 어머니가 일을 하셨거든요. 전문직이셨는데, 늘 엄마의 필드와 가정의 필드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어요. 그래서 저도 그 균형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해보니까 두 가지(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결국 사표를 내고 EBS에서 한 3년 동안 교육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그때 배운 게 참 많아요. 많은 전문가들을 모시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의 고민을 들으면서 저 역시 취사선택을 한 거죠.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때가 엄마로서 트레이닝이 되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다행히 손범수 씨가 바깥에서 든든하게 버텨준 덕분에 두 가지를 균형 있게 할 수 있었어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일도 포기하지 않고 육아도 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데 (저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가능했어요.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남편을 만나서 함께 갈 수 있다는 건 더없이 감사한 일이죠. 그렇다고 다른 미운 점들이 상쇄되지는 않지만. (좌중 웃음)
   잘 나가다가 왜 그래.(웃음)

자녀 교육에 있어서 합의한 원칙이 있나요?
 진
  원칙이라기보다 공동의 가치가 있어요. 저는 '아이가 행복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 행복이란 건, 아이가 용감하고 건강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수없이 실패할 수 있지만 그걸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아이가 대학 갈 때도 그렇게 말했어요. 실패할 수도 있다, 명문 대 가는 것만이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네가 선택하고 책임지고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요. 또 아이에게 사춘기가 왔을 때 정말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솔직하게 말했어요. 엄마도 처음이라 굉장히 미숙하다, 너와 같이 성장해나가려고 노력하는 중이기 때문에 엄마가 100% 옳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그 과정까지 어떻게 가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거지 네가 혹여 대학을 못 갈까 봐 하는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고요. 제가 솔직하게 얘기하니까 아이가 열리더라고요.

아나운서 커플 사이에서 나온 아이들이니 목소리도 좋을 것 같은데요.
 손
  골격 같은 게 닮아서인지 아무래도 음성은 괜찮은 것 같아요. 저도 아버지 음성하고 거의 비슷하고요. 제 아이들도 예외가 아닌 것 같아요.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직업에 관심이 있나요?
 손
  아직은…. 큰애는 어렸을 때부터 단 한 번이라도 아나운서가 될래, 혹은 방송국에서 일할래라는 얘기는 안 했던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나중에 막상 닥치면 어떻게 될지. 작은아이도 그런 생각은 별로 없는 것 같고요.
아이가 어떻게 자라길 바라나요?
 진
  아이가 똑똑하게 자랐으면 해요. 똑똑하다는 게 토익에서 만점 받고 이런 게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고 선택하고 선택하면 책임질 줄 알고 감사할 줄 아는 그런 탄탄한 내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또 하나 큰 욕심이 있다면, 이 아이가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는 아이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유일한 제 기도 제목 중 하난데, 빨리 제 곁에서 떠났으면 좋겠어요. (좌중 웃음) 빨리 사랑하는 여자 만나서 훨훨 자기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요즘 자식을 아나운서나 MC로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가 많아요. 엄청 인기 있는 직업인데요.
 손
  저희 때보다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저희 때도 입사할 때 100 대 1이니 200 대 1이니 하는 말은 있었는데 요즘은 뭐. 제가 연대에서 지금 겸임 교수로 '말하기와 토론'이라는 강의를 하고 있어요. 그 제자들 중에 방송을 지망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물론 제 예감이 틀릴 수도 있지만 30여 년 방송 생활 하면서 저도 딱 보면 얘가 아나운서를 잘할 것 같다, 아니다가 대충 보여요. 그럼에도 하려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럴 때는 완곡하게 다른 길도 생각해보라는 얘기를 해주죠.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손
  대개 성공한 케이스만 눈에 보이니까요. 그 이면을 못 봐요. 근데 진짜 재능이 있으면 하는 거죠. 독한 마음 먹고 나는 평생 이걸 업으로 삼겠다 하는 의지가 있으면요. 진로를 선택할 때 부모님이 주신 내 재능이 뭔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해요. 남보다 잘하는 게 뭔지요. 주변 분위기에 의해 부화뇌동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라는 얘기를 제자들에게 많이 해요.
목표는 없다, 게으르지 않을 뿐

이들 부부의 삶에는 특별한 목표가 없다. 그저 소박한 현재에 충실하겠다는 바람이다. 그렇게 물 흐르듯 살아오니 아나운서에서 프리랜서가 됐고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중요한 건, 이렇게 살아온 오십 년 삶에 후회가 없다는 것이다.

부부가 일적인 면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나 공동의 목표가 있나요?
 손
  (아내를 바라보며) 우리는 그런 거 없지? 저희가 사실 목표가 없는 사람입니다. (좌중 웃음)
그래도 나이가 들면 뭘 해야겠다, 라는 게 있지 않을까요?
 손
  거창하게 뭘 해야겠다, 정해놓고 살아오진 않았던 것 같아요. 1990년에 KBS 아나운서가 됐을 땐 1997년 3월에 사표를 내고 프리랜서가 될 거라는 건 전혀 몰랐어요. 전반적인 분위기가 무르익고 매체 환경이 변화하면서 결단을 내리게 됐죠. 일단 주어진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새로운 길은 열리게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인터뷰하다 보면 '평생 아나운서 하실 거죠?'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해요). 오픈마인드예요. 어떻게 인도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지, 하고 계획한다고 해서 인생이 그렇게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요. 저는 그래요. 하하하.
 진  저희가 21세기형 인간은 아니에요. 뭔가 거창한 비전을 말씀드리면 참 좋을 텐데. 다만 제 삶을 되돌아봤을 때 방만하거나 게으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하고 즐기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TV에 노출되는 직업이니만큼 자기 관리가 필수일 텐데 어떤 관리를 합니까? 아내가 잘 챙겨주나요? 한숨을 내쉬는 걸 보니까 전혀 아닌 것 같은데요?(웃음)
 손
  건강관리는 아내가 챙겨주는 건…. (아내를 쳐다보며) 왜 절 안 쳐다보세요? (좌중 웃음) 아내는 뭐, 마음 편하게 해주면 제일 좋은 거죠. 건강관리는 정기적으로 체육관 가서 운동해요. 요즘은 비타민제 이런 것 좀 챙겨먹고요. 유산균이라든지요. 그 외에 유별나게 하는 건 없어요. 산에도 간간이 가긴 가는데 최근에는 많이 못 갔고요.
 진  간간이 1년에 한두 번?(웃음)

계속 긴장하는 직업이라 그런가? 살이 전혀 안 쪘네요.
 손
  살이 찌는 체질 같지는 않아요. 요즘 살찌는 것 때문에 고민인 분들 많으신데,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라 다행이죠.
 진  (남편이) 운동을 꾸준히 해요. '홀릭'은 아니지만요.
 손  그럼요. 운동 안 하면 전 같지 않으니까요. 전에는 술을 마셔도 다음 날 벌떡벌떡 일어났는데 이제는 숙취가 오래가요. 항상 건강에 대해 신경을 쓰고는 있죠. 그렇다고 피부과에 다닌다거나 하진 않고요.

여성은 또 다르잖아요. 어떻습니까?
 진
  저도 성격적으로 외모를 막 신경 쓰지는 않아요. 거울도 잘 안 보는 편이고요. 근데 요즘은 아주 민감하게 신경이 쓰이죠. 변하는 게 느껴지니까요. 한번은 친한 언니에게 전화가 왔는데, 길을 가다 지인이 저를 봤대요. 진양혜 아나운서는 창피하지도 않으냐, 어떻게 저런 생얼로 다니느냐고 했대요. 남편에게 누가 되지는 않겠냐고요.(웃음) 그래서 이제는 신경 쓰고 관리도 하려고 해요.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관리가 됐는데 지난 1년 동안 '고3 엄마'로 살면서 살이 많이 쪘어요. 아이가 대학생이 되면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좌중 웃음) 요즘엔 비타민제도 많이 먹고요. 처음으로 체내 순환이 잘 되는 약도 먹고 그래요. 올해 가을쯤엔 아주 멋진 모습으로 변해 있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운걸요.
 진
  아휴. 감사해요. 되게 노력했어요. (좌중 웃음)

인기 방송인들이 정치의 길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관심 있으십니까?
 손
  아니요. 저는 전혀 없습니다.
인생은 모른다면서요.
 손
  근데 정치인은 아닌 것 같아요. 주변에서 제의가 오기도 했는데, 심사숙고하다가 그건 저의 길이 아니라고 했어요. 저한텐 안 맞는 길인 것 같아요.
 진  잘 맞을 것 같은데?
 손  그래? 다시 한 번 생각해봐? (좌중 웃음)
 진  아, 정치를 하라는 얘기가 아니고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손범수 씨가 굉장히 정의롭고 원칙을 중시하는 사람이거든요. 제가 늘 '당신 참 촌스러워'라고 해요. 그 촌스럽다는 게 다른 의미가 아니라 원칙이나 약속을 딱 지키는 스타일이라는 거예요. 근데 문제는 선출직이 되면 선거운동을 해야 하잖아요. 근데 제가 그런 걸 할 수가 없으니까요. (좌중 웃음) 그것 때문에 저희는 희망이 없어요.
 손  네. 그것 때문에 접었어요. 악수해야 되는데….
 진  저는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실리는 편이거든요. 혼자 (선거운동을) 하라고 그랬어요.(웃음)


지금까지 방송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일을 하나 꼽는다면요. 그게 인물이든 상황이든 파트너든, 아니면 프로그램이든지요.
 손
  (한참을 생각하더니) 제가 라는 프로그램을 한 3년 했어요. 아시겠지만 는 '1000원의 기적'이에요. 생방송 50분 하면서 전화 한 통에 1천 원씩 적립되는데, 많이 모금될 땐 1억 원이 넘기도 해요. 딱한 처치에 있는 분 세 케이스를 소개하거든요. 화면 소개가 끝나면 스튜디오로 (카메라가) 넘어온단 말이죠. MC가 (카메라에) 잡히는데, 한번은 너무 슬픈 나머지 가슴이 먹먹해서 한 10~15초 동안 아무 말을 못한 적이 있어요. 그냥 '하…' 이러고만 있는 거죠. 옆에 여자 MC도 울고 있고요. 그때 가장 괴롭고 힘들었어요. 그 사건이 대구 지하철 참사 사고 당시 어느 여고생의 사연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근데 그때 모금 액수는 기록을 세웠어요. 다른 때보다 2배 이상, 아마 1억 5천만 원인가 올랐죠. 는 죽어가는 생명을 소생시키기도 하고, 완전히 낙심해 있는 분들에게 희망을 심어드리기도 했기 때문에 제가 그 중간 매개 역할을 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껴요. 10년도 훨씬 더 된 일인데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 순간입니다.

오랜만에 함께 사진을 찍는다는 이 부부는 사진기자가 시안으로 제시한 유아인과 젊은 여성 모델의 프로페셔널한 커플 포즈를 따라 해보는 데 열심이다. 어색해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 “요즘 크게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고 있어 사진이 자연스러울 것”이라는 말은 결혼 생활을 몇 년 만이라도 해본 부부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독자 모두가 손범수·진양혜 부부처럼 ‘원앙 부부’이다.

[- 더 많은 기사는 여성조선 5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